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유래 - 조심하는 날
 
박선협 기자

[둘째 보따리]세수(歲首)·원단(元旦)·원일(元日)·신원(新元)이라고도 하며, 근신·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한문으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쓴다.

조선시대에 의정대신(議政大臣)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箋文)과 표리(表裏: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나가 조하(朝賀)를 올렸으며, 8도에서도 관찰사·병사(兵使)·수사(水使)·목사(牧使)는 전문과 방물(方物)을 바쳤다.

이 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粧)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 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세찬으로는 떡국[餠湯]을, 세주로는 초백주(椒栢酒)·도소주(屠蘇酒)가 나오는데, 떡국은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또 시루떡[甑餠]을 쪄서 올려 놓고 신에게 빌기도 하고, 삭망전(朔望奠)에 올리기도 한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또한 각 관아의 서예(胥隸:衙前과 종)와 각 영문(營門)의 교졸(校卒:장교·나졸) 등은 종이를 접어 이름을 쓴 명함을 상관이나 선생의 집에 드린다. 그러면 그 집에서는 대문 안에 옻칠한 쟁반을 놓고 이를 받아들이는데 이것을 세함(歲銜)이라고 한다.

민가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삼재(三災)를 당한 자는 3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讖)이라 한다.

또한 나무에 금·목·수·화·토를 새겨 장기쪽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치는데, 이를 오행점(五行占)이라 한다.

남녀가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속담에 나오는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곧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은 불길하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모두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루벽이나 뜰에 걸어 둔다. 그러면 이 야광신이 와서 이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면 설날부터 3일 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빛나며,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올해는 꼭 과거에 급제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등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이렇게 남이 바라는 바를 말하는 일을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설날의 놀이로서는 남녀가 방 안에서 다 같이 윷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들은 널뛰기, 남자들은 연날리기를 한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수천 년 동안 민간에서 지켜 내려와서 관습화된 음력설을 말살하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예를 들면 떡방앗간을 섣달 그믐 전 1주일 동안은 못 돌리게 하였고, 설날 아침 새벽 세배 다니는 사람이 특히 흰 옷을 입었을 때는 양력설에 세배 안 가고, 또 무색옷을 안 입는다 해서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흰 옷에 검은 물이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하였다.

[둘째 보따리]설은 옛기록들에 의하면 《세수(歲首)》, 《년수(年首)》, 《원단(元旦)》, 《원일(元日)》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한해의 첫날이라는 뜻이다.

설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새로운 기분과 기대를 가지고 명절을 맞았다.

설과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기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설은 복잡다사한 생활로 가득 찼던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맞는 새해 첫날 명절인 것만큼 특별히 더 잘 준비하였으며 당일에는 조상들과 웃어른들에게 예의를 표시하였고 흥미 있는 다양한 놀이로 즐겼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식구들의 설옷(설빔 또는 세장)을 마련하였으며 다음으로 설을 깨끗한 환경에서 쇠기 위하여 집안팎을 청소하고 손질도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묵은 먼지와 때를 지난해와 더불어 시원스럽게 털어 버리고 청신한 기분과 결심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도 좋은 것이었다.

설맞이 준비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설음식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설음식을 잘 마련하는 풍습은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삼국사기》의 백결선생전의 내용이 잘 말해주고 있다.

「백결선생은 당시 글이나 읽을 줄 알고 벼슬이나 벌이를 하는 것을 모르거나 그것과는 담
기사입력: 2004/01/21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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