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남아있는 어떤 영화
 
홍경석 기자
▲라이터를 켜라의 한 장면  


황당무계한 코미디 영화지만 배울 건 있었던 영화가 바로 김승우와 차승원 주연의 라이터를 켜라 였다. 지난 2002년 7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뻔한 스토리에 뻔한 웃음을 유발케 하는 진부한 코미디 영화이긴 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영화를 보고 나면 건지는 소득(?)이 있어 지금도 기억에 살아 있다. 능력 없는 허봉구(김승우 분)는 동창회에 나가도 늘상 찬밥 신세를 면치 못 한다. 그같은 연유는 봉구가 딱히 직업도 없는 백수인 데다가 남의 예비군 훈련이나 대신에 받아주고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받아쓰는, 그야말로 한심한 놈이기 때문이다.

봉구는 어느 날도 남의 예비군 훈련에 나간다. 헌데 잠시 졸다가 그만 훈련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난다. 내일 다시 나오라는 말을 듣고는 힘없이 터덜터덜 예비군 훈련장을 나오지만 봉구에겐 고작 동전 세 개 300원 밖에 없다.

차비가 없어 친구들에게 아쉬운 전화를 하지만 이미 형편없는 녀석으로 각인된 그를 도와 줄 수호천사는 아무 데도 없다. 막막한 심정으로 슈퍼에 들어갔지만 고작 300원으로 살 수 있는 건 일회용 빨간 가스라이터뿐이었다.

그 무렵 "예비군훈련은 국가적 손해"라는 생각을 가진 함께 예비군 훈련을 받은 어떤 떠벌이 하나가 함께 서울역까지 타고 가자며 타고 가던 택시를 세워준다.
그 덕분에 겨우 서울까지 온 봉구는 급한 볼 일을 보러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는데 그만 거기서 그야말로 금쪽같은 라이터를 두고 나오는 실수를 하게 된다.

라이터를 화장실에 두고 나왔음을 자각한 봉구는 부랴부랴 다시 화장실로 찾아 들어가지만 이미 그 라이터는 없었다. 크게 실망을 하며 나오는데 아까 일면식이 있던 삼류건달 양철곤(차승원 분)이 자신의 일회용 빨간 가스라이터를 이용해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봉구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통화를 하고 있던 철곤의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가스라이터를 달라고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하지만 철곤은 이내 봉구를 무시했고 그 아래 부하들도 "우리 형님이 그깟 라이타를 화장실에서 주울 분이냐?"며 화를 내는 순간 철곤의 주머니에선 봉구의 라이터가 나온다.

하지만 형님체면에 스타일을 구길 순 없기에 적당히 손 좀 보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봉구는 철곤의 부하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이에 분기탱천한 봉구는 역에 남겨져있던 철곤의 부하에게서 기차표를 뺏아 무작정 철곤 일행이 탄 열차에 오른다.

형편없는 건달 양철곤이 부하들을 이끌고 기차를 탄 까닭은 마찬가지로 양두구육의 형편없는 정치인인 박용갑(박영규 분) 의원으로부터 상대 후보자를 정리(?)하는 데 일조했던 부분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기 위함에서였다.

급기야 시속 140Km의 속도로 전력질주하는 새마을호 열차 안에선 평소엔 하찮게 여겨지던 인물들이 하지만 대외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인물들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용기 있는 모습으로 그 면면을 보여준다.

박 의원은 자신의 더티한 과거의 행각이 들통날 것을 두려워하며 강경하게 버티고 이에 격분한 철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승객을 인질 삼아 기차를 접수하면서 순식간에 기차는 아수라장이 된다.

수 백명의 승객이 인질로 잡히자 각 역마다 경찰병력이 배치되지만 기관실을 점거한 철곤 일당은 오히려 논스톱으로 폭주한다. 그 와중에도 승객들 사이를 성큼성큼 비집고 나와 철곤을 향해 용감히 대드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그동안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고 소문난 허봉구였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열차를 세워 승객을 구출하겠노라는 커다란 사명이 아닌,
오직 하나 "내 라이터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속력으로 폭주하는 열차 안에서 허봉구와 양철곤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와 점입가경의 명승부를 벌이게 된다.

결국 고작 라이터 하나로 인해 졸지에 겁 없는 야수가 되어 버린 봉구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기차는 가까스로 대형참사를 모면하게 된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봉구는 자신의 라이터를 되찾게 되고 아울러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된다.

그로부터 자신감을 얻은 봉구는 이제 남의 예비군 훈련이나 대신 나가주는 따위로서 푼돈을 받아 겨우 생활하는 백수의 이미지를 벗고 동창회에 나가서도 사뭇 의기양양하다.

이 영화의 일부 얼개는1985년에 개봉했던 존 보이트 주연의 폭주 기관(Runaway Train)라는 외화와도 닮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킬링타임용으로 보는 영화론 꽤 볼 만 했다.

이 영화는 기실 따지자면 매우 현실성이 없는 마치 만화와도 같다. 근데 우리 사는 사회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만화와도 같은 일이 그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가!

하지만 천착해보면 이 영화는 무엇이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돼 있다면 못 할 게 없다는 교훈을 내재하고 있는 수작(秀作)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겠으나 하루는 24시간이며 이를 분으로 환산하면 1,440분이 된다. 혹자가 이르길 시간은 돈이라고 하였다.

하여 분을 돈으로 치자면 분당 100원씩만 따져도 1,440분이니까 144,000원이 되는 셈이다. 신은 누구에게나 24시간, 즉 1,440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공평하게 나눠주셨다. 그런데 이처럼 귀중한 시간을 누구는 촌음을 아껴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반면 또 누군가는 그 시간에 술이나 마시고 노름이나 하는 따위로 허송세월을 하는 사람이 실재한다.

라이터를 켜라는 비록 그 장르가 황당무계한 코미디지만 매사 강렬한 소유욕과 성취욕, 그리고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의식만 공고하다면 못 할 게 없다는 교훈적 메시지를 주는 영화기에 지금도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보내고 다시금 희망의 해를 맞았다. 새해가 되면 누구라도 바람과 다짐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필자를 포함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금주와 금연 등의 실천에 있어선 고작 작심삼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 하는 행태가 눈에 띈다.
 
필자의 올해 결심은 고루하게(?) 금주와 금연은 아니다. 다만 지난 몇 년간 점철됐던 빈곤의 험산준령을 넘어 올해는 반드시 풍요의 결실을 맺는 그런 해로 만들겠다는 결심이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며 라이터를 켜지 않으면 불은 붙지 않는다. 고로 이러한 필자 결심의 불(火)을 올 한 해 내내 마음의 심지에 붙일 작정이다.    

 
기사입력: 2006/01/04 [12:2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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