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오른 팔을 잘라내다
 
안희환기자
스스로 오른 팔을 잘라내다/ 안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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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주고 뼈를 꺾는다는 표현을 간혹 접할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가 피해를 보고 타격을 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 패배는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을 때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이고 힘들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타격을 피하고 후일을 대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결단이며 행동이라 할 것입니다.


애런 랄스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끝없이 높은 산들을 수없이 올라갔던 탁월한 등산가입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애런 랄스턴 역시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2003년 4월 25일 유타 주 남동쪽에 있는 블루 존 캐년을 등반하다가 큰 곤란을 겪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덕에 곤란을 겪고 있는 그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내역은 이렇습니다. 애런은 산을 오르기 위해 오른 팔을 좁은 암벽 사이의 틈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이 팔이 끼고 만 것입니다. 빠져나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팔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도 팔은 빠지지 않았고 그런 식으로 암벽에 매달려 있어야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이 갑니다.


이때 애런은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등산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오른팔을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애런은 왼손으로 주머니칼을 꺼내서 팔꿈치 아래를 절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용 칼날이 아닌 무딘 칼날로, 마취도 하지 않은 맨 정신으로 팔을 잘라낼 때의 고통이란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팔을 잘라 낸 애런은 지혈대로 피를 멎게 했습니다.


이미 땅에서 25미터나 위로 올라간 상태이기에 통증을 이기며 왼팔만 가지고 가파른 암벽을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보통 이상의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추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내려온 후로도 구조 헬기가 그를 발견하기까지 9킬로미터를 걸어야했습니다. 마침내 구조 헬기에 의해 발견된 엘런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것은 오른팔의 포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른 팔이 정말 소중하지만, 그렇게 오른팔을 잘라내는 것은 너무나도 커다란 손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팔을 희생함으로써 얻은 목숨은 더 소중한 것입니다. 차마 자신의 팔에 칼을 들이댈 수 없다며 그대로 있었다면 애런은 암벽 위의 해골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피부와 힘줄이 말라비틀어진 후에야 암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 더 소중한 것을 지키거나 얻기 위해 소중한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고통이요 큰 상실감을 안겨다 주지만 시기를 놓칠 경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 있기에 결단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련이 생긴다고 해서 또한 너무 마음이 아프고 힘든 일이라고 해서 머뭇거리면 후에 더 많은 것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할 때 단호한 자세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원리는 한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칼로 도려내는 아픔을 겪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같은 측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꼭 구조조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을 도려냄으로써 전체가 살 수 있는 길이 트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조직이나 공동체보다 더 큰 국가 역시 때로 더 소중한 것을 지키거나 얻기 위해 소중한 것을 잘라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 전체의 수반인 대통령의 경우 늘 민감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나라 전체의 생존과 번영일진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소중한 것이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고, 정책일수도 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심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사입력: 2006/07/01 [09:03]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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