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가진 많은 이름들 중에서
 
안희환 기자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들 한다. 그만큼 다양한 이미지 변화를 보여주는 여자의 특성을 인정하는 말 같다. 아니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여자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똑같은 모습과 태도라면 오히려 식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여우같은 여자가 곰 같은 여자보다 낫다는 말도 그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고...

여자의 다양성은 여자를 부르는 명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어떤 명칭들이 있는가?

소녀.
아직 어린 여자 청소년을 일컫는 말이다. 낙엽이 구르는 소리에도 까르르 웃는다고 하는 고전적인 말을 떠올리게 하는 개념. 아직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느낌을 갖게 해준다.

아가씨.
이 명칭은 여자들이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심지어 시집간 이들이 아가씨같다는 말을 들으면 깜빡 죽는다. 활기차고 약간은 도도하거나 새침한 이미지도 풍기는 용어. 남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딱 좋은 이름이다.


아줌마.
이 말이 요즘처럼 푸대접받는 때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아부성을 띈 미시족이라는 말로 아주마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아가씨에 비해 몸매도 매너도 센스도 떨어지는 그런 존재. 뭔가 뒤떨어진듯한 의미로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유부녀.
아줌마라는 말과 같은 말이지만 느낌은 조금 더 고급스런 것 같다. 임자있는 여자라는 느낌도 들고 아가씨보다는 성숙한 냄새를 풍기기도 하는 용어이다. 여자들은 아줌마보다 유부녀란 말에 저항감이 덜한 것 같다. 그런데 평상시에 유부녀라고 부르기는 이상하다.


며느리.
이 말은 시댁과의 관련성 속에서 나오는 말이다.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주눅 들고 마음이 우울해진다는 여자들도 있었다. 여자들에게 무언가 커다란 짐을 지운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말인 것 같다.

이외에도 여럿을 더 들 수 있는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에게서 불려지는 언니라는 이름, 어린 남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누나라는 이름, 나이가 많이 들어서 불리게 될 할머니라는 이름, 하기야 요즘엔 동성의 여자들에게서 듣는 형이란 말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이름들 중에 가장 위대하고 놀랍고 위력적인 이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온갖 종류의 감정과 느낌, 그리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자를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이름이라고도 생각되며 큰 소리치는 남자들도 이 이름 앞에서는 예의를 갖춘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어제 아침에 내 어린 아들을 말레이시아로 보냈다. 선교사로 나가있다가 들어온 친구 편에 따라보낸 것이다. 어린 시절에 많은 것을 경험하라고, 또 영어도 많이 배워오라고 보냈는데 아들 녀석은 썩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나섰다가 공항의 수많은 사람을 보고 기분이 풀려 출국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 아내, 즉 내 아들의 어머니께서 계속 울어대는 것이다. 차 타고 공항에 가면서, 차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리고 밤 늦게는 엉엉 소리내며 울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아들이 누웠던 자리에 아들이 잘 이불을 못펴니까 그렇게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울고 있는 아내를 한참 동안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에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똑같은 부모인데도 사실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자녀를 놓고 담담하기가 어려운가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외면 사모간가 뭔가 하는 싯구도 떠올라서 읊어보았다.

호미도 날이언마라난 낫같이 들리도 없으니이다. 어버이도 어이어신 마라난 어머니 같이 괴실 이 없어라 어머니 같이 괴실 이 없어라.
 
기억에 더듬어 쓴 것이라 정확하게 인용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그 의미를 조금 풀면 이렇다. 호미도 날이 있지만 낫같이 잘 들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어버이이시지만 어머니같이 사랑할 이 없습니다. 어머니같이 사랑할 리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내가 내 아들을 사랑하고 아낀다 하지만 내 아내만큼 사랑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내 자신을 가장 아끼고 그 다음이 아내이며 그 다음이 아들인 것 같은데, 내 아내는 아들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그 다음은 남편이며 마지막이 자기 자신인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바로 나의 어머니. 그러면서 갑자기 뭉클해지는 건 뭘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아플 때 밤을 세워 간호하시던 모습, 가난한 형편에 어쩌다 나온 맛난 음식을 우리에게 먹이시느라 손도 대지 않으시던 모습, 땡볕에 나가 잡초를 뽑으며 일하다 받은 푼돈으로 학용품을 사주시던 모습 등이 오버랩된다.

어느 날 내 여동생이 내게 말했다. “오빠 나 엄마 가계부를 보았어. 엄마를 위해 쓴 돈이 하나도 없었어. 다 우리들만 위해서 썼어”. 그리고는 운다. 후에 나도 그 가계부를 살짝 들여다보며 울 수 밖에 없었다. 장성한 남자를 울게 만드는 존재 어머니.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맞다. 어머니는 강하다. 그러나 강하면서도 눈물 나게 하는 감수성이 풍성한 이름이다. 안심하게 만들고 편안하게 만들고 용기를 내게 만들고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여자의 이름인 어머니. 나는 그 이름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기사입력: 2005/08/18 [09:5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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