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지 않는「심벌」
 
장승재

   1983년도 어느 날이었다.  
나에게 죽마고우 둘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모임에도 거의 참석치 않아 얼마나 바쁜지 감찰 차 왔노라고 농을 하면서 점심을 사겠단다.  
“조 형사! 내 뚝배기 집에 있을 테니 급하면 삐삐 쳐.”  
동료 형사에게 이런 부탁을 해놓고 경찰서 정문 옆의 뚝배기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 마침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음식을 주문하던 친구 A가 갑자기 "감자 삶다가 불이 난 모양" 이라고 농을 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고?”  
 B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순진한 놈! 네가 그런 얘기를 알 턱이 없지.”  
나는 언뜻,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 같았다. B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A는 다시 놀려대는 것이었다.    
 
 “짜슥이, 그런 얘기도 모르고…. 이 나이 먹도록 우찌 살았노?”  
“뜸들이지 말고 무슨 얘긴지 한 번 해보라니까?”   
B는 몹시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 얘기는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 재미가 없는 기라. 그만두자.”  
A의 너스레에 나는 종업원이 가져다 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나도 모르는 얘기니까 한 번 해보라고 추켜 주었다. 순진한 B를 보니 그 옛날 학창시절이 생각나 그렇게 맞장구를 쳐 준 거였다.   
 
“거 봐라, 형사도 모른다고 하잖아.”
식당 안은 우리일행 뿐이었다. A가 못이기는 체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느 옛날에 말이여. 촌 동네에 금슬 좋기로 소문이 난 오십 대 부부가 살았더래.”    
나에게는 시시콜콜한 얘기였다.  
“그런데, 남편은 봉사(장님)고 마누라는 벙어리였어.”  
"그래서?" 
B는 제법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려는 몸짓이었다.  
“어느 날, 그 동네에 불이 났더래. 동네 사람들이 불이야 하고 마구 소리를 쳤는데 남편은 봉사지만 들리므로 여보, 마누라! 뉘 집에 불이 났는지 한 번 가보고 오라고 했겠다." 
“그랬더니?" 
“갔다 온 마누라는 벙어리였으니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B는 연신 귀를 세운다.   
“궁여지책으로 글을 써서 의사전달을 하려 해도 남편은 글을 읽을 수 없잖아?”   “거 참, 낭패였구먼.”  
나는 시치미를 떼고 웃어주었다.  
“그래서 마누라가 남편에게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해준 거야. 그러자 남편은 단번에 알아차리고 째보네 집에 불이 났더란 말이지 했대나?”  
그러나, B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래서 그 동네에 째보(언청이)가 사는 집이 있었다는 설명을 곁들이자 그제야 껄껄 웃어 제킨다.   그러자 A는 다시 신이 나서 봉사 남편의 흉내를 내는 거였다.   
 
“그래, 어쩌다가 불이 났다고 하던가? 하니 이번에는 그 처가 남편의 불알을 잡아 준거야. 그랬더니 남편 왈, 감자 삶다가 불이 났구먼, 이랬대.”  
B가 박장대소를 하자 A는 다시, 남편의 흉내를 낸다.  
“그래, 얼마나 탔던고 하니까. 이번에는 그 처가 자기 남편의 심벌을 잡아 준거야. 그랬더니 남편이 허허 지동만 남고 다 탔더란 말이지 했대나?”  
이에 배꼽이 터져라 웃어 제키던 B가 그만 엽차 잔을 밀쳐 물을 쏟고 말았다.  “짜슥이, 그런 건 어디서 주워듣고 와 이 난리고.”  
 
나 역시 웃음을 터뜨리다 이런 말로 B의 무안함을 달래주고 있는데 조 형사가 황급히 들어서는 것이었다.  
“장 형사!「금서면」에서 불이 났는데 사람이 죽었대여! 빨리 가보세.”  
나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친구들을 뒤로한 채, 조 형사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뛰어올라 화재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특리 소재「경호강」상류에 위치해 있는 외딴집이었다.  
 
국도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농로를 따라 100여 미터 거리를 마구 뛰었다. 그렇게 헐레벌떡 도착해보니 부락민들이 나서서 화재는 진압해 놓은 상태였고 관할 파출소 직원들이 현장보존을 하고 있었다. 간간이 맑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방안은 홍수를 만난 듯 까만 잿물만 가득했다.   
 
이 집은 평소 걸인풍의 오십 대 남자가 혼자 살아오던 움막집이었다. 두어 평 남짓의 방안에는 그 남자가 검은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폐허로 변한 방안을 두루 살펴보니 소형 석유난로 한 개가 좌측 구석에 넘어져 있고 시커멓게 탄 냄비 속에는 고구마 여섯 뿌리가 고스란히 재로 변해 남아 있었다.  
 
특이한 점은 사체의 전신이 모두 새까맣게 불에 탔는데도 타다 남은 팬티를 젖혀보니 이상하게도 남자의 심벌 부위는 멀쩡했다.
기사입력: 2005/05/11 [10:02]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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