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 갈등, 맥아더 동상에 이르다
 
이원희 기자

어제 17일과 오늘 18일 지상파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것중 하나가 인천 자유 공원내의 맥아더(1880-1964)장군 철거를 둘러 싼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다.
 
태평양 일부의 연합군 사령관으로 일본이 항복한후 점령군 촐사량관이 됐는데 한국전이 발발하자 un군 총사령관이 돼 인천과 군산중 하나를 택해 상륙 작전을 감행해 적의 허를 찌르는데 성공하지만 중국의 개입(抗美援朝)이 있자 트루먼에게 중국 해안 봉쇄, 만주 폭격, 대만 국부군 사용을 강력히 권유하다가 1951.4 해임됐다.
 
한창 판금된 책들이 해금될 즈음인 88년을 전후로 1945년 이후 미군의 입성을 점령군으로 표현한 좌파적 출판물도 많았다.
 
동상 하나 철거한다고 해서 60년 넘게 주둔하고 있는 주둔군 지위협정이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작용하는게 아닐 터.. 55년 전엔 한반도가 일본의 적화를 막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에 미국을 비롯한 un군이 파병됐지만..
 
다시금 분쟁이 일어난다면 유고 내전처럼 서방 국가들이 피 사이를 피해 다니는 형국이 되지 않는다고 볼수 없다. 최후 승자와 거래하겠다고 뒷짐을 지고 있을지 모를 일...
기사입력: 2005/07/19 [14:34]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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