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의 파괴력
 
안희환 기자
열등감은 정신적인 질환이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의 육신이 건강하지 못하듯이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의 정신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열등감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우리 안에 자리 잡는다.

어찌보면 그 열등감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하기에 뿌리내린다고도 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결함이 있더라도 부모가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고 대해준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그 예로 천상의 소리라고 일컬어지는 레나마리아를 들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이 태어났다. 게다가 한쪽 다리는 턱없이 짧다. 그러나 레나마리아는 한없이 밝기만 하다. 그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 그 부모의 역할이 지대했다. 아무런 이상도 없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딸을 대한 것이다. 자신의 딸을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관점이 고스란히 딸에게로 전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레나마리아의 부모같은 부모는 흔치 않다. 대개의 경우 자녀들의 열등감은 부모에 의해 싹이 트고 학교에서 자라나며 사회 속에서 화석화된다. 그리고 평생을 괴롭히는 가시가 되어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한다.
 
얼마전에 일어난 한 사건은 열등감이 얼마나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 한 노인이 있었다.
2. 이 노인은 자신의 집엣 부인과 말다툼을 하였다.
3. 그때 부인이 "키가 작아 함께 다니기 창피하다"는 말을 했다.
4. 노인은 아내의 말에 분노했다.
5. 그 분노를 가속화시킨 것은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내의 경력이다.
6. 거기에 선천적으로 작은 자신의 키에 대한 열등감이 추가된다. 150cm
7. 노인은 둔기를 아내의 머리를 때려 숨지게 했다.


키가 작은 것이 열등감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열등감이 증폭되어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고 마침내 살인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책임이 있다.
1. 먼저 애궂은 듯이 보일 수 있는 그의 부모. 정말 미안하지만 이토록 심한 열등감의 이면에 부모의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2. 자기 자신. 많은 부분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기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누가 뭐래도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3. 그의 친구나 이웃들.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 속에서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열등감을 가속화시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4. 그의 아내. 왜 하필 그토록 듣기 싫은 말을 했을까? 그 말에 발끈할 줄 알았을텐데...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큰 본노를 일으킬 줄 알았어야 했는데...


내가 어떤 부분에서 열등감을 느꼈을 때 그것은 극복되기까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것이 극복되어도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되곤 하였지만 그래도 극복된 부분 만큼은 이전같은 타격을 내게 주지 못하였다. 열등감의 치유는 세상살이에서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사입력: 2005/08/20 [00:2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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