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돔바」의 죽음 (3)
 
장승재


 
나는 부산지역 출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형사들이 이미 10여 회나 만났다는 용의자의 형을 찾아갔다.
 
그는 진주시 ○○동에서「○○식육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집을 찾아가 소주를 마셨다. 얼마나 마셨을까? 용의자의 형이 마침내 횡설수설하면서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내 동생을 찾는 건 문제도 아니다.
 
제2의 사고가 우려된다. 무슨 증거로 내 동생을 범인으로 몰아가느냐? 용의자의 형은 보통으로 음흉한 자가 아니었다. 나의 눈에는 이런 사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으나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판수가 오면 얼마나 살겠소? 형사나리!”
  사내는 사람을 놀리려고 아주 작정을 한 듯했다. 
  “동생을 자수시키면 알거 아니오. 도대체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는 거요?”
  나는 솟구치는 혐오감을 달래느라 술잔을 서둘러 비워냈다. 
  “내일 아침 일곱 시에 내 뒤를 한 번 따라와 보소.” 
  내 귀를 의심하였다. 
  “방금 뭐라 캤소?”
  “낼 아침에 날 따라 오라고 했소. 단, 내가 데리고 나올 때까지는 절대로 그대로 있어야 합니더.”
  참으로 뜻밖의 수확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알았소, 그런데 대관절 어디로 가는거요?”
  “산청군 신안면 우엡니더.”
  바로 그 순간에 용의자의 형을 첫 대면했을 때 펼쳐본 거래장과 거기 적혀 있던 주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형!”
  일부러 그의 몸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불렀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고 사내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거래장 한 번 더 봐도 되겠소?”
  “마음대로 봐놓고 인자 와서 묻기는 와 묻는교?”
  사내는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화장실을 간다며 밖을 나갔다. 식육점 선반위에 올려진 거래장은 낡은 노트였다. 나는 얼른 일어나 거래장을 내려 첫 장 뒷면 하단에 연필로 기재된 주소를 찢어냈다. 

  <산청군 ○○면 ○리 목장 이종우(가명)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두 시였다. 내가 담배를 피워 물자 사내는 바지 지퍼를 열어젖힌 채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자정을 넘긴 시간인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 형! 아침 일곱 시에 틀림없지요?” 
  “형사나리, 나리께서 자수로 해주는 거 믿어도 되겠소?”
  “그럼요. 자, 그럼 좀 있다 봅시다.”
  몹시 추웠다. 술기운도 아무 도움이 되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었다. 빨리 본부에 알려야한다! 진주에서 산청까지 몇 분이 걸렸을까? 나는 당직사령 근무를 하고 있는 김석태(가명) 수사과장에게 상세한 보고를 <>마친 뒤 전자봉과 가스총을 챙겼다. 

  “장 형사는 말이야! 약속대로 이행하라고…. 그렇잖아도 인천 팀으로부터 거길 한 번 덮쳐 보라는 연락이 왔었네. 관할 파출소에도 하명을 해놓았으니 걱정 말고 약속대로 해봐.”    

  나는 밤을 꼬박 새우며 판수의 형인 이동수(가명)의 동정을 살폈다. 
  아침 일곱 시가 되자 이동수는 식육점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망설임도 없이 낡은 90cc 청색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금방 시동이 되었다. 내가 승차한 차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시외버스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상했다. 약속한 산청군「신안면」쪽과는 방향이 다르지 않는가? 이동수는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대합실로 들어간다. 나는 하차하여 뒤를 따랐다. 눈이 마주쳤다.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 어무이가 오신다고 해서 마중 나왔심더.”
  참으로 맥 빠지는 소리였다. 울컥 화가 치민다. 버스가 늦는 모양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숱한 사람들이 부딪친다. 참 복잡한 세상이다. 자동차 엔진소리와 수시로 터져 나오는 경적소리. 오늘 아침은 그런 소음마저 그냥 지겨울 뿐이다. 

  아차! 사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샌 것일까. 밖에 세워둔 오토바이도 없다. 아! 큰일이다. 놓친 것이다. 나는 무턱대고 식육점을 향해 차를 몰았다. 신호등이 없었으면 싶었다. 역시, 이동수의 식육점은 비어 있었다.
 
그렇다면? 거래장에 기재되어 있던 경남 산청군 ○○면 방향으로 달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는가? 그저 괘씸할 뿐이었다. 울화를 삭이며 가까스로「신안면」에 도착하였으나 삼거리에서 그만,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한편, 이동수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곳「신안면」삼거리에서 유유히「단성 교량」을 통과하여 진주 방향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저 놈을 그냥!”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당장 달려가 한 주먹에 때려눕히고 싶었다. 그러나 격한 감정은 금물이다. 차분해져야 한다. 급회전하여 사내의 뒤를 따라갔다. 이동수의 오토바이는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잘도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신안면」에서 진주까지의 중간 지점에 이르러 앞서가던 이동수의 오토바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급제동하며 핸들을 꺾어 충돌을 피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는 차에서 급히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왜 도망쳤어! 시방 사람 갖고 노는 거야 뭐야!”
  “하는 수 없었습니더.” 
  “좋아, 그건 그렇고. 동생은 만났어?” 
  사내는 자꾸 머뭇거렸다. 
  “만났어! 못 만났어!” 
  나의 말투도 거칠어지고 있었다. 
  “못 만났습니더.”
  “없던가?”
  “나가고 없었십니더.”
  “그래, 그럼 지금은 어디 가는 길이여?”
  “명석(진주시 소재)에 있는 동생 친구 집에 가보는 길입니더.”

기사입력: 2005/05/16 [09:2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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