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버린 모국에 대한 감정을 아는가"
미국내 해외 입양자 20만명 가운데 한국 출신이 5만명
 
하트만특파원



미국 인구통계국에 의하면 2000년 인구센서스에서 처음으로 입양아 실태를 조사한 결과, 미국내 160만명의 입양아 가운데 13%인 20만명이 해외에서 입양됐다고 한다.

이중 한국 출신 입양아는 4만7555명으로 5분의1을 넘었으며 전체 입양아들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국무부가 입양을 위해 미국에 들어오는 외국아이들에게 발급한 이민비자는 1990년부터 2000년 사이 7천건에서 1만8천건으로 크게 늘었다.

입양 전문가들은 미국 부모들이 국내입양보다 해외입양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워싱턴/AP 통신은 전했다. 많은 입양된 아이부모들이 그들의 아이을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서류문제이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려는 현재 43세의 입양아 김인화씨의 경우를 두고 우리는 럭키라고 하는 것 같다. 김씨의 친어머니는 딸을 찾기위해 한국사회에 있는 모든 입양센터 관계자로부터 도움을 얻으려고 노력을 했다.

김씨가 한국에서 출국을 할때 사용된 입양 서류는 보통 한국이름을 그대로 영어식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정확한 그녀의 영문 표기 이름은 존재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그녀의 어머니는 영어발음 위주로 그녀의 이름을 찾았었다고 한다

60년대의 한국사회에서는 한국이름이 영어식 발음표기로 서류상이나 여권에서의 사용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입양아들은 다른 미국이름으로 바뀌어 서류상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우기 아이를 입양하는 양부모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입양하는 아이의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십년이라는 세월속에 1962년의 8월14일 날짜의 에나 김(Ena Kim)이라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의 한국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음력 생일을 많이 사용했으며 입양 양식서류의 잘못된 영문 번역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 했었다고 한다.

실례로 그녀가 한국에서 입양서류를 작성할때 그녀의 영문이름은 에나, 이나, 인화로 거의 정확하게 표기 되었으며, 생년월일 또한 그녀의 입양 중간대행자의 서류상에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다.

단지 입양서류에있는 출생 날짜가 1962년 8월14일에서 1962년 8월11로 다르게 번역되었을 뿐, 김인화(In Wha Kim)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 군인이었기에 자기이름(김인화)을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사실을 뒤로 한채, 1966년 9월 어느날, 김포국제공항에서 4살의 그녀는 이렇게 자신의 고국인 한국땅을 떠났던 것 이다.

행운아인 김인화씨와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대부분 친부모와 형제들을 찾는 데 관심을 갖고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버린 모국’에 대한 감정은 본인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 아니 전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입양아들에게 ‘당신들은 대한민국이 버린 아들, 딸이 아니라고’ 이 기사를 쓰면서 전해주고 싶다.
기사입력: 2004/01/02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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