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울린 딸의 편지
 
홍경석 기자

내일이면 이제 새해가 시작되는 2006년 1월 1일입니다. 그런데 내일은 공교롭게도 저의 생일과 맞물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마흔 여덟이 됩니다. 하지만 세금 안 붙는다고 나이만 먹은 형국인지라 늘 저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사는 중입니다.

어제 오전엔 서울에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겨울방학 동안에 중학생을 가르키는 과외 자리가 하나 생겼다는 것이었지요. "처음 해 보는 건데 우리 딸이 잘 할 수 있으려나?"고 걱정했으나 딸은 씩씩하게 뭐든 잘 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아빤 우리 딸의 목소리가 씩씩하면 덩달아 좋아." 딸은 책을 사야한다며 돈을 부쳐달라고 했습니다. 하여 주변에서 융통하여 약간의 돈을 송금해 주고 왔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어제 역시도 얼마 안 되는 돈을 부쳐주려니 그만 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딸이 엊그제 부친 편지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얼른 그 편지를 개봉했죠. 하지만 저는 그 편지를 반도 못 읽고는 그만 엉엉 울어야 했습니다.<사랑하는 아빠의 생신을 축하드려요, 하지만 과외와 (그동안 기거했던 대학의 기숙사에서 밀려나는 관계로) 월셋방이라도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집에 가지는 못 하니 용서하세요.
 
근데 앞으로 과외를 하게 되면 아빠께 돈 부탁을 안해도 될 거 같아 마음은 편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생각하셔서 술과 담배 좀 줄이세요...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
 
하나 뿐인 자랑스런 금지옥엽 딸에게 아비 노릇도 못 한다는 자괴감이 다시금 해일처럼 몰려들면서 저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딸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딸을 낳은 것은 지난 1987년도입니다. 당시엔 아들 하나만을 낳고 단산하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불과 세 살 적에 그만 부친께서 작고를 하시게 되었지요.

비록 가난과 불학의 고통만을 남기고 가시긴 했지만 저의 상실감을 하늘을 덮고도 남았습니다. 하여 맘을 바꿔 아이를 하나 더 가졌는데 그 녀석이 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현재의 딸인 것입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저는 굳이 또 딸자랑을 하고자 합니다. 딸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전교수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S대학에까지 입성을 한 딸인지라 저의 딸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은 자못 하늘을 찌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처지는 연전 사업의 실패 이후 빈곤의 수렁으로 함몰된 뒤로는 당최 빠져 나오기가 어려워 지금도 고군분투 중입니다.

그런 연유로 딸에게도 변변히 바라지를 못했음은 물론입니다. 저는 팔자가 기구해서인지 아님 전생에 죄를 많이 져서인지 여하간 왜 그런지 하는 일 마다 늘 그렇게 연전연패만 거듭해 왔습니다.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사람이 눈물이 많으면 팔자가 세다더군요. 하여 가급적이면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며 살고 있었습니다만 어젠 딸의 편지가 그예 저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아예 눈물샘을 만들었지 뭡니까...

겨우 눈물꼭지를 막고 마저 편지를 읽은 뒤에 목욕탕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코도 풀었습니다. 그리곤 딸에게 이 메일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아빠의 새해 소망이 뭔지 아니? 그건 바로 내 사랑하는 딸에게 용돈을 맘껏 펑펑 주는 거야.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기사입력: 2005/12/31 [10:4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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