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성 강한 월드컵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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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텔레비전을 거의 안 봅니다. 전혀 안본다고 하고 싶지만 어쩌다가 남들이 켜놓은 텔레비전을 보게 될 때가 있으니 거의 안본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내가 텔레비전을 안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머리가 나빠지기 때문도 아니고, 텔레비전이 없어서도 아니고, 텔레비전을 싫어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텔레비전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한 가지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것들은 다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둑을 두기 시작했을 때 밤을 세 가며 바둑을 두곤 하였고 그 덕분에 학교 수업이니 레포트니 하는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또 게임 시디를 사서 게임을 해보다가 몇날며칠을 밤 세워 게임하느라 몸이 축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최종 게임까지 승리하고 나서야 그 게임을 치워둘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둘 다 손대지 않음)

이런 현상은 텔레비전에도 나타납니다. 연속극을 한편 보았을 경우 나는 그 다음편이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음 편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순식간에 몇 시간씩 되었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아예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고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도 아쉬운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월드컵의 열기 속에 나라 전체가 녹아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라고 해서 월드컵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지만 뉴스를 통해 승패 소식을 들을 뿐 경기를 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어제도 10시 넘어 까지 볼일을 보고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밖에 나가 산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반이 끝나고 후반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에 갑자기 환호송이 들렸습니다.

환호성 소리를 쫓아 방으로 가니 우리가 골을 넣은 것 때문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경기를 보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넋을 잃고 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토고를 2대 1로 이겼는데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비상벨이 켜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드컵의 다음 경기를 꼭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우리나라만이 아닌 다른 나라들의 경기도 죄다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 열망을 꾹꾹 눌러가며 잠자리에 들었고 오늘 아침 프랑스와 스위스가 비겼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또 한번 기뻐하였습니다. 특별히 프랑스는 한국을 무시한 팀이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이름도 전혀 모를뿐더러 한국에 대해 거의 신경쓰지 않는 인터뷰내용을 접했었는데 그때 기분이 좋지를 않았으며, 자존심만 센 프랑스의 콧대가 꺾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아무튼 월드컵 경기는 확실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뭐든 빠지면 정신을 못차리는 단점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이번엔 나만이 아닌 대다수의 국민들이 넋을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응원행사에 모인 그 많은 인파들, 3시간 가량을 그처럼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경기 시작 후 2시간가량을 또 응원하는 엄청난 에너지, 그런 에너지를 다른 일에도 쏟아 부은 적들이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나 스스로도 빠져 들어가는 월드컵 경기이지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내 사고가 이상하고 문제 있는 탓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이렇게 쓰는 글을 보고 비판할 사람들도 많이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한 심정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세계적으로 퍼지는 월드컵 기류는 암만 봐도 과도한 이상 기류인 것입니다. 스포츠의 상업화가 극단적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월드컵이고 다들 여기에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그 동안 중요한 것들을 다 망각하게 하면서. 망각의 샘물을 한없이 흘려보내는 월드컵에 대한 조치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기사입력: 2006/06/14 [11:0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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