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을 떠나는 슬기
부모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
 
안희환 기자

                 
                  

 
슬기라는 아이는 올해로 5살 되었는데 요즘 집안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해서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다. 아빠는 집을 나간 후 안 들어오신지 6개월이 넘어갔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몸도 마음도 안 좋은 상태이다.

엄마는 슬기를 데리고 외할머니 집으로 왔다. 외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엄마는 죄인이 되어 아무 소리 못하고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다가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그래놓고 할머니가 무서워 연락도 못한 채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지냈다고 한다.

엄마가 없는 동안 슬기는 마음이 불안했다. 가뜩이나 무서운 외할머니인데 요즘 외할머니의 몸이 안 좋으셔서 누워있는 때가 많았고 슬기가 방을 어지럽히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할머니의 짜증스러운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전에는 잘 대해주던 할머니가 아빠의 가출 이후 몸까지 아파오자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슬기는 말도 잘 못한 채 몸으로 불안함을 표시하였다. 자꾸만 오줌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참으려고 애쓰는데도 오줌이 흘러나왔다. 잠을 잘 때만이 아니라 낮에도 오줌이 새서 옷을 적셨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불호령을 내렸다. 등짝을 호되게 얻어맞는 날에는 눈물이 찔끔났는데 더 혼날까봐 소리 죽여 울어야 했다.

며칠 전에는 하루에 12번이나 오줌을 싸서 그야말로 하루 종일 구박을 받으며 지내야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몸에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줌은 주체를 못하고 쏟아지는 것이다. 요즘엔 아침에 눈까지 퉁퉁 부어서 잘 보이지를 않았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시고 속상해 하신다.

드디어 엄마가 돌아왔다. 어깨를 수그리고 기가 죽은 채 도둑 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돌아온 것이다. 슬기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가 돌아온 것으로 반가와했다. 그러나 엄마는 슬기를 보고 그다지 반가와 하지 않았다. 왠지 피하는 것도 같고...그 후로 엄마와 할머니가 저쪽에서 자기들끼리만 소곤소곤 이야기하곤 했다.

슬기는 궁금했다. 자기만 쏙 빼놓고 엄마랑 할머니랑만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아주 가끔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슬기라는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아원”이니 “입양”이니 하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의 엄마와 할머니는 우시는 것 같았다.

내일은 멀리가자고 한다. 차를 타고 놀라가는 줄 아는 슬기는 기분이 좋다. 오늘은 오줌도 싸지 말아서 엄마랑 할머니랑 화나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그런데 마음이 들떠서 잠이 오지 않는다. 엄마랑 할머니도 마음이 들떠서인지 저쪽에서 잠도 안 자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슬기도 일어나 할머니랑 엄마랑 같이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화를 내고 내일 재미있는 곳에 데리고 가 주지 않을 것 같아 꼭 참고 있다. 예전에 잠간 다니던 유치원의 선생님이 잠이 안 올 때 양을 세라고 해서 양을 세기 시작했는데 양이 자꾸만 이리 저리 도망다녀서 셀 수가 없었다. 도망다니는 양을 쫓아다니다가 피곤해진 슬기는 스르르 잠이 든다.

금천구에 사는 슬기는 내일 대구에 있는 친할아버지 댁에 보내졌다가 어디론가 나가버린 아빠가 그래도 안 들어오면 고아원으로 가게 된다.
기사입력: 2005/09/13 [12:05]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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