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김신명숙
여성의 가장 소중한 사회적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허세창 기자

▲일하는 여성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 있어서,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 방식-여기서 굳이 왜 필자가,남녀간의 사회적 차별이란 문장을 젖혀두고,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 방식이라고 표현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필자의 지난 기고 문인 "남녀 차별론 소고"를 참조해 주기 바란다.-이 급격하게 바뀌어 오는 과정에서 그 동안 남성들이 주로 맡아오던, 사회적 역할 분야의 많은 부분 특히, 소위 말하는 전문직 분야(방송이나 인터넷 교육 공무담임분야 등)에서는 여성들의 진출 비율이 거의 절반 가까이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는 소식이다.

그 사실은 단적으로 말해서, 그 동안 전통적으로 유지되어오던 남성에 의한 사회적 역할분담의 절대적인 몫이 새롭게 여성의 몫이 증대된 그 비율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절 반 가까이나 더 줄어들었다는 말과 다름이 아닌 것인데, 그에 반하여, 그 동안 남녀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 뿌리깊이 내재되어 있던, 남성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만큼은, 아직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이중 삼중으로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예를 한 번 들어보자면, 여기 한 남성집단과 여성집단이 존재한다고 가정을 해 보았을 때, 두 집단 구성원들의 각자가 가진 지적 능력이나 업무 처리 능력 역시도 거의 엇비슷하다고 했을 경우, 마침내 두 집단 구성원들 모두는 다른 이들 모두가 선망하는 기업체의 입사시험에 동시에 응시하게까지 되었다고 가정을 해 보자.

그런데 여러 가지의 합격결과 가능성 중에서 두 집단 구성원들간 합격의 비율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게 된 경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정 해 보자. 사실, 요즘의 현실에서는 보통, 그렇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안타깝게 입사에 실패하게 된 각 구성원들의 처지를 한 번 살펴보자면,

먼저, 입사에 실패한 남성들 중에는, 만일, 과거와 같이 여성들의 입사시험 참여 비율이 거의 없거나 적기만 했었다면, 자신도 충분히 합격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 보는 이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은 실패한 여성의 입장에서도-과거 여성들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가정 이외의 다른 사회적 역할에 대한 참여 역시, 지극히 온당하다는 입장으로 바뀐 현실에서-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가져 볼 수 있는 사항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양자에 있어서 그렇게 시험에 실패한 억울한 내용(?) 그 자체는 다 같은데도 불구하고, 실패한 남성이나 여성 각자가 홀로 감내해야만 하는 그 고통의 범위나 성격만큼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띄우게 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 동안, 남녀의 사회적 역할 방식이 급격히 변해왔음에도-여성에 의한 가정 이외 사회적 역할 행동이 크게 늘어난 점-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대로 잔존 해 있는 남성능력에 대한 터무니없는 주변인들의 기대심리, 다시 말해서, "여자도 쉽게 들어가는데 어떻게 남자가 되어 가지고......"라는 편견 심리라든지, "그렇게 무능력한 남자가 되어 가지고 어떻게 한 가정을 책임 질 수가 있겠는가?" 라는 등의 지나친 기대심리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오로지 실패한 남성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쏟아 지고있는, 지극히 불합리한 사회현상이 아닐 수 없다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아도, "남자도 들어가는데 여자가 되어 가지고....." 라는 말을 할 사람이나 "그렇게 무능력한 여자가 되어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한 가정을 책임 질 수가 있겠어?" 라는 핀잔을 보낼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설사, 그런 의사를 내비쳐본들, 지금의 사회 현실에서 어디 통용이나 될법한 일이겠는가.

아니, 그러기는커녕, 물리적인 힘이-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약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당연히 위로를 받거나 동정 내지는 심지어, 도움까지 받게 되는 경우가 -물리적인 신체적 힘과 지적인 능력이 전혀,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여성들에게 유독 더 많은 것이 현실 아닌가.

다시 말해서, 남녀의 능력 차이라고 하는 것은 신체적인 힘의 과소 차이에 더해서 좌 뇌(左腦)나 우 뇌(右腦)의 발달기질 차이 밖에는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유독, 남성들에게만 그런 과도한 초인적 능력-슈퍼맨 능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은 무언가 대단히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처럼, 가정이외의 사회적 역할을 주로 남성들이 담당하던 때라면, 남성들끼리의 경쟁에서 그렇게 뒤쳐지게 되었을 경우, 그런 과도한 기대-여기서 다시, 필자가 굳이 그런 과도한 기대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설혹, 남성들끼리의 경쟁에서 뒤쳐진 경우가 발생한다 해도, 주변인들이 실패한 남성 그 자체를 지나치게 비난하는 바로 그 행위부터가, 처음부터 지극히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를 앞으로 좀 더 분발 해 보라는 선의의 의미로 해석 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지난 기고 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여성들이 굳이 그렇게 꼭, 가정이라는 사회적 역할 행위-출산이나 육아 등 가정에서의 제반 사회적 역할행위-를 마다하고 또 다른 사회적 역할 행위-가정일 이외의 그 동안 주로 남성들이 담당 해 왔던 사회적 역할 행위-에 동참(?)해야만 할 근본적인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정 사회적 역할 행위인, 출산의 행위마저도 그렇게 기피 해 가면서 말이다.

다 알다시피, 여성의 몸 구조는 태아를 임신하고 그를 몸 속에서 길러내다가 출산을 해서, 정성껏 수유를 해 가 면서 보살피기 매우 적당한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한 여성의 특질은 우리 인간들이나 다른 동물의 암컷들 모두가 자연으로부터 선천적으로 선사 받은, 그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그들 자신들만의 독특한 성 역할 행위 방식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서 수유를 해 가며 키워 가는 그런 신기한 능력을 인간의 여성이나 동물의 암컷들만이 부여받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들이 인간의 남성이나 동물의 수컷들보다도 훨씬 더, 존귀하고 우월한 능력의 존재임을 이미, 자연조차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성들은 가정에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서 수유를 해 가는-남편이 벌어온 돈을 가지고-가정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남성들이 밖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 따위와는 거의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만큼의 가장 숭고한 사회적인 역할 행위를 담당하고 있었던 셈이 되는 것이다.(그런 생각이 타당성이 있다고 하는 증거는 수많은 다른 동물 종의 성 역할 방식을 가만히 살펴보아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과거로부터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잘못 자리잡은-특히, 남성들에 의하여 잘못 오도된 생각, 다시 말해서, 집에서 애나 보는 사람...... 이라든지, 살림이나 하는 사람...... 이라는 그 터무니없이 잘못된 편견들로 인하여, 지금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여성들스스로 조차도 마치, 집에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서 육아를 담당하는 일이 남성들이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일보다 훨씬 더 열등한 행위인 것처럼 오해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사회현상, 그 동안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쓰고 있던 자신의 성(姓)을 미련 없이(?) 버리고 부모의 성을 함께 섞어 쓰는 일부 여성들의 새로운 풍조에 대해서도 지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많이 알려진 여성 방송인 중에서 김신명숙 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는데, 그 여성의 최초 이름은 물론, 김 명숙이거나 신 명숙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만이 진정한 남녀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한 전통을 지니고 왔었다고 해서, 그것이 일방적으로 여성을 차별-남자보다 여성을 아래로 보는-하기 위한 발상에서였다 라는 생각을 하는 그 자체부터가 대단한 편견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애초부터 어머니의 성이 아닌, 아버지의 성으로 계승하게 한 이유라고 하는 것이, 여성을 성적으로 차별-사회적 역할 분담의 차별이 아닌, 여성의 지위를 아래로 보는 차별-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성(姓을) 아무렇게나 계승하면, 후대로 내려 갈수록 자신의 뿌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아내는데 있어 대단히 난해 해 짐으로 인해서, 그러한 애로 사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중에서 우연히, 일개 성을 선택한 것이었을 뿐이지 단지, 어머니의 성을 택하는 방식이 처음부터 무조건 못마땅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두 가지 계승 방식 중에서 단지, 어머니의 성을 계승하는 방식을 버리고 아버지의 성을 계승하는 방식을 취한 것일 뿐이라는 뜻인데, 말하자면, 하얀 계란과 노란 계란 중에서 임의적으로 하얀 계란을 먼저 택해서 요리를 해 먹은 경우만큼이나, 지극히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이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에 속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아버지의 성만을 따라온 우리의 전통이 마치, 무슨 남성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발상을 한다는 자체부터가 매우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김신명숙 이라는 이름으로 개명 해 가지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의사에 속하는 일이라서 그런 것에조차 굳이,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걸고 들 사항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개성명(改姓名)의 처음 의도 자체부터가 그렇게 지극히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면, 그런 오해정도는 뒤늦게라도 당연히 지적을 해 주어야 할 사항이 아닐까 해서 하는 소리다.

결론적으로, 오늘 날 여성들에 있어서의 본말이 전도 된 잘못된 의식. 바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서 육아를 담당 해 간다는 숭고한 행위.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자연이 부여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숭고한 사회적 역할방식인 출산의 가치의미를 스스로 마구 폄하 해 버리고, 마치, 그 것 이외의 다른 사회적 역할 행위 방식-기존 남성들이 주로 담당 해 오던 사회적 성 역할 방식-이 오히려 더 소중한 가치인 것인 양, 잘못 인식하고 여성들 스스로 남성과 경쟁해서 그를 쟁취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그릇된 인식 풍조는 필히, 개선이 되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성만을 물려받는 행위의 전통을 불합리하게 여기고서 그것을 바꾸어 보려는 행위 자체는 개인의 판단과 사고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부계 성 계승 전통이 계속해서 내려오게 된 근본적인 취지 자체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대해서만큼은 꼭,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사입력: 2005/10/03 [13:04]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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