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 태어나던 날
불빛 송아지 탄생으로 밤새 꺼지지 않는 외양간
 
김순희 기자

얼음이 꽁꽁 얼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추운 한겨울, 매년 한 마리의 송아지를 낳던 우리집 어미 소가 남산만한 배를 바닥에 드리운 채 기나긴 진통을 시작했다.

어미소는 목 놓아 ‘움머어~’를 여러 차례 외치며 아픔을 견디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소를 위해 짚으로 둥지를 만들고 낡은 옷가지를 엮어 알 수 없는 끈을 만들어 놓았다.

난 어린 마음에 외양간 근처엔 가지 못하고 방문 고리를 꼭 잠그고 소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애써 듣지 않으려 귀를 막고 있었다. 어머니는 큰 가마솥에다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외양간안의 훈기를 주기 위해 짚을 훨훨 태우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울다가 지치면 그냥 누운 채 눈만 껌벅껌벅 하고 있는 소를 보고 어머니는 작은 상에다 물을 떠 놓고 무어라 중얼거리곤 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짜든동 쑥쑥 낳게 해주이소.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저 아무 탈 없도록 마 낳게 해주이소 야~”

힘들어하는 소 옆에서 송아지가 나오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누웠다 섰다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고삐 풀린 것 같은 어미소의 행동은 쉽게 나오지 않는 송아지가 얼른 나와 주기를 너무나도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었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어미소의 진통은 밤늦은 시간이 되어도 멈추지 못하고 아픔을 겪고 있는 소나 그것을 지켜보는 어머니나 애타는 심정은 이뤄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달밤에 체조라도 하듯 환한 마당의 불빛 속에서 분주히 왔다 갔다 하던 어머니는 나를 급히 부르고는 큰 대야에다 끓여놓은 물을 퍼 담으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송아지는 이미 머리부분이 반쯤 나와 있어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다.

순조롭게 나온다면 다행이지만 어떨 땐 다리부터 나오려고 할 때도 있었는데 그땐 어머니 혼자서는 역부족이었고, 이웃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러 가야 했다.

머리가 거의 다 빠져 나왔다 싶으며 어머니는 준비해둔 옷가지로 송아지를 받아 짚으로 둥지를 만들어 놓은 곳에다 조심스레 가져다 놓았다. 그리곤 여러 번 송아지에 묻은 이물질을 닦기고 닦았다.

밤이라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불빛 속에 비친 송아지의 모습은 얼마나 닦았던지 반질반질한 윤기가 돋보였다.

어미소의 대단한 인내와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송아지는 무사히 태어났다. 힘들게 산고의 아픔을 겪었던 추운 겨울날, 어미소를 위해 어머니는 따뜻한 물과 기운 낼만한 것들을 챙겨주고 송아지가 잘 있는지를 살핀 후 외양간을 나오셨다.

밤새 꺼지지 않은 외양간 불빛은 겨울밤 긴 여정을 포근히 풀어주며 그렇게 내일이라는 단꿈에 젖게 했다.

아버지도 안계시던 그 춥고 긴 겨울날, 잊혀지지 않는 송아지의 탄생을 지켜보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 같다.

오늘, 추억속의 송아지가 보고 싶은데 힘없는 전화기 저편에서 어머니가 울고 계셨다. 진통을 하던 어미소 옆에서 그 옛날 그 생각으로 다시 한번 송아지를 받아보고 싶었던 어머니의 간절한 바램을 뒤로 한 채, 송아지가 숨을 쉬지 않았던 것이다.

일년을 하루같이 송아지가 태어나길 그 얼마나 바라고 기대했는데 어미소의 눈가엔 밤새 울어 물빛이 비춰져 있는 것도 당연하고, 함께 동고동락 해온 어머니의 마음 역시 찹찹함은 또 어떠랴.

오늘 내내 곧 태어나리라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려 혼났다. 먹지도 않고 누워있을 것 같아 전화를 하니 힘없는 목소리가 먼저다. 인연이 아니라고, 어머니보다도 더 가슴 아플 어미소를 생각해보라고, 아무튼 생각하면 기운 빠지고 병나니 차라리 들에 나가시라고 했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생각이 난다. 그 어미소가 밤새 먹을 것을 줘도 먹지 않고 힘없이 ‘음매에~’만 하고 있다고.

‘어미소야, 다음엔 밥 많이 먹고 건강해서 더 예쁘고 건강한 송아지를 낳아 어머니가 손수 받을 수 있게 해주라. 알것제.’

기사입력: 2003/11/09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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