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그 역설적인 이야기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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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역사서도 아니고 소설이나 시집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철학 서적이나 산문집도 아닙니다. 만화책입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도 만화책 좋아하는 버릇은 고쳐지지를 않습니다.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 사이에는 만화책도 당당하게 꽂혀 있는데 300여권 정도 됩니다. 그것을 보고 의혹의 시선을 던지는 이들에겐 만화책이 얼마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지 아느냐고 묻습니다.^0^

아무튼 지금 읽고 있는 만화책은 우라사와 노와끼님의 [몬스터]라는 것인데 참 재미있습니다. 서울문화사에서 나온 특별판으로 읽고 있는데 재미 있을 뿐만 아니라 무언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만화입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만화책이 깊이 있는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하면 웃을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만화들이 꽤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런 만화들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몬스터]의 내용 중 마음 속에 생각의 동기를 부여해준 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몬스터]의 주인공은 의사인 텐마입니다. 그는 유명한 병원의 천재적인 의사인데 그의 수술 솜씨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워서 병원의 명성을 엎그레이드 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병원의 원장은 그런 텐마를 아끼는 것 같고 원장의 딸은 텐마의 약혼녀가 되니 텐마의 인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걷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원장에게 있어 텐마는 이용의 대상일 뿐입니다. 텐마 때문에 병원의 주가가 올라가고 그 텐마의 공을 원장이 가로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텐마의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등 텐마를 활용해 의사협회 회장에 오르려 머리를 굴립니다. 텐마는 그런 원장의 요구를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상황입니다. 이때까지 닥터 텐마는 천재적인 의사에 불과할 뿐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던 중 텐마는 한 유명한 오페라 가수를 수술하게 됩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유명한 오페라 가수에 대한 메스컴의 관심 때문에 원장은 또 한 차례 명예를 얻게 되고(사실 텐마의 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공에 도움을 주는 텐마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문제는 텐마에게 먼저 수술 받기로 했으나 밀려난 한 환자가 죽은 후 그의 유족으로부터 닥터 텐마가 강력한 항의를 들으면서 시작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던 텐마는 자신의 약혼녀인 에바로부터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텐마의 수술을 받지 못해 죽은 사람과 텐마의 수술을 받아 살아난 유명한 오페라 가수의 생명은 차기가 있는 것이며 텐마는 오페라 가수를 살렸으니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식의 사고는 원장에게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원장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사건 하나가 더 발생합니다. 텐마는 머리에 총을 맞은 한 소년을 수술하게 되는데 마침 시장이 수술을 받아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원장은 시장의 수술을 효과적으로 마쳤을 경우 자신과 병원이 얻을 명성을 생각해서 텐마에게 소년의 수술을 중단하고 시장을 수술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텐마는 원장의 명을 거부하고 소년을 수술하여 살게 합니다. 분명히 병원에는 먼저 도착했으나 오페라 가수에게 밀려 제때에 수술 받지 못하고 죽은 한 사람을 떠올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결국 시장은 죽게 되고 텐마는 원장의 눈밖에 나게 됩니다.

그때부터 텐마의 고난은 시작됩니다. 원장은 노골적으로 텐마를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텐마는 치프자리에서 잘렸을 뿐만 아니라 원장이 시키는 과도한 분량의 일로 힘든 과정을 겪게 됩니다. 약혼녀였던 에바는 노골적으로 약혼반지를 빼 던지고 텐마와 결별합니다. 원장은 텐마에게 이제 의사로서의 출세나 성공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하며 그의 길을 모두 차단해 버립니다. 의사로서의 성공을 접어야 하는 텐마, 하지만 텐마는 소년을 살린 자신의 행위 자체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닥터 텐마는 자신이 소년을 살릴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것은 약혼녀를 잃었기 때문도 아니고 원장의 눈밖에 나서도 아닙니다. 자신이 살린 그 소년이 진정한 [몬스터]였기 때문입니다. 그 소년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조금의 감정적인 동요도 일으키지 않는 악마 자체였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일 무서운 존재. 자신을 살린 텐마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쌍둥이 여동생에 대해서만 관대한 악마. 그 악마의 이름은 요한.

시장을 살림으로 명성을 얻고 원장의 신임을 두텁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실려온 소년을 수술하여 살려낸 정의로운 그의 행동이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을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하는 것이었음을 알았을 때 텐마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 만화 [몬스터]의 흥미진진한 내용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결국 닥터 텐마는 의사 생활을 접고 자신이 살린 몬스터를 제거하기 위해 요한을 찾아 나섭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한 어떤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경험도 하게 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선한 의도로 말한 것이 수많은 오해로 다가오기도 하고, 좋은 마음으로 행한 행동이 오히려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미치기도 합니다. 도와주려는 우호적인 태도가 오히려 자신을 벼랑으로 몰고 가게 만들기도 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려고 한 의도가 폭탄처럼 주변의 것을 부서뜨리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인생살이. 그렇기에 흥미가 있고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인간의 깊은 문제를 [몬스터]라는 만화 속에서 보게 되고 철학서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전율을 만화책 속에서 되살려내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 여건상 하루에 한권밖에 읽을 수 없지만 [몬스터]는 다음 내용이 참 궁금해지게 하는 만화입니다. 
기사입력: 2006/06/21 [10:02]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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