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 대한 단상
짐승이아닌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안희환 기자

 

 
작년 2월인가에 왕따 동영상으로 인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경남 창원시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여러 명의 학생이 한 학생을 괴롭히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었는데 그 동영상은 삽시간에 퍼져나갔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해학생들을 향해 분노하였으며 사법적인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동영상의 1부는 피해학생을 엎드리게 한 채 여러 학생들이 카메라로 피해학생을 찍는 광경인데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피해학생의 모습이 등장한다. 2부는 엎드린 피해학생을 다른 학생들이 괴롭히는 장면인데 귀를 잡아당기거나, 귀에 바람을 불어넣거나, 가방을 뺏으려는 친구에게 약간의 반항을 하다가 조롱거리가 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사건이 사방에 퍼져나가자 학교 측에서는 그제야 사과를 했었고 가해학생들은 그 광경이 취미 삼아 한 것일 뿐 실제로 왕따를 시킨 것은 아니었다고 변명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진술은 피해자 아버지의 진술로 인해 거짓임이 드러났었다. 피해학생의 아버지는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을 집단적으로 괴롭힌 것이 그 한번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왕따의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정씨 성을 가진 한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선천성 판막증이라고 하는 심장질환이었다. 몸이 불편하였던 터라 활동하는데 제약을 받았고 특별히 운동 같은 것은 제대로 참여할 수가 없었다. 다른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런데 그런 학생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롭히는 학생들이 있었다. 다섯 명 가량의 학생들인데 그들은 피해 학생을 툭하면 외진 곳으로 데려갔다. 때리기도 하고, 원산폭격을 시키기도 하였다. 더 심한 짓도 했는데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워서 비틀거나 라이터 불로 지지거나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결국 고통을 견디다 못한 피해학생의 고발로 드러났는데 더욱 가관인 것인 가해 학생들의 태도이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문에 가해 학생들 중 한 명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습니다”라고 대답을 한 것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잔인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이야말로 무서운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처 입은 닭을 주변의 닭들이 돌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자꾸 쪼아서 죽음에 몰아넣는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닭들과 전혀 차이가 없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앞의 두 가지 이야기는 메스컴을 타서 분명하게 드러난 케이스들이지만 그 외에 드러나지 않은 채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왕따 현상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꿈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잘 자라야할 나이에 거꾸로 짓밟히고 모멸감을 느끼고 삶의 희망을 꺾이는 일들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이 나라 교육 현실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해결을 위한 의지를 드러내기 보다는 쉬쉬하며 덮어가는 분위기를 보게 된다. 학교의 명예에 훼손이 가니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처리하자는 무사안일의 태도가 보이는 것이다. 결국 피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가족들만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안은 채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짓밟으며 즐거워하는 것이나, 그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나, 그런 잔인한 행동을 보고도 주변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이나, 자기 자식이 그런 사악한 짓을 했음에도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몰상식한 부모들이나, 학교 체면만 생각해서 조용히 덮자는 선생들이나 다 이 나라의 병 덩어리이다.

지금이라도 단호하게 수술해내야 한다. 그래야 일벌백계라고 더 이상 왕따라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것이 아닌가? 그리고 몸이 불편하거나 정신적으로 연약한 학생을 돕는 것에 대해 격려하고 상을 줌으로써 그런 모습이야말로 멋진 것임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나 아닌 타인의 일에 무관심한 현 세대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임을 기억하자.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서 있는 ‘사람 인’(人)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진데 나와 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가 얽혀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것을 되새기자. 그런 의식이 있을 때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은 곧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임을 자각할 것이다.

제도적인 보완과 예방이 중요하며, 사후 처리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기에 하는 말이다.
기사입력: 2005/11/03 [09:0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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