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가 돼 이국을 헤매는 한인들
정녕 이국에서 삶은 한인이 한인의 적이여야 하는가?
 
주디 하트만특파원





미국에 거주하는사람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있을까?

본의아니게 불법체류자가 되어 이국을 헤매고있는 한인들 이들은 돌아갈 기약 없는 한국의 하늘을 그리며, 정처없는 삶을 살고 있다.

맹모삼천지교라 하였던가? 사기결혼에서 비슷의 서막이 올라 자식을 피끓이며 그리워 하던 한 여인이 결국 그아이를 이용한 한인상점 주인에 의해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거리에 나 앉아야 하는 사정에 놓인사건이다.

낯선 땅에서 한인이 한인에게 강도가 되고, 한인이 그들의 숨통을 죄는 정녕 이국에서 삶은 한인이 한인의 적이여야 하는가?

15장을 빼곡히 써내려 본기자에게 보내주신 K모님의 사연을 소개한다.

내가 미국에 온지 이제 만 3년... 요즘 나는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면 한밤중이나 새벽에 잠이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잘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이 먼곳 , 이 낯선 곳에서 무덤속 같은 적막과 어둠 가운데 혼자 누워 느껴야 하는 그 깊고 뼈저린 고독감과 두려움과 절망감은 몇 곱절 무겁게 나를 짖누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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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4년간 해외근무를 나가있던 덕분에 유예되었던 파국이, 결국 큰아이가 한국나이로 8살, 작은 아이가 두 돐이 되었을 때 왔다. 구체적인 이혼 수속 도 밟지 않은채, 그는 심지어 아이들 백일, 돐반지까지 모든 걸 쓸어가지고 먼저 나갔다.

나는 두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초등학교 정문앞에 월세방 하나를 얻어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작은아이 데리고 다니면서 무슨일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기르며 살아 보려고 발버둥을 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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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가까이 되어서야 , 그는 우리가 완전히 헤어지기도 전에 이미 결혼 상담소를 통해 다른 여자를 만나 한달만에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새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수없이 온갖 투쟁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단 아이들을 아빠네로 보냈다. 나 혼자 속으론 어떻게 하든 3년이면 기반 잡아서 다시 데려오지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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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또 다시 재현된 그 초조하고 가슴 떨리는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양육비도 못 받고 7년이 다 돼서야 어렵사리 아이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 세월이 너무 흘렀나 ? 아이들은 이미 저쪽에서 나름대로 자기의 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해진 주변 환경과 학교와 친구들...... 엄마에 대한 기억조차 거의 없는 아이들에겐 엄마에게 돌아온 것이 별 의미가 없고, 나름대로 형성해온 자기 세계의 기반을 잃고 갑자기 낯선 곳으로 옮겨진데 대한 불안감이 더 크고, 허세만 잔뜩 부리며 살던 아빠네와 비교해 다소 초라해 보이는 새 환경에 실망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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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IMF 경제위기가 터지고 나도 거의 일을 잃었다. 그렇다고 양육비를 받아낸다는 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 ...

매일 갈등하고 싸우면서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시켰지만, 그 흔한 전문대학 원서조차 써보지도 못한 채 혼자 뒤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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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에서도 이렇게 고생하고 미래가 없을 바에는 미국으로 가보자. 어차피 거기서도 고생하겠지만, 견디다 보면 최소한 아이들 학교는 다니게 되겠지.... ?

나는 오래전에 미국 여행을 한적이 있어서 비자가 있지만, 정상적으로 아이들의 비자를 받기엔 조건이 않되 아이들 방문 비자를 받아 가지고 이곳에 왔다 .

우연인지 필연인지 엘에이 근교에 떨어졌다.
그러나 이 크고 사람 많은 나라에 나는 정말이지 일가친척 하나, 아는 친구하나 없다. 특별한 기술도 없다. 가진 돈도 별로 없다. 그런데도 50이 넘은 나이에 어린 딸만 둘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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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답하고 막막한 두려움 이라니... 아직 동서남북 구별도 안되는데, 도움을 청해볼 사람은 하나 없고, 단 한푼 이라도 마음놓고 헐어 쓸 수도 없다.

처음엔 종이그릇을 몇 번이고 씻어 말려가면서 사용하고, 수건도 제대로 없어서 목욕이라도 하고 나면 곤란했다.

이부자리도 제대로 없는데 집안에 난방 조차 없으니 새벽이면 추어서 잔뜩 웅크린채 날 바닥에서 잠들어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밖으로 나가 미친 듯 새벽 거리를 쏘다니며 서러움과 두려움을 삭혀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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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너무 똑똑하고 열심히 장사를 잘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탐내면서 팔라고 하는데도 안 팔고, 우리한테 물려주기로 했다면서, 장사라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며, 미국이 얼마나 장사하기가 좋은 나라인지, 더구나 이 몰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며 또 그 자리는 목이 얼마나 좋은지, 자기네가 거기서 얼마나 돈을 잘 벌었는지를 설명했고, 더구나 자기가 다 도와주고 가르쳐줄 것이니 전문가인 자기만 따라서 하면 된다고 아주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회 못 잡으면, 너희 처지로는 이런 대단한 몰에 발을 들여놓는 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니, 이건 우리가 너희한테 밥상을 차려다 바치는 거
기사입력: 2004/02/24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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