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과 1624년의 이괄의 난
 
이원희 기자
방영되기 몇 달 전부터 유명 탤런트 출연과 아직 추징금을 다 갚지 못한 전직 대통령의 집권 과정을 담을 정치 드라마 제5공화국의 열기가 뜨거웠는데 12.12 사태 같은 고급 장교들끼리 갈라서 정치 군인이란 닉네임이 붙고 북과 불과 떨어지지 않은 상태서 교전을 벌이고 병력이 오간건 수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극상이 1624년엔 불가능했던 걸 극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보게 한다. 도원수 장만 휘하의 부원수겸 평안병사 이괄이 군사를 빼돌려 당시 1만 2천의 병력으로 경복궁 인근 무악재까지 진격해 인조 임금이 공주로 21일동안 피신한적이 있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일등공신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적도 있지만 당쟁에 휘말려 자신의 아들이 체포되고 자신 또한 국문에 처할 위기에 놓이자 정변을 시도한 것.
 
이후 관군에 패퇘해 이천 묵방리까지 쫓겨갔을 땐 부하가 채 열명도 되지 않았고 그 부하들 손에 한명련과 함께 목이 베어져 군복에 둘둘 말아 조정에 보내짐으로써 난리는 수습됐다.
 
경상도 오지에선 인동 장씨 장만 후손과 고성 이씨 이괄간의 혼사가 오래전부터 성사되는줄 아는데 선대는 관군과 반군으로 갈라져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벌였지만 후대에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오랜 관행의 재현으로 보인다. 성공하면 충신이고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건 동서고금을 통해 여러 사건으로 입증돼 왔다.
 
요샌 국민 투표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위정자를 뽑지만 몇몇 나라는 일당 독재에 의해 핵무기로 방패막이를 하거나 매일 인명이 살상되는 테러로 날지새울 줄 모른다.
기사입력: 2005/06/12 [14:4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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