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여 결단과 의지의 사람이 되라
 
부경 편집국

▲   넘어지면 일어나는 오뚜기 인형들

글을 읽다 보면 갑작스럽게 마음에 부딪혀 오면서 사색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신학자 로버트리의 자기 결단의 글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이 글 역시 그처럼 나를 머물게 만들었습니다. 구절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는 내용들이기에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손 가는대로 적어봅니다. 일단 로버트리의 글을 인용합니다.

나는 기뻐하리라. 그리하면 인생은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것이다. 나는 용감하리라. 그리하면 더 이상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균형 있게 살리라. 그리하면 노동과 휴식과 예배가 잘 조화되어 적절한 몫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신뢰하리라. 그리하면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절제하리라. 그리하면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되리라. 그리하면 곧은 사고와 지식이 모든 진리로 이끌 것이다.

나는 건강하리라. 그리하면 내 몸이 책임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영혼과 마음과 행동을 깨끗케 하리라. 그리하면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나는 온유하리라. 그리하면 번민으로 초조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내하리라. 그리하면 절망이 끝이 아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신념을 지키리라. 그리하면 의지로 말미암아 성취할 것이다. 나는 준비하리라. 그리하면 위급할 때에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리의 위와 같은 결단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저런 내용으로 결단할 수 있다고 하는 것 자체만으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결단은 그다지 고상하지도 않고 수준 높지도 않은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단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런 이들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결단을 해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입니다. 작심삼일이라고 결단해 바야 어차피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실망만 거듭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정말 그 말도 맞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자신이 결단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때문에 실망해보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 생각은 또 다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결단을 해봐야 어차피 끝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고 그 속에는 나 자신도 끼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하는 사람이 결단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결단을 하고 그것을 지키는 며칠 혹은 몇 시간만이라도 결단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런 것들이 미비하고 별 가치없는 듯이 여겨질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낸 사람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을 이루는 의지라고 하는 것도 하루 아침에 대단한 정도가 되는 것은 아니며 반복되는 훈련의 과정을 통해 점점 커지는 것이기에 갈수록 결단을 유지하는 정도가 커가는 것입니다.

러셀 콘웰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템플 대학교를 창설한 분인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큰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4043명의 생애를 조사했는데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들 중에서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불과 69명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따로 경영학을 배운 것도 아니고 부모가 대기업가이기에 미리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토록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는 수완과 역량(그것도 분명 역량임. 부자도 존중해주는 사회 풍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콘웰 박사는 그들에게서 보이는 독특한 특징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삶을 시작하면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뛰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둘째,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화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셋째,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 굳은 결의의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결국 결단과 그 결단을 이루는 의지가 그들을 성공하게 만들었고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뚫고 일어서 빛을 발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부자만이 성공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대충 살아가는 사람은 그런 위치에 오를 수도 없으며 설혹 운이 좋아 오른다 해도 금방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물론 재산이 성공의 표준이 될 수 없으며 권력이나 명예가 성공의 표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면에서 성공을 하는 사람들의 생애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어떤 분야에서든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는 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결단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에 쫓겨 사는 젊은이들, 아무런 생각이 없이 하루를 넘기는 젊은이들, 무언가 결단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움츠려든 젊은이들, 결단했으나 실패했던 기억들의 묶여 소심해진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분명한 결단을 가지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이 기쁜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런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강인함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는 성경의 표현을 참 좋아하는데 실패한 결단 앞에서 다시 일어나 새롭게 결단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대한민국을 꿈꾸어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수많은 문제에 봉착하였고 그 매듭을 풀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 일에 도전해 볼 젊은이들을 접수받겠습니다.

기사입력: 2006/04/03 [10:5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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