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도 물에 잠겼었는데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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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튼튼한 건물 안의 대형 유리창 안에서 내다보는 빗줄기는 낭만이 있을지 몰라도 직접 그 비를 온 몸으로 맞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야말로 재앙입니다. 삶의 터전이 떠내려가 버리고 생명이 위협을 받는 극한 상황까지 몰아가게 하는 잔혹한 빗줄기인 것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이재민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예외가 없는 듯이 불행에 빠진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위급하나 손 쓸 여유나 능력이 없어 뜨거운 태양이 아니어도 속이 타들어가는 답답함. 불을 끄는 물줄기가 오히려 애태움으로 불붙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난리를 겪는 계절이 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물난리에 대한 기억입니다. 우리 집은 안양천 옆으로 쌓아올려진 뚝방 아래의 판자촌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소조차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그 많은 집들의 주소가 죄다 [경기도 광명시 소하1동 500번지]였습니다. 우체부가 알아서 편지 등을 전달해야만 했던 곳입니다.

그나마도 너무 집이 좁아서 판자를 바깥쪽으로 세워 방을 넓히려하면 철거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부숴버리는 냉혹함에 분노를 느끼기도 해야 했던 곳입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불이 나는 것이었는데 나무로 대충 만든 집들이 나란히 붙어있기에 한집에 불이 나고 바람이 불면 다같이 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과 대비되는 물 역시 두려움의 요소였습니다. 장마철이 되어 하늘이 물을 퍼부어대면 동네 사람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뚝방 위를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시간이 다르게 불어가는 안양천의 모습은 거대한 괴물이라도 되는 듯이 뚝방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물이 넘치면 온 동네가 떠내려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양천 물이 뚝방을 압도해버리기도 전에 미처 하수구로 빠져나가지 못한 물들이 거꾸로 올라오면서 집 안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데 가구니 가전제품(버리기 직전의 물건들일지라도)이니 잡동사니들이 물에 다 잠겨버렸고 온 가족은 안서중학교나 서면초등학교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장마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려주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검은 색 담요입니다. 그래도 한 나라 백성이라고 이불은 덮고 자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정부 차원에서 보내준 것입니다. 둘째로 라면 박스인데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우리들에게 굶어죽지는 말라고 보내준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그걸 보고 좋아했었습니다. 셋째로 엉망진창이 된 집안의 모습인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특히 재래식 화장실에서 흘러들어온 건더기는 마음을 침통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물난리로 인해 집이 잠겨버린 사람들이 어린 시절 우리 가족들이 느끼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당시 우리들이 받던 보상(검은색 담요와 라면 박스)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상처받은 마음들에 그다지 위로가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지만 어릴 때 살던 [광명시 소하1동 500번지]는 건재합니다. 빗물펌프처리장이 왕성하게 활동해주는 덕에 물이 역류할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빗물펌프처리장이 진즉에 만들어졌으면 피해가 없었을 텐데). 어쩌면 지금도 조금 더 일찍 손을 보고 신경을 써서 방비했더라면 피해를 면할 수 있었던 지역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아쉬운 마음입니다.

이번 집중 호우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 차원에서 그들을 돕는 행렬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고 비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해마다 이어지는 장마로 인한 패해, 이로 인한 깊은 상처의 고리가 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입력: 2006/07/18 [16:2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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