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아기를 낳다
 
장승재

 1984년도였다.
  이른 새벽에 삽을 메고 논으로 가던 농부가 어린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도로를 건너 언덕 아래로 막 내려서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벽의 정적이 아니면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아주 미약한 울음이었다. 이곳에서 웬 아기 울음소린가? 농부는 오금이 저리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농부는 머리털이 한꺼번에 일어서는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응애~.”
  이번에는 제법 큰 울음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흰 물체도 시야에 들어왔다. 농부는 숨을 가다듬으며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다. 정말 갓 태어난 아기가 거기 있었다. 입술에는 아직도 피가 벌겋게 묻어 있는데 아기는 제 손등을 빨면서 바동거리고 있었다. 농부는 삽을 내팽개치고는 낡은 보자기에 싸여진 아기를 안고 파출소를 향해 마구 뛰었다.


  “여기로 오시면 어쩝니까? 병원으로 가시지 않고….”
  소내근무 중이던 김 순경은 농부의 설명을 들을 틈도 없이 구급차부터 호출했다.

“천벌을 받을 사람들이지!”
  순박한 농부는 얼굴도 모르는 아기의 부모를 원망하고 있었다. 김 순경의 보고를 받은 나는 정 형사와 함께 출동했다. 한 시간쯤 지나 파출소에 이르니 다행히 아기의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통보가 와 있었다. 사건을 접수한 김 순경은 근무를 마친 뒤였고 강 순경이 소내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기는 어디에 있소?”
  “넷, 계장님! 저기 시장 통 아래에 있는 보건진료소에 있습니다.”
  보건진료소 소장의 설명으로는 아기가 모체와 분리된 시간이 대략 다섯 시간 전으로 추정이 된다면서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현장은 동네 외딴집에서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이었다. 비포장 도로 아래로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어른들의 발목을 적실만한 물살이 흐르고 있는 도랑 위 풀숲에서 출산의 흔적을 발견했다. 피 묻은 두루마리 화장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잡초가 우거진 곳에는 몸부림을 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산모는 심한 고통 속에서 아기를 낳은 것 같았다.


  나는 마을 여자들을 상대로 특별 호구조사를 해볼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하면 출산한 여자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경남 산청군 ○○면 ○○리 소재「○○마을」의 주민 명부부터 작성하여 찾아 갔다. 100여 호 남짓 큰 마을이었다. 13세 이하와 50세 이상은 제외시키고 우선 급한 나머지 14세부터 20세까지의 여성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살펴보니 82명이나 되었다.

 

그 다음으로 21세부터 40세까지의 여성을 조사해보니 47명이었다. 사건의 성격과 현장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최소한 세 곳의 마을을 이런 식으로 점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탐문에 돌입하고 보니 대개의 여성들이 출타 중이어서 별 진척이 없었다. 그래서 근처의 여자중학교에 전화를 걸어 결석자를 파악해보니 모두 7명이었다.

 

그 중 3학년 학생은 학교장의 딸로 서울 모 병원에서 장기 입원중임이 확인되었고 1학년 4명은 이미 1주일 전 집단으로 가출을 하여 수배 중이었다.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학생은 군(郡) 단위 학교에서 퇴학 처분되어 얼마 전 전학을 온 학생이었다. 수소문한 결과, 예상했던 대로 그 여학생은 산청읍에서 재력가로 손꼽히는 집안의 넷 째 아들과 사귀고 있다는 게 포착되었다. 우리 수사팀은 그 아들을「만큐 당구장」에서 찾아냈으나 서로 싸우고 헤어진지가 벌써 두 달 째라고 했다.


  “공장 돌렸나?”
  “예?”
  “야, 이놈아! 애인하고 같이 잤느냐 말이다?”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사내아이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나 계속 추궁한 결과 여자아이가 임신한 사실을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싸우고 헤어진 뒤로는 만나지 않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정 형사! 모녀가 사는 집으로 한 번 가보세.”
  산청읍에서 다시 관할 파출소로 차를 돌렸다.


  「황매산」의 능선을 따라 꼬불꼬불한 비포장 길을 오르자 초겨울의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지고 있었다.
  “계장님, 파출소에 들렸다 갈까요?”
  “그렇게 하지.”
  파출소의 소내근무자가 가르쳐 준 모녀의 집은 얼마 전에 발생한 도박사건을 수사하면서 무려 13명이나 검거했던 포구나무집 근처였다.   
  “실례합니다.”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대꾸가 없다.
  “농촌 지역은 바로 이게 문젭니다. 어데 물어 볼 데가 있어야지요.”
  정 형사가 투덜거렸다.


  “소변이나 보고가세.”
  나는 이렇게 말하며 화장실을 찾느라 장독대 반대편의 헛간으로 발을 떼는데 부엌방에서 인기척이 났다.
  “안에 누구 있어요?”
  “……”
  “실례합니다.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인기척이 분명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부엌방의 옆문을 당겨 보았으나 안으로 잠겨있었다.
  “정 형사. 이 문을 한 번 열어보게.”
  이렇게 지시하고 소변을 보고 있자니 정 형사의 외침이 들렸다.
  “계장님! 잡았습니다!”
  나는 잰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얼굴이 퉁퉁 부은 아낙네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나는 날카롭게 쏘아부쳤다.


  “아기는 어디 있소?”
  여자는 고개를 떨군 채 대꾸가 없다.
  “손 좀 봅시다.”
  손톱 사이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니 앳된 소녀였다. 면사무소에 전화로 주민등록을 확인해보니 15세의 소녀였다.
  “얘야, 우린 형사 아저씨들인데 네 아기는 지금 병원에 있단다.”
  “살아 있나요!”  
  초점 잃은 눈동자가 금세 광채를 발했다.
  “그래! 아주 건강하단다.”
  소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동안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겠어. 아저씨들은 이런 일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네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단다. 부모님은 아직 모르고 계시지?”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았다. 아저씨가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줄 것이니 아기 아빠가 누군지 말해 줄래?”
  나의 설득에 소녀는 자신이 겪은 악몽을 털어놨다.
  어느 날 밤. 소녀는 산청읍으로 영화를 보러갔다. 극장을 나오니 밤 열 시가 넘었더란다. 택시를 타려니 돈이 없고 버스는 끊겼고 할 수 없이 걸어서 집으로 오다가 중도에서 십 대 5명으로부터 윤간을 당했다고 하였다.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배가 자꾸 불러와 천으로 동여매고 학교를 다녔다는 거였다. 체육시간에 불참하면 친구들이 눈치 챌까 봐 더욱더 열심히 뜀박질을 했단다.
  나는 이 사건의 처리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영아유기죄가 아닌가? 주체는 영아의 직계존속이다. 법률상이건 사실상이건 가리지 않는다. 객체는 출산한 영아이고, 행위는 유기이다. 유기한 동기는 대개 치욕, 양육이 곤란하여 발생되는데 그 동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적용법조는 형법 제272조로서 2년 이하의 징역,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범죄이다.   
  그러나, 따지고 들면 이 소녀야말로 진짜 피해자가 아닌가? 이런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는데도 경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변명의 말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소녀의 영아유기 사건을 묵살해 버리고 싶었다. 대신 그 십대 5명을 기필코 검거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소녀의 행동은 금방 소문이 날 것이니까.

직무유기?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상태범이며, 주체는 진정신분범인 공무원이고,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인부, 청소부, 공원, 사환 등)은 제외되고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과 객관적으로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태만, 착각 기타 일신상 또는 객관적인 사유로 부당한 결과 초래는 본죄 성립하지 아니한다. 처벌은 어떠한가? 형법 제122조에 의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는 범죄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영아유기죄로 소녀를 입건하여 앞길을 망쳐야 하는가?
  불구속 입건하더라도 금방 소문이 나 소녀의 앞날은 뻔해지는 것이었다. 이 소녀는 지금의 아픔만으로도 평생을 고통의 암흑 속에서 헤맬지도 모르는데…. 
 

정말 깊은 고뇌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마침내 결심하고 정 형사를 불렀다.
  “정 형사! 자네, 직무유기를 범할 용의는 없는가?”
  이런 물음에 정 형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계장님! 그건, 바로 제가 드리려던 말씀입니다.”
  참으로 정 형사다운 대답이었다.
  소녀는 그 해에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쯤 사십 대 중반의 훌륭한 어머니가 되었으리라!



기사입력: 2005/05/23 [09:44]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경찰, 재미난 실화] 취중진담 (2) 장승재 2005/05/25/
[경찰, 재미난 실화] 애가 아기를 낳다 장승재 2005/05/23/
[경찰, 재미난 실화] 「도돔바」의 죽음 (7) 장승재 2005/05/21/
[경찰, 재미난 실화] 「도돔바」의 죽음 (6) 장승재 2005/05/19/
[경찰, 재미난 실화] 도돔바의 죽음 (4) 장승재 200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