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2)
 
장승재

 
“이 사람아!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죽였다고 이 난리야?”
  “김 경장님, 물 한 잔만 더 주실래요?”
  김 경장은 아예 주전자 째로 가져다주었다. 사내는 단숨에 두 컵이나 연거푸 들이켰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고 처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씀을 다 듣고 나서 그곳으로 형사들을 보내 제 친구 시신이 거기에 있는지 꼭 확인을 해 주셔야합니다. 그래야 제가 자수를 할 수 있을 거니까요.”
  김 경장은 과잉반응을 자제하면서 의자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내로 하여금 마음껏 지껄이도록 내버려 둘 참이었다.
그날 밤, 김 경장이 들은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10여 년 전이었다.
  최춘식과 문기윤(가명)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 사이였는데 이들은 졸업을 할 때까지 늘 붙어 지내어 결석한 날짜마저 같을 지경이었다. 두 학생은 이런 우정의 돈독함을 과시라도 하듯 여러 가지 사고를 많이 일으켰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는 얘기겠지만 그 특별한 우정과 의리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퇴학처분 직전에서 구제되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사는 곳도 달동네 이웃지간이어서 군대생활마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전역했다. 참으로 질긴 인연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아무런 직업도 없이 한 해를 보낸 어느 날, 두 사람은 지리산으로 등산을 갔고「칼바위」아래에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게 되었다. 즐거운 산행이 한 주일쯤 지났을 때 문기윤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최춘식은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집에 가면 뭐하느냐면서 거절했고 두 사내는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아주 사소한 말다툼 이었으나 결과는 너무나 끔찍했다. 문기윤이 혼자 하산하려 하자 친구지간의 의리를 내세운 최춘식은 홧김에 야전삽을 휘둘렀는데 그만 그게 문기윤의 왼쪽머리를 스치면서 그의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최춘식은 너무나 황당하고 겁이나 엉겁결에 친구의 시신을 현장에 파묻고는 서둘러 하산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날 밤부터 최춘식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악몽에 시달렸다. 매일 밤, 죽은 친구가 나타나 자신을 해치는 꿈이었다. 어떤 날은 톱으로 발목을 자르며 밤새도록 괴롭혔고 또 어떤 때는 곡괭이 비슷한 흉기로 내리찍기도 했다. 한 번은 토막 낸 뱀을 담은 자루를 걸머지고 그 친구와 산길을 한없이 내려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자루를 메고 타는 목마름에 시달리다 계곡에 엎드려 물을 허겁지겁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를 짓눌러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고통 속으로 휘몰아 넣기도 했다. 참으로 끈질기게 이어지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최춘식은 술을 퍼마셨고 세월이 흐르면서 음주의 횟수와 양도 자꾸 늘어 이제는 심신이 다 허약해져 헛것이 보이기까지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또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니 영문을 모르는 주민들은 다투어 신고를 하게 되고…. 이래서 그 동안 즉심에 회부된 것만도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사실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반신반의하는 서울 손님들을 안내하면서 우리 쪽에서는 삽과 곡괭이를 준비했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관리하는 매표소를 지나 일행은 곧바로「칼바위」로 향했다.「칼바위」는 오륙 미터 높이의 뾰쪽한 입석 바위였다. 그 바위 아래에 여장을 풀어놓고 계곡으로 내려가 땀을 식히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곳의 지형은 바위 주변만 평지였다. 그 외는 전부 급경사였다. 나는 매년 지리산 산악수색에 동원되어 이 곳을 자주 지나쳤는데 등산객들이 텐트를 쳐 놓고 야영을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서울 손님이 가지고 온 약도를 보니「칼바위」바로 앞에 X자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평지는 대략 10여 평 정도였고 그나마 잡초가 우거 진데다가 갖가지 오물마저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 파 나가야 할 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고 서울 형사들이 먼저 나섰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잡초와 오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우리 쪽 형사들도 작업에 동참하여 한창 땀을 쏟는데 서울 고 경사가 비명소리를 내며 뛰쳐나왔다.

  “악!”
  그가 잡초를 제거해 나아가던 풀숲 바로 앞에서 사람의 팔인 듯한 물체를 발견한 것이었다. 먼저 다가간 우리 경찰서 박 형사가 그걸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건 얼토당토않게 마네킹의 팔이었다. 고 경사가 비명을 지른 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누가 봐도 사람의 팔과 너무나 흡사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10여 평의 평지를 모두 파헤쳤으나 사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술주정뱅이의 허튼 푸념에 완전히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고 경사는 벌써부터 울화를 삭이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더 이상의 작업이 불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우리 일행들은 하산을 결정했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모두 지친 상태였다. 아무래도 시골 형사들의 체력이 나았다. 먼저 하산한 우리 경찰서 형사들은 서울 손님들을 기다리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서울서 온 형사들이 미안하다며 사우나 있는 곳으로 가서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당시 우리경찰서 관할에는 각 읍, 면 단위로 공중목욕탕이 한 곳씩 밖에 없었다. 서울 손님들한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행은 공중탕을 찾아 피로를 풀고 저녁식사를 했다. 결국 서울 손님들은 그 술주정뱅이를 동행하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돌아갔다.

  그렇게 헤어진 뒤, 약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고 경사가 아주 밝은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이번에도 먼젓번처럼 나를 찾으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연락도 없이 현장작업을 했다는 거였다. 그리고 전에 작업했던 바로 옆에서 사체를 발굴하여 현장검증까지 마치고 지금 서울로 가면서 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고 경사의 말에 의하면 그 술주정뱅이를 데려온 덕에 사체는 금방 찾았고 그 곳이 마침 화전민들이 숯을 구웠던 곳이어서 많은 숯이 깔려 있었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체는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잘 보존된 상태였고 왼쪽 머리부분에 정말로 예리한 흉기로 내려찍은 듯한 골절흔이 남아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여 들려주기를 시신이 발굴되는 순간 그 주정뱅이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기절을 해버려 모두들 마음을 졸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밝은 표정을 짓고 차창을 스쳐가는 시골풍경에 도취되어 홀가분한 기분으로 서울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취중진담(醉中眞談)의 사건을 계기로 나는 두 가지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먼저 죄를 지은 사람은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아 갈수가 없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찰관이라면 술주정뱅이의 하잘 것 없는 넋두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것도 깨우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사건은 야전삽으로 사람의 머리를 후려치면 사망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있으므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여 살인죄로 다스리는 것이 옳다고 보여 진다. 그렇다면,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그 주정뱅이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나 만약, 이 사건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인정하여 상해치사죄로 의율하게 되면 이 죄는 공소시효가 7년이므로ꡐ공소권 없음ꡑ으로 종결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곰곰 생각에 잠기다가 상해치사죄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 상해범의 → 상해결과발생 → 다시 치사결과발생… 본죄(상해치사) 성립
☞ 상해 이외 살해에 대한 범의가 있으면 살인죄 성립
☞ 폭행 또는 상해의 범의만 있었다면 상해치사
☞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고의가 없었다면 과실치사
☞ 판례는 상당인과관계설을 취하고 있다.



기사입력: 2005/05/25 [09:4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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