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때리는 교감, 자살한 교사
 
송승호기자

▲자살한 교사의 영정사진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교감에게 폭행당한 현직 교사가 목숨을 끊은 사고가 발생했다.

교감 A씨는 12일 중간고사를 마치고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스승의 날을 이틀 앞둔 13일 교감에게 폭행당한 현직 교사가 목숨을 끊은 사고가 발생했다. 광주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광주 인성고 수학과 교사이며 고3 담임인 김 희선씨(45)는 13일 오전 3시께 동료교사, 교감 A씨와 술을 마시고 귀가한 뒤 오전 11시 30분께 화장실에서 목을 에서 김씨가 권위적인 의사결정 방식 등을 따지자 "어린 사람이 무례하다"며 김씨의 뺨을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학교측과 9교시(오후 6~6시 50분) 운영과 진로 지도비 배분 문제 등을 놓고 학교측과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또 전교조에서 활동하는 교사가 없는 이 학교에서 전교조 가입을 위한 활동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승이라는 것이 막연한 존칭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전해 준다는 의미에서의 영예로운 이름이다. 이 영예로움에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선행될 일이고 그 엄격한 관리는 스승의 언행으로부터 후학들이 배우는 삶으로서의 교훈이며, 스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인격을 스스로에게 부단하게 요구하는 인고와 수행의 길을 마다않는 도덕적인 귀감으로서의 영예로움이다.

가르친다는 것이 머릿속에 몇자의 지식과 몇개의 문제풀이를 전함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용으로서의 학문을 전하지만 후학들의 살아가는 규범으로서의 가르침을 몸소 행하는 것이 또한 가르침인지라 敎育을 때로는 敎訓이라 부르는 것이다.

敎가 가르치는 행동을 말한다면 訓은 보여줌으로서 경계를 삼도록 하는 것으로서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訓育이라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토록 가르침은 敎育과 敎訓이 합쳐져서 訓育인 것이다.

어떤 문제에 봉착해서 부단히 노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끈질긴 모습이 필요한 터에 어떤 이유에서든 목숨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 별로 敎育者로서 취할 바는 아니지만 그토록 가혹하게 몰아간 쪽도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취할 바가 아니다.

더우기 손찌검이라는 것을 통해서 상대에게 모멸감을 극도로 안긴 행위는 그가 교육자임에 더욱 가혹한 비판을 받을 터이지만 인간으로서도 절제되지 못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경솔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다. 게다가 이유라는 것이 갈등을 조정하고 학교행정을 무난하게 이끌어갈 책무를 가진 교감이라는 분이 "어린 사람이 무례하다"며 뺨을 때린 것은 그가 가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하게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대단히 비교육적일뿐 아니라 비상식이고 몰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사람의 관계가 반드시 살아온 나이에 절대적으로 기준삼지 못하는 것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서뿐 아니라 나이가 사람의 가진바 인격과 품성을 반드시 가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딱히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길 바라지만 학교에 전교조가 없는 관계로 그에 대한 가입을 추진한 것이 혹여라도 그 손찌검의 원인이 되었다면 이는 몰살식을 넘어서서 자신과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전적인 부정과 독선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 판단되기에 더욱 기가찬 일이다.


학생들은 그런 교사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울 것이고, 어떤 가치관을 그 예민한 시기에 받아들이고 삶의 경계로 삼을 것인가? 선생님이라는 아주 친근하고 정감가는 이름이 주는 의미는 단순하게 행정적이거나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으로서의 기능적인 면을 고집하는 용어가 아니고 전인격적인 삶의 모습으로서의 존칭이고 예우인 것인데, 오늘 이 심난한 소식이 주는 황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고 경악할 일이다.

일반의 사람들이 첨예한 갈등을 푸는 과정에서 가하는 폭력적인 어떠한 언종도 비난받고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시대에 논란의 결말이 "나이 어림"에 판단의 기준이 심어진 것이라면 더우기 교감의 행동은 스스로 선생님으로서의 영예를 버린 것이고 귀감으로서의 스승.. 교사들의 선배로서의 자격마저 포기한 것이라 입이 백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오늘 거듭해서 이런 일들을 보는 심경은 즐거울 일이 아니다. 심난한 학생들의 일탈과 스승의 일탈이 동시에 벌어진 스승의 날이라서 더욱 심난한 것이다.

기사입력: 2006/05/16 [10:3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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