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1)
 
장승재

 1984년도 어느 날 오후였다.
  “거기가 경남 산청경찰서입니까?”
  “네, 산청경찰서 형사계장입니다. 누굴 찾으십니까?”
  “아아 네, 그러세요? 잘되었군요. 그러지 않아도 형사계장님을 찾으려고 전화를 했었는데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3반 고광준(가명) 경사라고 합니다. 계장님, 혹시 계장님 경찰서 관할에 지리산「칼바위」라는 곳이 있는지요?”
  서울 말씨로 제법 톤이 굵은 음성이었다.
  “네, 있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있기는 있군요. 바쁘신데 전화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협조를 구할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요. 내용은 계장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리기로 하고 우선 그런 곳이 있는지 확인을 해 보았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그때 뵙지요. 그럼, 수고하세요.”

  이 전화를 받은 뒤 나흘이 지났을까? 정말 서울에서 고광준 경사가 그의 반원 2명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고광준 경사가 요구하는 협조사항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경찰서 시천파출소 관할에 위치해 있는 지리산「칼바위」까지만 안내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로 그러는지 궁금하였으나 질문을 뒤로한 채 당연히 그렇게 협조를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한 뒤 사무실로 안내하여 정중하게 모시고 따끈한 커피를 대접하였다.

  이들 서울 손님들을 각별하게 대해준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옛날 내가 수사 부서에 입문하여 모 경찰서에 기소중지자를 인수하러 갔을 때였다. 그 당시 기소중지 담당자가 자기 업무에 빠져 한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해버려 얼마나 기분이 상했던지. 그래서 나는 이들이 될 수 있는 한 편안하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었다. 

  “고 반장님, 먼데서 이렇게 손수 오셨으니 꽤나 중요한 사건인가 봅니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아 참, 이거. 저희들이 아직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상당히 오래된 사건입니다만 저희가 찾아가는 그 곳에 사람이 암매장 되어 있다는 거예요.”
  “네에? 사람이 암매장 돼 있단 말입니까?”
“저희들도 사실은 반신반의하고 왔습니다만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러면서 약도인 듯한 종이쪽지를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언뜻 보니 간략하게 그려진 등산로 같았다.

  “그래요? 저희 관내에 그렇게 오래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희가 해결을 하지 못한 미제사건이겠군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러니까 10여 년 전 여기 지리산으로 친구 두 사람이 등산을 갔다가 사소한 언쟁으로 시비를 벌인 끝에 한 친구가 휘두른 야전삽에 맞아 그만 그 친구가 사망하여 그곳에 묻어 두었다는 거예요.”
  “어쩜, 그런 일이…. 그런데 그 첩보가 어떻게 서울에서 입수가 되었습니까?”
  “참, 우연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즉심 피의자가 보호실에서 횡설수설하는 소리를 저희 경찰서 근무자가 듣고 그 내용을 범죄첩보로 제출하여 저희 반으로 하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고광준 경사와 함께 서초경찰서에서 즉심 담당자로 근무하고 있는 김호일(가명) 경장이 서울 청량리경찰서에서도 같은 업무를 담당했었는데 어느 날 보호실에 입감된 최춘식(가명)이 술에 만취되어 그렇게 횡설수설 했다는 거였다.

  “야, 이 새끼들아! 네 놈들이 경찰이라고? 웃기는 새끼들! 사람을 죽인 놈이 이렇게 돌아다니는데도 모르고 있으면서 네 놈들이 경찰이라고? 야, 이 새끼들아! 뭣 땜에 이 문을 닫아놓고 있는 거야? 문 열지 못해? 이 병신 새끼들아!”
  김 경장에게는 참으로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면서 난동을 부리다가 제풀에 곯아떨어지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 김 경장은 그 사내를 향해 비꼬는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 말이야! 간밤에 사람을 죽였다고 꽤나 난동을 부리던데 그게, 사실이야?”
  그러나 당사자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식으로 얼버무렸고 김 경장 역시 술에 취한 실언으로 간주하여 대수롭잖게 지나쳐 버렸다는 거였다.
  그런데 참 묘한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김 경장이 현재의 경찰서로 발령을 받아와 야간 당직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밤. 그 즉심 대상자가 음주소란 혐의로 보호실에 입감되면서 김 경장을 알아본 것이었다. 

  “어, 김 경장님 아니시오?”
  “누구시더라? 아 그래, 저쪽 서(署)에 있을 때 만났던 사람이 아닌가? 이 사람아, 아직도 그 술버릇을 못 버렸어. 오늘은 보아하니 많이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나저나 이제는 좀 자제 하시게나.”
  “김 경장님! 거, 담배 한 대만 주시오.”
  “이 사람이 아직도 술을 못 깨고 있네 그려. 여기가 어디 누구네 집 안방인가.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다 하고 있어.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이렇게 마셨는가?”

  “내가 안 마시고 배기겠소? 그 자슥이 10년이 지났는데도 밤마다 꿈에 나타나서 나를 괴롭히는데 내가 안 마시고 배기겠소? 김 경장 나리!”
  “참, 그렇지! 그때도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하더니만 아직도 쓸데없는 소리를… 쯧쯧. 보아하니 당신은 죽기 전에는 사람 되기 다 틀렸네 그려. 나이가 들면 뭔가 좀 달라져야지…. 그런 소리하면서 술주정한 게 내가 알기로도 이태 전인데. 이제부터는 나를 봐도 아는 척 말게나.”

  “와! 참말로 미치겠네! 김 경장님요. 오늘은 단둘이니까. 내 말 좀 들어 주실래요?”
  “집어 쳐! 또 그 소리. 자, 이 냉수나 한 잔 마시고 술이나 얼른 깨도록 하게.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난 듣기 싫으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게, 이 사람아!”
  김 경장은 이렇게 꾸짖으면서 냉수를 한 컵 가져다주었다. 그런데도 사내는 냉수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이러시네. 귀신도 10년이 지나면 까먹는다고 하던데 이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꿈에 나타나니 내가 미칠 지경이 아닙니까? 김 경장님! 거 있잖아요. 사람을 죽이고 나서 몇 년이 지나면 그 뭐라더라? 공, 무슨 기간이 있는 거 있잖아요. 죄가 사해 지는 거 말예요.”

  “공소시효 말이구먼?”
  “네, 공소시효 말입니다.”
  “사람을 죽인 살인죄는 공소시효가 15년이라고 알고 있는데 뭐야! 이거, 당신이 정말 사람을 죽였다는 거야? 실성을 해도 유분수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자수를 하면 될게 아닌가. 내 지금 당장 강력계 형사들을 불러다 줄까? 어찌된 사람이 술만 들어가면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가 말이야!”
  “그래요, 제가 10년 세월을 그 일 때문에 술로 살아왔는데 요즈음은 너무 심하게 꿈에 나타나 괴롭히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파출소에 찾아가서 잠을 좀 재워 달라고 하면 모두 정신 나간 놈이라고 쫓아버리고…. 그래서 일부러 취객을 가장하여 이렇게 잡혀 오는 거예요. 흑! 흑! 아무도 내 심정 모르실 겁니다. 흑! 흑!”

  술도 참 더럽게 마신다고 무시하던 김 경장은 눈물까지 흘리며 늘어놓는 사내의 푸념에서 예사롭지 않은 무엇인가를 느꼈다.

기사입력: 2005/05/24 [14:3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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