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후보의 비참한 연설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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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열세인 열린우리당에 초대형 폭탄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유명한 지충호 폭탄입니다. 한나라당을 폭파시키려는 의도였다고 보이는데 오히려 한나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을 박살나게 하고 말았습니다. 수습을 하려고 해도 손대기 어려운 상황, 그것이 현재 열린우리당이 처한 현실입니다.

거꾸로 한나라당은 엄청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라는 간판 하나만으로도 많은 표를 끌어 모을 수 있는(이것도 문제가 있다)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내심 지충호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 유세를 지충호씨가 대신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어나면서 함께 지지도가 상승했던 박근혜 대표에게는 무언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들에 비해 월등한 면모를 드러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충호씨는 작은 칼날로 박근혜대표의 뺨에 큰 상처를 입힘으로써 박근혜 대표의 부족한 2%를 채워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형수술을 통해 큰 흉터가 남지 않을 것이지만 테러의 표적이었으며 큰 상처를 입었었다는 것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근혜 대표가 각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래저래 한나라당은 지충호씨에게 감사패라도 증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5.31지방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한쪽은 축제분위기인데 너무 들떠서 빈축을 사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듯한 모습이고 다른 한쪽은 거의 초상집수준인데 다같이 죽을 수는 없기에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모습입니다.

이틀전(28일) 차를 몰고 가다가 열린우리당의 구청장 후보가 연설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연설을 할까 하는 궁금함에 차를 세우고 연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후보는 반복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간절하게 호소를 하였는데 부디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연설을 들으면서 참 비참한 유세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나라당 후보와 차별화된 정책을 가지고 구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왜 열린우리당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밝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는 연설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갑갑한 일이겠습니까? 더 이상 들을 내용이 없다는 생각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선거가 이루어지고 결과에 따라 울고 웃을 것입니다만 싹쓸이만 막아달라는 열린우리당 후보의 연설이 계속 생각나면서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가도 올라가지 않는 정치수준을 단적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언제쯤이나 정책대결을 펼치며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지 답답한 마음입니다.

여기저기 막바지에 한표라도 더 얻으려고 몸부림치는 후보들의 고성에 귀를 막고 싶은 마음은 유독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듣고 싶은 후보의 연설이기에 자발적으로 유세장을 향해 나아가는 국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갈망해보는 아침입니다.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기사입력: 2006/05/30 [10:2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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