자극적인 신선한 외도 정도는 괜찮다?
불륜이면서도 불륜이 아닌 영화
 
전창수 기자



1. 나는 가끔 소통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자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소통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가 느껴지는 때가 있는 듯 한데, 나도 그도 그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나란 존재 자체가 워낙에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을 즐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주의깊게 들어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거고, 단 한 마디로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이른바, 사랑의 교감이란 것 아니겠는가. 때로 인생은 운명이 이미 결정지워진 상태에서의 도박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은 이미 길을 만들어놓고, 이 길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철딱서니가 없거나 혹은 바른 생활 사나이나 착한 여자 콤플렉스의 아가씨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삐딱한 종류의 인간들은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듯이 자꾸만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이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고통 끝에 새로운 발견이 있다면 그만한 쾌락은 또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의 내면 속에는 자신이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은연 중에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 밥이란 이 인간 천부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아니다. 지금은 조금은 잊혀졌을 법한 노년의 배우. 그가 위스키 광고를 찍으러 일본으로 왔다. 촬영 도중에 감독이 무슨 말을 한참을 길게 얘기하는데, 통역사는 단 몇 마디로 그의 기나긴 말을 대신할 뿐이었다.

일본은 말 많은 나라인가보다. 그러나, 밥은 배우의 천부적인 재능을 살려 감독이 원하는 포즈를 소화해내고자 한다. 감독이 만족스러웠나?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밥에게 있어 촬영이란 그냥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가 일본의 TV에 어떤 식으로 나왔든, 그에겐 별로 맘에 안 든다 하여도 그건 그저 일상일 뿐이지, 그것으로 삶의 가치를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 그가 샬롯을 만난다. 이제 막 결혼한 샬롯은 유명 사진작가인 남편의 출장을 따라 일본으로 왔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여행을 와서도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 무관심한 남편에게서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던 중이다. 그들의 교감은 그렇게 시작된다.

3.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볼륜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빌과 샬롯은 육체적이 아닌,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그들의 결핍된 마음을 채워나간다. 빌이 아내에게서 받을 수 없고, 샬롯이 남편에게서 받을 수 없었던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결핍된 마음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그 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에, 아름다우면서도 섬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도, 재치있는 유머들로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이 헤어질 때 하는 마지막 키스가 그 어떤 키스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의 여운이 너무 짙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의 거리 풍경이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도, 밥과 샬롯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의 에고이즘이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느껴질 뿐이다. 영화는 그 감성의 톤을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위배됨이 없었으며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결론까지 내어 준다.

4. 그들은 각자의 삶을 찾아 헤어지긴 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귀중한 경험이다. 절망하지 않는 선택. 영화가 주는 감성적 교훈이다.

볼륜이라 하기엔 조금 멀고 그저 친구관계라고 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그들 사이. 마치,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 사이의 감정을 결혼한지 이미 오래된 중년의 남성과 갓 결혼한 여성을 통해 표현했으니,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정말 통역이 되지 않는 영화인 것만 같다.

그러나 때로 인생은 자극의 연속임을 분명히 인식해 주어야만 할 듯도 하다. 결혼을 하였더라도 끊임없이 외로움은 우리를 자극할 것이고, 때로는 오랜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 권태기가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바로 이러한 권태기에 위험하지는 않은, 하지만 조금은 자극적인 신선한 외도 정도는 괜찮다고 옹호하는 듯한 영화다. 옳다 그르다 판단은 할 수 없다. 어차피, 인생에는 ‘불변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거니까.

기사입력: 2004/02/29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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