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신부 일본에 팔려간 한(?)
성매매에 대한 단상
 
안희환 기자


                

글 쓰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나는 블러그에만 글을 올리다가 문학 카페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좋은 문학 카페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엄청난 수의 문학카페가 있구나 하는 충격을 느끼며 둘러보던 중 나는 다섯 개 가량의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내었다.

부지런히 글을 올리던 중 3000여명의 회원을 가진 한 카페에서 내게 수필 방을 맡아달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다. 그 덕분에 나는 그 카페의 특별회원이 되었다. 또 다른 카페는 10만 명가량의 엄청난 회원을 가진 카페였는데 역시 수필(칼럼 포함) 방을 맡아달라고 했다. 덕분에 글만 줄기차게 올리던 나는 순식간에 그 카페의 운영위원이 되고 말았다.

그다지 원한 일은 아니었지만(리플 달아주는 것이 귀찮아서)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수락했는데 그 일이 내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그것은 내가 맡고 있는 방의 글을 모두 읽어나가야 하는 책임을 완수하다보니 더 많은 글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어떤 글의 경우 제목만 보고 건성으로 지나가던 글이었을 텐데 이제는 모든 글을 상세하게 읽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옥같은 글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혹은 감동적인 글이나 폭 넓게 생각하게 해주는 글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오늘은 그 중에 한 글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낮은 자]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의 수필집에서 발췌한 글인데 상당히 와닿는 것이 많은 수필이었다.


우에노에서 핀 사랑의 꽃(1)/ 낮은 자


경상도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꿈에 부풀어 서울로 상경한 처녀가
서울에서의 생활 육 개월 만에 만난
사랑이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웠단다.


그 사랑을 시작한지 삼 개월
그 잘생긴 그녀의 사랑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녀는 너무도 행복한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마치고 따라나섰다.


그 다음날 일본에 도착한 그들은
우에노의 어느 호텔에서 남친이
가져온 와인을 마시면서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남친이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그녀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
한가를 생각하면서 남친의 팔을
꼭 껴안고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남친의
말을 듣고 스테이지에 나와서
춤을 추는 무희들을 바라보며
남자를 잘 만나서 일본까지 여행
하고 이런 데까지 구경하게 되는
자신이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은 그것이 끝이었다.
남친과 함께 온 같은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이 좋은 데로 가자고 했다.
그녀는 의심 없이 남친과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


작은 룸에 맥주 몇 병이 놓여있고
남친과 그의 친구들은 밖으로 나가고
얼마 후에 남친은 보이지 않고
그 남자들만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일을 당했다.


아 !
이것이 현실이 아니기를...,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녀는
20만 엔이라는 빚을 떠 않고 다른
집으로 끌려가서 성한 데가 없이
매를 맞았다. 그리고 여권이 그들
손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후 남친이 자기를 그곳에 팔아
넘기고 갔다는 사실과 그런 행위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복수의 날만을 생각하면서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온 날이 십 년,


이제는 내가 왜 사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편도 맞게
되었고, 날마다 다른 사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신이 추하게
느껴져 자살을 기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죽도록 두들겨 맞기만
수십 번,


그때가 이십 년 전이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는 중에 중국에서
들어온 손님을 만났는데, 그 손님
으로부터 예수를 믿으라는 전도를
받아서 선물 받은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교회를 다니기로 결심하고 교회를
찾아보았지만 참으로 어려웠다.
물어 물어서 일본인 목사가 있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축복을 받아서 일본인
남자를 알게 되었고 중년이 된
그들은 결혼을 하고 일본인 남편은
그녀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자기처럼 속아서
이국 땅에 팔려와 피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위로했다.


2005년 7월 12일의 오후에


나는 처음에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느꼈다. 상처 받은 한 여자의 아픔에 눈물이 났고, 그렇게 한 많은 여자를 아내로 삼고 사랑으로 품어주며 그 많은 설움을 감싸 안은 일본인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동시에 신앙의 힘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 그 여자에게 마음껏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이 글을 읽으면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비열하기 그지없는 그 여자의 남친(?)이라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며 모든 것을 맡겼던 여자를 사자 굴속에 집어넣은 후 돈을 받아 챙긴 그 남자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명의 여자를 동일한 수법으로 팔아치우는 것이 직업(?)이었다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를 인신매매하여 돈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어 왔고, 어린 소녀들을 가두어둔 채 성관계를 강요하고 화대를 챙긴 사람들도 있어왔다. 한 여자의 인생이 망가지든 말든, 영혼 깊은 곳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생기든 말든 그저 자기 주머니만 챙기는 사람 아닌 사람들이 있어온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속에서 겉잡을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난다. 한 사람의 기독교 신자로서 사람을 증오하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불쑥 솟아나는 미움의 마음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절망의 수렁에 밀어 넣는 사람에 대한 분노의 파도가 산더미처럼 일어나는 것이다. 
                                                                             
            
                                              (성매매 방지 캠페인)
                        
사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자유를 박탈당한 채 뭇 남자들을 상대하며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키워가고 있을까? 도망갈 수도 없고 스스로 생명을 끓을 수도 없는 상태, 치욕의 행위로 번 돈마저 빼앗기는 완전한 흑암 속에서 그 여자들은 어떤 무지갯빛 꿈을 꿀 수 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해서라도 성매매라고 하는 것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사랑에 의해서가 아닌 돈에 의해서 고귀한 성이 팔릴 수는 없는 것이다. 왜 인신매매나 여자에 대한 억압이 생기는가? 수요가 있기 때문 아닌가? 성매매라는 루트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팔아버릴 수 있는 곳이 있고 여자를 받은 후 돈을 주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혹자들은 말한다. 성매매가 사라진다면 강간 등의 범죄율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많은 여성들은 억지로가 아닌 자기가 좋아서 그 일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따라서 성매매는 사회의 필요악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고대로부터 성매매가 존재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 면에서 그럴듯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궤변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성매매의 합리적인 근거를 찾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매매라는 제도가 있으므로 생기는 피해 여성들이 남아 있는 한 그런 말들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나락으로 몰아넣으면서 돈을 벌거나 쾌락을 즐기거나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누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더 고상한 이유를 대기도 한다. 장애인들을 염려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에게도 성욕이 있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성욕을 해소할 수 없는 경우에 성매매라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들도 성욕을 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궤변이다. 누가 장애인의 성욕을 부인하는가? 그러나 장애인 아닌 그 누구라 하더라도 자신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짓밟힐 건수를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한 쪽의 인권을 대변하는 듯이 말하면서 정작 다른 한쪽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성매매가 사라지더라도 인신매매는 남아있을 것이라는 논리도 펴지 말라. 성매매가 없어진다고 인신매매가 다 없어지지 않을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양성적인 것이 금지되면 음성적으로 기회를 엿보며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단속이 있다면 성매매는 확실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성매매의 활성화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인신매매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도덕성이 되살아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많은 글들을 쓰지만 때로 만만치 않은 저항을 경험하곤 한다. 너만 깨끗하냐는 반응도 있었고, 그냥 무조건 악풀을 다는 사람들도 있고,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이 글도 상당한 반발을 일으킬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회 되는대로 이런 부분에 대한 견해를 지속적으로 밝혀나갈 생각이다.
기사입력: 2005/11/02 [11:4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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