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어수선 할수록 생각나는 테레사 수녀
삭막하게 마음을 걸어 잠그고 사는 인류의 양심을 두드린 성녀
 
주디 하트만 특파원

흔히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었더니 보따리부터 내놓으라 한다”하는 속담은 사람의 기억력보다 사람의 양심을 꾸짖는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이러한 사람의 양심을 고치지 않고 기억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긴다.

진정한 사랑은 기억력으로 할 수 없다. 기억력에 의존하는 사랑은 항상 계산적이고, 그러므로 조건적이다. 또 그 때문에 이기적이다.

“나에게 전에 한 번 잘 해 주었으니 나도 한 번 잘 해 주어야지.”의 계산적 양심. “나에게 전에 물 한 사발 주었으니 나중에 물 한 사발 돌려 갚으면 끝”이라고 하는 자기 만족형 양심. 하지만 필요할 때 목숨을 구한 생명의 물 한 사발과 어떻게 비교될 수 있겠는가. 또 우리에게는 핏줄이니 당연히 도와줘야지 하는 이기적 양심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양심 때문에 우리는 주위에 있는 “굶주리고 헐벗은”이들을 보지 못한다.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은 거지등 빈곤층 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사막에서의 물 한사발의 이야기는 나에겐 흔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상대방에겐 꼭 필요한, 그러한 절실한 상황에 처한 이웃을 뜻한다.

캘커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는 이러한 진정한 사랑의 모델이다. 하지만 그 모델도 기억력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이 스토리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그리고 진정으로 안타까운 상황은 캘커타의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이 아니라 바로 삭막한 세상에서 사랑을 모르고 사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예견된 사랑의 씨앗

마더 테레사의 본명은 아네스 곤하바하흐 (Agnes Gonxha Bojaxhiv)이다. 1910년 8월 26일 현재의 마케도니아 (공식 국명은 FYROM (Fo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의 스콥헤(Skopje)시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에는 저물어가는 오토만 제국의 스쿱(Shkup)시였다. 분열되어가는 오토만 제국은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수십개 소수 민족들의 터전이었다. 세르비아, 알바니아, 스라브, 크로아시아, 터키, 쿠르드, 아프간, 마케도니아, 뫁테네그로 등등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을 예고 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알바니아인으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하였다.

소녀 아네스는 그들의 세 남매 중 막내였다. 그녀가 7세때 그녀의 아버지는 살해당했다. 이는 그 당시 정황이 얼마나 심각했음을 보여 준다.

아네스는 소녀 시절때부터 청소년 그룹에서 종교활동을 하며 깊은 신앙을 키워왔다. 12살 때 이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겠다는 사명을 느꼈다.

1928년 정치적 혼란을 피해 아일랜드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로레토 수녀원에 수녀 서원을 했다. 로레토 수녀원은 교육에 중점을 둔 카톨릭 소속 Congregation이었다. 아네스는 수녀 서원을 한 뒤 “테레사”라는 이름을 택했다.

1929년 그녀는 인도의 벵갈로 파견되었다. 얼마 후 캘커타의 성 마리아 여 고등학교의 교사로서 일하게 되었다. 시작 할 당시 그녀의 영어는 서툴렀으나 열정으로 어려운 점을 하나씩 극복해 나갔다.

어머니같은 마더 테레사

1931년부터 46년까지 16년 동안 그녀는 교사로서 아니 교사 이상으로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녀가 가르쳐준 것은 지식보다 사랑의 씨앗이었다.

1944년 그녀는 결핵으로 갑자기 쓰러져 한 동안 모든 것을 다 중지하였다. 1946년 그녀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명이 시작되었다. 16년 동안 보고 겪어왔던 캘커타와 인도의 빈곤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신의 부름을 느낀 것이다.

캘커타에 사랑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혼자서는 이루기 힘든 개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모든 자식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병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기본적인 의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집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1949년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더 구체적으로 개시하였다. 그들은 지역 병원에서 강제로 퇴원당한 불치병 환자들, 죽음에 이르는 아이들, 여성, 노인들을 수 없이 길거리에서 만났고 어김없이 거두었다. 그들을 위해 방을 마련하고 임종에 이른 그들을 위로하였다.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세상을 하직하는 일을 도왔다.

마더 테레사는 불치병을 치료하거나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기적의 선지자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또 교육이나, 약품이나, 위로의 대가로 개종을 요구하는 일반 선교사의 행태를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죽어가는 이들에게 의미있는 죽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평생을 나병 (문둥병 또는 한센씨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의 인생이 가치가 있었던가?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죽는 게 그들에겐 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그들에게 인생의 아름
기사입력: 2003/12/23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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