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한자루의 불씨가 온 세상을 밝히듯
재소자 돌보기로 승화시킨 임미은·임정수 부부의
 
주디 하트만 특파원

높은 담장, 차디찬 쇠창살 안에 갇힌 재소자들에게 “지금 형제님들이 있는 곳은 감옥 안이 아닙니다. 아둘람 동굴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처럼 말입니다.

형제님들이 비록 지금은 어두운 음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훗날 다윗처럼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원하며 오늘도 기도 드립니다”라며 그 넉넉한 품을 평안의 안식처로 내어놓는 아둘람 선교회.

아둘람 선교회는 LA 카운티 교도소를 비롯 와스코, 데라노, 제임스타운, 맥파랜드, 샌 루이스 오비스포 교도소 등 곳곳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들을 직접 방문 혹은 문서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주고, 차가 없어 면회를 가지 못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는 교통편의를 제공해가며 하나님의 사역을 일구어나가는 비영리 단체이다.

운영 부담은 온전히 그들의 몫인 것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24년, 그 한결같은 사랑의 힘을 원천으로 샘물같은 수고를 쏟아내는 이들 부부의 열정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삶이 왜 그리 힘들었던지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돈이 많고, 자식들 공부 잘하고, 가족들 건강하며,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란 게 그렇게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펼쳐지던가요" 임미은 선교사. 그녀의 삶 또한 평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미국에 오기전 나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힘들고 어려운 날이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그래 미국으로 가자. 미국에 가서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 잘 섬기면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실거야” 라는 믿음으로 1995년 8월 9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아들 요셉의 나이는 열한살, 딸 유리는 열다섯살로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춘기의 나이였다.

어느날 재소자 가정이 되어

사춘기의 두 자녀를 데리고 그렇게 고국을 떠나온 임미은·임정수 부부가 처음 짐을 푼 곳은 밸플라워였다.

처음엔 그럭저럭 잘 적응하는 듯 했으나 아들 요셉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부모가 자주 집을 비워 홀로 지내는 적이 많은 옆집 친구에게 놀러가기 시작하더니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자다 깨어 살펴본 아들의 침대가 텅 비어있어 깜짝 놀라 온 집안을 찾아보니 아들 요셉은 차고에서 옆집 아이와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임미은 선교사는 상황파악을 하기에 앞서 덜컥 겁이 들면서 그 옆집 아이를 쫓아보냈다고 한다.

그 날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야단부터 치고 보는 엄마를 못내 이해할 수 없었던 아들은 “엄마는 가짜 크리스찬이야”라며 집을 뛰쳐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함께 어울려 놀던 형들이 한 라티노 아이의 돈 18불을 빼앗을 때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구속, 10개월간 청소년감호소에 수감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내 아이만 잘 키워보겠다는 마음이 아들을 집 밖으로 내몰고 만 것이다”라며 속울음을 삼키는 임미은 선교사.

그녀는 이렇게 이민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아들이 불량청소년과 어울려 방황하다가 청소년감호소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재소자 선교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이제 임미은·임정수 부부는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들의 또 다른 친구인 부모 없는 원이를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들 또래의 재소자 한명을 양아들로 삼아 4년여간의 옥바라지 끝에 지난 8월 출소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집

우리는 흔히 ‘재소자’라고 하면 마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대하듯 외면한다. 이와관련 임미은·임정수 선교사는 “사고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도 어느날 재소자의 가정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재소자들을 냉대하지 말아주세요. 재소자들이 사회에 나와서 잘 적응할 수 있게 따뜻하게 맞아주었으면 합니다”라며 한인사회의 따뜻한 관심을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자살을 4번이나 기도했던 한 재소자가 임미은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을 영접하고 “다시는 자살하기 않겠다”며 “나를 버리지 말고 자주 찾아와 달라”고 했던 그 울부짖음을 잊을 수 없다는 임미은 선교사.

그녀는 “형기를 마치고 돌아갈 집이 없는 형제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안식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무엇보다 간절하다고 한다.

또한 임미은 ·임정수 선교사 부부는 “비록 갇힌 몸이지만 공부하고 싶어하는 재소자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고 싶다”며 그들을 위한 장학 기금을 마련하는 게 또 다른 소망이다.

“청소년 시절의 이유 없는 방황과 갈등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한 과정입니다, 다만 그 과정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라고 힘주어 말한다.
기사입력: 2003/12/24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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