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가정 나라의 습관 개혁을 바라며
읽고 쓰는 습관이 든 국민들의 나라
 
안희환


 
아들 녀석 때문에 너무 놀라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다. 큰 아들 효빈이가 4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녀석에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었고 그래서 [예수님]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려고 작정하였다. 나는 효빈이에게 먼저 [예수님]하고 소리를 내주었고 따라하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수백 번을 반복하니까 정확한 발음으로 따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효빈이가 방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효빈이에게 말했다. “이 녀석아!!”. 그랬더니 효빈이가 날보고 말했다. “씨팔놈아!!”. 나는 그 말을 듣고 혼내야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넋을 놓았던 것이다. 조금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효빈이를 혼내주었다. 아주 따끔하게 혼이 난 효빈이는 그 후로 욕을 배워 오질 않았다. 배우고 내 앞에서만 안 하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일을 통해 좋은 사실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 좋은 것은 오랜 훈련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습득이 되는 반면에 나쁜 것은 너무 쉽게 몸에 익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효빈이가 동네 형들 따라다니다가 애들이 하는 욕을 배운 모양인데 내가 효빈이에게 [예수님] 소리를 수백 번 하듯이 어떤 아이가 효빈이에게 그 욕을 수백 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글자 수도 많고 발음도 어려운 그 말을 너무나 쉽게 배운 것이다.


욕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나는 일이 또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주 기다란 욕이 유행을 했었다. 얼마나 긴지 한참을 외워야하는 그런 욕이었다. 그런데 그 욕이 마음에 들었든지 아니면 다른 애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건지 몰라도 많은 친구들이 그 욕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참고로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욕한 것이 10번도 안될 것임. 왠지 욕을 무척 싫어했음). 그런데 그런 친구들 중에는 간단한 교과서 내용을 못 외워 매를 맞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꼭 해야 하고 필요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보다 불필요하고 어찌 보면 유해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한 모양이다. 즉 유익한 습관을 체득하는 것보다 무익한 습관을 체득하는 것이 쉽고 간편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유익한 습관을 형성하도록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혜 있는 부모라고 한다면 자식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도와줄 것이다. 무조건 성적 나쁘다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고 말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그 자녀들이 공부를 참 잘한다. 성적이 최상위이다. 학원을 집중적으로 보낸 것도 아니고, 고액 과외를 시킨 것도 아니고, 아이큐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시험을 봤다 하면 늘 우수한 성적을 얻어낸다.


나는 그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 아이들이 저렇게 공부를 잘 하느냐고? 가만 보니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냐고? 그분이 내게 말을 해주었다. 어릴 때에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다고 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 용돈을 올려주겠다고. 아이들은 용돈을 받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을 늘여갔고 그냥 앉아 있기 심심해서 이것저것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그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그런 습관이 확실히 몸에 익혀지면서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옳거니 했다. 사실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의 최대 문제는 책상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잘 안되다는 것 아닌가?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도 막상 책상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에 종기라도 생긴 듯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 지혜로운 아버지는 좋은 습관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가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들도 좋은 습관이 있어야 한다. 나쁜 것들이 몸에 익혀지면 나라 전체가 한심스러운 모습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반면에 좋은 습관을 가진 국민들이 되면 나라 전체도 좋은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다. 따라서 나라의 지도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분야는 경제나 정치적인 현안만이 아니라 국민의 좋은 습관 형성부분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백성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던 복부제는 적들이 쳐들어왔을 때 백성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무르익어가는 곡식을 적군에게 내어주느니 백성들이 마음껏 그 곡식을 베어오도록 허락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복부제는 단호하게 거절하였고 결국 곡식들은 적들이 가져갔다. 복부제를 존경하던 백성들은 복부제를 원망하게 되었고 안 좋은 소식이 왕에게까지 올라갔다.


왕은 복부제를 심문하였다. “그대는 왜 곡식을 적들에게 넘겨주어 적군을 이롭게 하였는까? 왜 백성들이 곡식을 마음껏 거둬들이도록 허락하지 않았는가?”. 복부제는 대답했다. “폐하. 백성들이 곡식을 거둬드리도록 하면 잠간의 유익은 있지만 그들에게 남의 것에 함부로 손대는 잘못된 습관이 생기는데 그것은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습니다.” 왕은 복부제의 말에 감탄을 했다고 한다.


나도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탄을 했다. ‘맞다. 우리나라도 이런 지도자들이 일어나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당장 급한 일보다는 보다 멀리 내다보는 눈, 지금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의 진정한 유익. 그것은 국가적인 분위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인데 국민 개개인이 좋은 습관들을 형성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우습게 볼만한 항목이 아닌 것이다.


요즘 메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다. 국가경쟁력이 12단계가 상승하여 17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일을 열심히 해 온 결과라고 격려의 말을 했으며 이 일로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샴페인을 터뜨릴 만한 상황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자. 훔치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는가? 남을 밟아도 자기만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널려있지 않은가? 대박을 터뜨려 인생역전 하겠다는 썩은 가치관 등이 퍼져있지 않은가? 그런 잘못된 것들이 이미 국민들 속으로 파고들어 습관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무조건 공격하고 비방하고 욕하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다. 약물중독, 포르노 중독, 인터넷 중독도 습관이 된 후 생기는 병이다.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각 개인이, 각 가정이, 그리고 이 나라가 좋은 습관을 얻기 위해 노력해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또 여러 의식 있는 분들이 이러한 문화 운동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차피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1-2년 만에 어떤 중대한 결실을 얻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높이 올라 멀리 내다보는 새처럼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좋은 습관들이기 운동을 했으면 한다.


제일 앞서 말했듯이 좋은 습관은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훈련하고 노력해야만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러나 나쁜 습관은 자연스럽게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우리 몸에 익혀진다. 각 가정에 뿌리 내린다. 한 국가의 문화를 형성한다. 이제 각 개인으로부터 나쁜 습관에 대한 작은 전쟁을 선포하고, 이어서 국가적으로 국민들에게 생긴 나쁜 습관(문화라고 해도 좋다)에 대한 큰 전쟁을 선포하자.


그리고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기 위한 노력들을 하자. 정직하게 행동하는 삶의 자세, 땀 흘리고 노력을 해서 돈을 벌려는 마음가짐, 경쟁자의 말이라도 옳다면 박수를 쳐주는 사고방식, 즉흥적인 감정보다는 차분하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개인의 사리보다는 국가를 생각하는 넓은 정신 기타 등등.


조금 엉뚱하다 싶지만 개인과 국가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한 좋은 습관 하나를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읽는 습관과 쓰는 습관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한 반성과 돌이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독서가 국가의 힘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저마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의 한계가 뚜렷하다.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부모에게서 자라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만남들을 가졌는지에 따라서 자기만의 색채를 내게 되는 것인데 그 외의 것에 대해 생각해내는데 제한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읽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것들에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고 사고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 그러니 독서의 습관이 한 사람의 발전에 얼마나 큰 몫을 하는가?


내가 전에 가르쳤던 한 청년은 얼마 전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졌는데 시를 참 좋아해서 많은 습작을 하였다. 그러다가 등단을 하였고 여러 편의 시집을 책으로 내었다. 본업은 건축현장소장인데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 친구가 한번은 내게 하소연을 하였다. “책을 폭넓게 읽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됩니다. 그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건축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데 시간이 날 때 열심히 책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해 속상해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귀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친구보다도 더 얕은 사고의 폭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좁은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조차도 안 하기 때문이다.


읽는 것에 더해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습관은 쓰는 습관이다. 쓰는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읽는 것이 몸에 익은 사람들도 쓰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창피해서 글을 못쓰겠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무조건 쓰기 시작하라고 권해주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으며 계속 쓰면서 배우면 점점 잘 쓰게 된다고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위로해주는 차원으로서의 말이 아니다. 실제로 계속 글을 쓰고 또 배우면서 그 솜씨가 늘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표현이 보다 더 정교해지고 상상력도 발휘가 되고 논리적인 글의 전개가 틀을 잡아가는 것이다. 인내심의 결여로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 한 성장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세대학교의 민경배 원로 교수는 종종 그런 말씀을 했었다. “자신의 말로 정리가 되지 않는 지식은 진정한 자기 지식이 아니다”. 즉 머릿속에만 맴도는 지식은 진짜 지식이 아니며 그것을 정리해서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짜 자신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하물며 글로 자신의 사고를 분명히 드러낼 수 있을진대 그것은 진짜 지식을 갖는 위대한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실력과 사고의 넓이는 개인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력과 사고의 넓이를 가진 개개인이 많은 나라는 그 자체로 큰 자산을 가진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땅이 좁고 자원은 나지 않는데다가 인구만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이야말로 유용한 자산인데 그 사람의 실력이 탁월하면 얼마나 나라에 많은 보탬이 되겠는가? 그리고 읽는 것과 쓰는 것이 각 개개인의 수준과 폭을 넓혀줄 수 있으니 읽고 쓰는 습관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요즘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읽기와 쓰기의 활성화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길 잃은 사람만 양산하고 게임과 잡동사니 정보와 음란물의 홍수 속에서 읽고 쓰는 문화가 침몰하고 말지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오히려 글을 읽고 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문학 카페를 보았고 그 카페들에 모여드는 수많은 아마추어 문학도들을 보았고 상대의 글을 읽고 격려하며 또 자신의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글을 모아 책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그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이 또 글을 읽고 쓰는데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인 현상이 나라 전체 구석구석에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읽고 쓰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교양과 수준, 잠재력과 넓이를 가진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멋진 대한민국을 향하여 우리 다 같이 달려보자.

기사입력: 2005/10/04 [23:5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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