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 혹은싸가지있는 교육을 위하여
싸가지에 대한 생각
 
송승호기자
전주 완산경찰서는 지난 지난 12일 오전 10시 45분께 전주시 평화동 Y중학교 4층 복도에서 자신의 아내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이 학교 학생 A군(15·중2) 등 3명을 둔기로 마구 때린 혐의로 김모씨(38)를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조사결과 김씨는 이날 학교에 인접한 자신의 집 마당에서 빨래를 하던 아내에게 A군 등이 학교 창가에서 “엉덩이 좀 보게 이쪽으로 돌려라”는 등의 성희롱과 욕설을 한 것에 격분해서 학교로 달려가 폭력을 행사한 것인데.....
 
근자에 글쓰기를 하면서 제일 많이 쓰는 글이 이런 류의 성범죄 내지는 버르장머리 없거나, 인면수심의 성범죄에 대한 글을 자주 쓰게되는데 무슨 성적 호기심이뛰어나서도 아니고 사회적 도덕심이 남달리 뛰어난 까닭도 아니다. 단지 이런 일들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상의 한 단면을 보면서 일그러지는 우리시대의 가치와 규범이 어디로 출타하셨는지 고민이 되는 까닭이다.
 
학생들의 이 희롱이 짜증나기도 하거니와 학교에서 도대체 어떤 교육을 겁나게 잘 시키셔서 이런 벌건 대낮에 이웃집 아주머니 엉덩이를  보여달라고 생떼를 쓰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인지 그 희안한 사건과 겁나게 성질급하신 아저씨의 즉각적인 응징이 말하는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듯...심난한 일이다.
 
학생들이 평소에 엉덩이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서 생물학적 탐구심에 아주머니의 엉덩이를 보여달라고 말했을 까닭은 없을 것이고, 단지 자신들 스스로는 순간적인 장난기가 발동해서 여럿이 갑자기 호기(?)가 생겨서 뚱딴지 같은 일을 저질렀겠지만 사회적인 통념상 학생들의 이같은 철없고 치기어린 행동은 그들만의 즐거움이라기 보다는 이런 것들에 대한 어떤 수치심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볼 기회가 없이 일상적으로 가진 생각과 행동이 드러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백과사전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들에 대해 어른에게 배우는 것도 포함이 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인격을 다듬고 인성을 키운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쉽게 말하면 사회적 통념으로서 싸가지 없는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소극적인 말이 되겠고, 보다 적극적인 말로 한다면 싸기지있게 살아가기를 배운다는 것인데, 어느날 갑자기 이 싸가지있음이란 주제가 학교에서 사라지고 그자리에 오직 머릿속 뇌의 용량을 채우는 프로그램 입력에 전적인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배움이 삶의 모습과 일치하게 진행되는 것을 전인교육이라는 말로 고상하게 표현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용어를 싸가지라는 말로 대신하겠다.
 
싸가지’는 본래 전라도 방언이다. ‘싹’에 어리다는 의미의 ‘아지’(송아지의 아지)가 붙어 생긴 말이다. 표준어로는 ‘싹수’쯤 된다. 하지만 ‘싹수가 없다’와 ‘싸가지가 없다’의 뉘앙스는 차가 완연하다. 싹수가 장래성에, 싸가지는 현재의 행태·품성에 보다 무게가 두어지기 때문이다. ‘싹수 없다’고 하면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싸가지 없다’고 하면 즉각 얼굴을 붉히게 되는 소리다.

 
6a0626a.jpg이 싸가지함양 교육이 없어진 것은 우리의 교육이 삶이 모습 그 자체를 통해 발현되는 배움을 강조하던 과거의 아름다운 교육이념이 발달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기능적인 가치관만을 강요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규범으로의 가치관이 여러 모습이 있겠지만 어느날 우리는 기능이라는 것에 교육의 시각을 고정하고 그 안에서 사고와 창의력과 도덕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깨고 무한경쟁과 잘 숙련된 기술로서의 가르침만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대치시킨 것이다.
 
한때는 이 새로운 교육목적이 산업화를 이끌고 물질문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바가 있지만 결국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무수한 관계성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싸가지교육의 실종은 곧장 싸가지 없는 세상으로의 진행을 필연적으로 만들어 온 것이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다. 선생님들께 부탁한들 교육의 지향점이 단박에 바뀔 수 없겠지만 이 스승의 날에 스승이란 이름이 주는 전인격적인 싸가지를 후학들에게 전하지 못하면 우리의 스승님들은 위대한 프로그래머로서의 위상은 발전할지 모르지만 싸가지의 원류를 간직하신 싸가지있는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스승님들이라는 이름으로의 선생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싸가지를 가르치고 이끌어야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고 책임이 될 것이다.
 
싸가지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심난하게 싸가지없는 학생들의 엉덩이에 대한 호기심 사건이다.

기사입력: 2006/05/16 [10:3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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