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돔바」의 죽음 (7)
 
장승재

 
“정말 죽고 싶제?”
  “그래!”
  “정말?”
  “……”
  “후회 안 하제?”
  “……”
  대꾸가 없다. 이제야 포기하는가 보다! 그러면 그렇지. 어디서 감히 남자의 고집을 꺾으려고…. 그런데, 어쩐지 낌새가 이상하다. 판수는 후닥닥 몸을 일으켰다. 흔들어 보았다. 축 늘어졌다. 젖가슴에 귀를 대 본다. 몸뚱이를 마구 흔들어댄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흐느적거린다. 정말 죽은 것이었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가 없다. 어디다 흘렸는가 보다. 체온이 떨어지면서 점점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어떻게 짚단을 쌓아 올렸는지 기억을 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모두 지켜본 듯하다. 짚단 주위를 살금살금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전」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까지는 뛰지 않았다.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도랑에 던져버리고 자동차 편이 용이한 산청군 생초면으로 향하는 농로로 들어서면서부터 판수의 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시오리 쯤 되는 농로를 벗어나 생초면 소재지「기사 식당」에 도착한 건 자정이 넘었을 때였다.

“밥 한 상 주이소.”
  “예.”
  사십 대의 주인 여자가 반겨준다. 식당 밖의 도로에는 화물 트럭들이 즐비하게 주차해 있다.
  “우찌 이리 늦었어요?”
  “차가 고장이 나서요.”
  판수는 그렇게 저녁상을 물린 뒤 곧장 인근에 있는「정」여인숙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을 대하기가 두려웠다.
  “방 하나 주이소.”
  오십 대의 여인이다. 첫 손님도 아닌데 무척이나 반긴다.
  “따시고 조용한 방, 하나 주이소.”
  “혼잔 기요?”
  “예.”

  207호실 구석진 방에 들었다. 촌 여인숙이어서 분위기가 어두웠다. 이부자리도 깔지 않고 벌렁 누워버렸다. 잠이 오질 않는다. 주인이 숙박부를 들고 왔다. 사인펜으로 대략 기재해 주고 계산을 마치자 주인이 돌아선다.
  “볼펜 좀 주고 가이소.”
  “예.”
  주인 여자가 사인펜을 주고 간다.
  판수는 옷도 벗지 않고 수첩을 꺼냈다. 전화번호를 찾는다. 내일 일단 형에게 전화하자. 그래서 한 50,000원을 받아…. 판수는 수첩에다 뭔가를 계속 적는다.

  <1983. 12. 30일 밤>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욕탕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자신은 알몸으로 누워있다. 뿌연 욕실에서 커다란 수건으로 알몸을 가린 여인이 다가왔다. 바로 황 여인이었다.
  “여보!”

  알몸의 황 여인은 영화배우 뺨칠 만큼 요염했다. 그 여인이 느닷없이 판수의 성기를 빨기 시작한다. 황홀하다. 금방 오르가즘에 이른다. 황 여인이 갑자기 성기를 깨물어 버린다.
  “악!”

  너무나 심한 통증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꿈이었다. 정말 몸서리쳐지는 악몽이었다. 성기의 아픔은 꿈을 깬 뒤에도 묵직하게 남아 있었다. 시계를 본다. 새벽 네 시 사십분이다. 그럴 리가? 그래,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라! 아니야, 팔에 힘을 줄 때 딸꾹! 하는 소리가 났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현장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지금 여인숙에서 잠을 깬 사람은 없을 거였다. 여인숙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에 주인이 머무는 내실이 있고 좌측에는 부엌이 있다. 판수는 살금살금 부엌으로 다가갔다. 발을 떼었다. 부엌 안은 불을 켜놓아 훤하다. 무엇인가가 반짝 빛을 발하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꼼짝할 수가 없다. 가까스로 동정을 살펴보니 과일 깎는데 쓰는 스테인리스 칼이었다. 갑자기 그 칼을 소지하고 싶어진다. 저 칼을 가져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판수는 그 칼을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여인숙을 빠져 나왔다. 도로의 좌우를 살펴보았다. 통행차량은 물론 보행인도 보이지 않는다.

  현장에 다시 도착하였을 때는 먼동이 트고 있었다.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거리낌도 없었다. 판수는 밤에 쌓아올린 짚단을 하나씩 헐어냈다. 시신의 옷자락이 삐쭉 나온 것은 그의 발밑에 손목이 밟혔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은 것이 분명하다. 가끔씩 바람이 휑하니 지나간다. 자신의 성기를 깨물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보니 어쩜 그 악마 같기도 했다. 에이, 더런 년! 내 신세 다 망쳐 놓고 더럽게도 죽었구나! 다시는, 내 꿈에 나타나지 마라!

  판수는 여인숙에서 훔쳐온 과도로 시신의 목을 두 번이나 힘껏 찔러버렸다. 가만, 짚더미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난 듯하다. 숨을 멈췄다. 조용하다. 그런데 부스럭거리며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저벅! 저벅!」

  소리는 점점 커지며 선명해진다. 굵은 땀방울이 흐른다. 도대체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목을 조여 온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바로 그때
  「께갱!」
  개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말 졸도할 뻔하였다. 놓아기르는 강아지 두 마리가 새벽 산책을 나온 것이었다.

  판수는 허겁지겁 짚단을 다시 쌓아 올리고「○○전」을 돌아 나오면서 칼을 던져버렸다. 판수는 산청읍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마침, 백토(白土)를 운반하는 트럭이 다가왔다. 손을 들었다. 쉽게 승차시켜 주었다. 진주에 도착하니 모두가 바쁜 걸음걸이였다. 어느 새, 숱한 인파 속에 판수는 휩싸이고 있었다. 공중전화부스에서 전화를 걸었다.

  “옆집에 이동수씨 좀 부탁하입시더.”
  “좀 기다리세요!”
  버스가 정차하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누고?”
  “형님입니꺼?”
  “누고? 판수가?”
  “예, 판숩니더.”
  “우째 그리 연락이 없었노! 어데고?”
  “형님,「합동 다방」에 좀 나오이소!”
  “그래, 알았다.”
  “돈 좀 가지고 오이소.”
  “돈이 어데 있노!”

  「합동 다방」에는 길 떠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판수는 구석진 자리에 가 앉았다. 약 5분이 지났을까? 겨울 돕바를 걸친 형이 나타났다. 시선이 마주쳤다. 형이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판수는 돈부터 요구했다.
  “형님! 급합니더, 돈 좀 주이소!”
  “니는 만나자 마자 돈 이야기고? 뭐가 그리 급하노!”
  주위를 살피던 판수는
  “형님! 그 여자, 가 버렸소.”
  “누구 말이고?”
  판수는 말없이 양손으로 목을 죄는 흉내를 내 보인다.
“죽였다 말이가!”
  연신 사방을 살피면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던 판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형은 더 이상 할말을 잊은 듯 질린 안색이었다.  
  “내가 가진 거는 이거뿐이다. 삼촌한테 가 있어라.”
  그때부터 판수는 산청군 ○○면에 있는 삼촌의 목장에서 목부로 은신해 있다 잡혀 온 것이었다. 


  판수의 자백은 전부 녹음이 되었다.
  판수의 자백이 살인에 대한 동기로는 석연치 않은 면이 없지 않았으나 현장검증에서 범행에 사용한 칼과 장갑을 수거 할 때 부락이장을 참여시켰다. 그 이외의 증거물로는 사인펜으로 기재된 판수의 수첩과 숙박부 그리고 라이터가 추가되었고, 시신에서 추출된 정액에 대한 감정결과까지 그의 것으로 맞아 떨어져 이판수는 1984년도 전국 제1호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구속이 되었다.


♣ 


 이 사건을 놓고 음미해 본다면「현장은 보고(寶庫)」라는 말을 절감하듯이 사체를 정밀하게 관찰하였다는 점.

공명심을 버리고 공조수사 체제로 전 수사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시종 수사본부와의 연결이 잘 되었다는 점.

조사실의 분위기조성과 기회포착 및 피의자의 입장에서 범행을 추궁하였다는 점 등을 제외하고는 의례히 사람이 죽었다는 신고를 받으면 그냥 일반 변사겠지 하고 쉽게 생각한 점.

현장관찰 시, 사체를 놓고 돌로 찍었다느니 들쥐가 파먹었다느니 함부로 속단한 점.

범인의 형 이동수가 따라 오라하여 그 말만 믿고 미행에 실패한 점.

「너 스스로 왜 그랬는지 솔직히 털어 놓으면 정상 참작해서 얼마 안 살고 나오도록 해 주겠다.」고 유도심문한 점.

그리고 조사실에서 범행 추궁하면서「그럼, 느거 형이 칼질을 했단 말인가?」라고 생각 없이 질문한 점 등을 반성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기사입력: 2005/05/21 [09:1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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