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에서 여자를 때리는 남자
폭력이 일상화된 대한민국
 
안희환 기자


 
인간의 폭력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뿌리 깊은 것이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원치 않더라도 경쟁을 해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때로 상대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게끔 되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또 경쟁이 아니라 해도 인간의 본성 자체가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적게,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많이...

문명이 발전하여 이전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확실히 문명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외적인 기술이나 환경면에서 문명화 된 것일 뿐 인간의 본성 자체는 큰 변화를 겪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은 원시적인 세계와 동일한 폭력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요즘 들어서는 그 심각성이 전보다 더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텔레비전이든 신문이든 끔찍한 폭력 소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내린다.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어느덧 일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려진다. 그러다 보니 이제 웬만큼 요란한 사건이 아니면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보다 하며 지나치는 세태가 되었다. 나 자신도 그렇게 지나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폭력에 둔감해진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씁쓸한 경험이다.

이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만큼 끔찍한 폭력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 깊은 곳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친히 겪거나 본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폭력은 멀리 떨어진 세계의 일이 아니면 바로 내 곁에서, 그리고 내게서 일어나는 일임을 느끼게 한 일들인 것이다.

1.
첫 번째 이야기는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의 일이다. 나는 그때 안양의 인덕원에 있는 신성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미션 스쿨이었는데 남자 고등학교였다. 하루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길을 가는데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자를 놀려대고 있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는데 날 보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큰 도로변이었기에 그냥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따라갔다. 골목을 지나 으슥한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공사장이었다. 두리번거리는 중에 갑자기 머리에 통증이 왔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 사람이 벽돌을 들고 내 머리를 찍은 것이었다. 다행히 그 한번으로 끝을 내고 다신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가버렸는데 나는 조금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갔다.

내 머리에는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정수리 위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벽돌로 찍힌 자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분한 마음에 다음 날 그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만나지 못한 것이 내게 유익이었던 것 같다. 다짜고짜 벽돌로 사람을 찍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그 이상의 짓도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2.
두 번째 이야기는 내가 20대 중반일 때 겪은 일이다. 아파트 단지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7명가량의 학생들이 한명을 둘러싼 채 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각목도 들고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니들 뭐하는 거야? 다 이리와 봐”.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소리만 지르고 말 것이지 왜 와 보라고 했을까?

그 학생들은 진짜로 오기 시작했다. 각목도 그대로 들고 있었다. 순간 갈등을 했다. 이대로 도망을 갈 것인지 학생들이 오는 것을 기다릴 것인지 말이다. 아파트 담장이 가로 막고 있기에 잠시의 시간은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넘느라 시간이 지체하는 동안 멀리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무슨 배짱인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근처에 오자 소리를 더 높였다(내 목소리는 우렁찬 편이다). “그게 뭐하는 짓들이야?.”“아무 것도 아니에요. 친구인데 생일빵 해주는 거에요”. “그만 하고 빨라 가봐”. “예”.  휴~ 나는 그날 천사들을 만난 것이다. 비록 또래를 때리는(분명히 때렸다) 못된 천사들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렇게 못할 것 같다.

3.
세 번째 이야기는 결혼 후 3년 쯤 지난 후에 겪은 일이다. 아이는 있었지만 아직 신혼이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잠자리에 누워서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는 그때 처갓집에 있었다). 그런데 창문 밖에서 소리 지르는 소리가 났다. 여자의 비명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둔탁한 소리가 들렸는데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 같았다.

살짝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척 보아도 조직폭력배같이 생긴 험상궂은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었다. 여자는 얼굴도 맞았는지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남자는 큰 소리로 이야기 하다가 때리고 이야기하다가 또 때리고 하는 것이었다. 얼른 경찰에 신고를 했다. 마치 억만 겁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지연된 후 경찰이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말에 남자가 아무 일도 아니라 하고 여지도 끄덕인다. 경찰은 그냥 간다. 바보 같으니...

경찰이 가고 큰 소리가 들렸다. “어떤 새끼가 신고했어? 안 나와. 어떤 새끼야”. 아내는 겁을 먹은 채 떨었고 나는 창문을 살그머니 닫았다. 처자식이 생기고 나서 전보다 겁이 많아진 모양이다. 그리고 집이 알려지면 나중에 떼거지로 몰려와서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욕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잠해야 했다.

4. 네 번째 이야기는 바로 며칠 전에 겪은 일이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우리 집과 같은 방향인 청년 하나가 차를 같이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 보고 도로변을 가리키며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영상이 눈 안에 들어왔다. 브래지어만 걸린 여자 하나가 부끄러움도 없이 서 있는 것이었다.

그 앞에는 남자 둘이 있었는데 한 남자는 그냥 서 있고 한 남자는 화가 났는데 여자에게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주먹을 휘둘러 여자의 얼굴을 때렸는데 퍽 소리가 났다. 나는 곧 경적을 울렸다. 저 앞쪽 가리봉 오거리에 교통경찰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도 들으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경찰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번 경적을 울렸다.

남자는 옷으로 여자를 또 한 차례 때린 후(여자의 옷인 것 같다) 옆에 있는 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맞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20대 중반 가량의 아가씨였다. 신호가 바뀌었고 뒤차에 밀린 나는 그 광경을 뒤로하고 출발했는데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대로변에서 그렇게 사람을 때리다니 참으로 강심장이다.

이상의 4가지 이야기는 내가 겪은 일들 중에 인상에 남는 것들이다. 생각할수록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일들 아닌가? 폭력은 바로 내 곁에서도 일어나고, 내게서도 일어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정 폭력에 이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학원 폭력, 조폭들이 벌이는 조직적인 폭력에서 공권력을 가진 자들이 행하기도 하는 폭력까지 이 사회는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영화, 텔레비전, 만화, 책, 오락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조장하고 예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폭력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폭력성의 심각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폭력제거 운동을 벌여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내버려 두면 점점 커져서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무서운 문화가 폭력 문화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물건을 다루듯이 위해를 가하게 하는 것이 폭력 문화이다. 가정 학교 지방 정부 중앙정부 할 것 없이 마음을 모아서 폭력에 단호한 대처를 해야 할 시점이다. 폭력을 조장하거나 양산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청소해 나가야 한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폭력적이지 않은 문화를 먹으며 자라도록 해주어야 한다.
기사입력: 2005/10/22 [09:0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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