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들의 설움
홀로 남은 자의 죽음, 성공 보다 가족애 우선 돼야
 
안희환 기자

▲     © 안희환

내가 알고 지내는 한 부부가 있다. 남자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분인데 생각이 번듯하고 부지런한 분이다. 그 아내 되는 이는 조용한 스타일로 말수는 별로 없지만 따듯하고 부드러운 분이다. 그 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데 형제들이고 활달하며 적극적인 아이들이다. 대인관계가 좋아 많은 친구들이 곁에 머물고 있는...

그런데 어느 날인가 큰 아이를 영국에 유학 보냈다는 말을 들었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타국에 공부하러 간 그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고생이 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그때 아이를 보낸 후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것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가 큰 아들을 보내고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부모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 일 년쯤 후에 그 부부는 둘째도 영국으로 보냈다. 큰 아이보다 두 살 적은 아이인데 형처럼 영국에서 공부하라고 보낸 것이다. 두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귀국한 후 만나보았는데 잘 적응해가고 있었다. 조기 유학의 부작용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났는데 아이들의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부지던 분이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나라면 그렇게 가슴앓이 하느니 차라리 한국에 같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 입장이 되어봐야 분명히 알겠지만).

이번 10월에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 여러 한인들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주제가 기러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녀를 공부시키려고 유학을 보내는데 아이들만 보내기에 안심이 안되니 아내를 딸려 보내고 홀로 있으면서 일해서 돈을 보내주는 아빠가 있는 그런 집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도 그런 한국인이 있다고 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의 나라들만이 아닌 동남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에도 그런 기러기 가족이 있다는 말에 약간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니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동남아시아는 서구에 비해 학비나 생활비가 쌀 뿐만 아니라 영어권 나라들(이전 영국 식민지)은 영어를 배우는데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가족을 보내고 혼자 힘들게 일하면서 외로워하는 아버지들의 존재이다.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목적이 외국에 가 있는 처자식을 뒷바라지 하는 것이며 그런 와중에 가족들과 함께 할 수도 없다면 그게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자식들은 이미 다 커버리고 자신들의 둥지를 찾아 떠날 터인데 그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오늘 마음 아픈 소식을 들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되었는데 그는 전형적인 기러기아빠였던 것이다. 서초구의 자기 집에서 죽었는데 가족들은 며칠간이나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잘 나가는 건축사무소의 소장이라는 사실이 그의 죽음을 더욱 허무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그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인가?

더 안타까운 것은 부인과 대학생 자녀 2명을 미국에 보낸 후 6년째 혼자 살다가 최근에 이혼까지 했다는 점이다. 함께 살아도 정이 떨어지기 쉬운 세상에 6년간이나 떨어져 살았으니 어찌 부부의 정이 돈독해질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 외로움을 호소했다는 친구의 말마따나 지독한 외로움에 몸을 떨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그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가정이 깨어지면서까지 혹은 홀로 남은 가장이 극심한 외로움의 고통을 느끼면서까지 그렇게 유학을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마음이 든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행복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또 그렇게 남편만을 남겨놓고 떠나는 아내나, 아버지만을 남겨놓고 떠나는 자녀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족은 함께 있을 때 그 존재의 의미가 빛을 발하는 것인데 가장 혼자만 외딴 신세로 남겨두고 훌쩍 떠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인 것이다. 차라리 공부 덜 하고 성공 덜 하더라도 남편과 아버지를 외로움의 벼랑 끝에 몰아가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끼륵끼륵 소리를 내며 외롭게 홀로 나는 기러기처럼 홀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릴 기러기 아빠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정 힘들거들랑 원망 들을 각오하고 가족들을 불러들이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 결정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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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20 [01:2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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