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바친 3代 일기
 
김광영기자
오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꼭 56년째 되는 날입니다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에 매진했던 6-70년대까지 격동의 고비 마다 청춘을 조국에 바친 3대 가족이 있다.

이들에게는 국가유공자라는 명예가 주어졌지만 일가족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올해 60살의 권용복씨... 6월이 오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그리움을 달랜다.

12대 독자였던 권씨의 아버지 권처달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주위의 만류에도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지난 1953년 강원도 금화에서 전사했다.

이때 아버지의 나이가 23살 권씨는 4살 권씨의 남동생은 2살이었다. 이후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행상 등 갖은 고생을 해야했고 형제는 늘 아버지가 그리웠다.

권용복(60, 청원 강내)씨는 "보고 싶지만 사진한장 남지 않아 원통하죠. 할머니가 제얼굴이 아버지 닳았다는 말에 거울보며 아버지를 그려보곤 했어요"라고 말했다.

권씨 형제의 아픔은 할아버지대부터 대물림 됐다. 권씨의 아버지도 불과 8살에 고아로 자라야 했다. 할아버지 고 권혁기 옹이 3.1만세운동 당시 주민들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고 병을 얻어 아버지가 8살때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권용복(60)씨는 "고아나 다름없는 아버지는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생활을 했다"고 회상했다.

권씨 형제의 아픈 가족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다. 두사람은 지난 69년과 70년 각각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고엽제후유증으로 형 용복씨는 고혈압과 당뇨 청각장애를, 동생은 만성담마진이라는 병을 얻었다.

권씨는 이런 아픔을 딛고 자식 3형제를 모두 출가시켜 아버지가 못다한 다복한 가정을 이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소망 하나가 더 있다.

권용복(60, 청원 강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국립묘지에 모시고 싶은게 마지막 소망"이라고 전했다.

근현대사의 격동기 마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 3대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사입력: 2006/06/26 [15:25]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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