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프로를 뽑아야 한다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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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로라는 말을 쓰면 돈을 받고 어떤 일에 전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러나 원래 프로란 말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프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자신감을 가지고 해나갈 수 있으며 그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만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진정한 프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회 각 분야에는 프로들이 필요합니다. 어설프게 일처리 하는 사람들 때문에 망가지고 손해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이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의 수장자리를 차지했을 경우에 그 기업이 잘 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아는 지식으로 중책을 감당하려고 하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맙니다. 기업의 수장이 되려면 경영자로서 프로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경영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 다 해당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불기둥). 어떤 사람이 제대 말년 병장 때 실제로 겪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등병 한 사람이 배속 받아 왔습니다. 제대 말년에 부려먹을 사람 와서 좋아했더니 막상 일할 때나 필요할 때 보면 내무반에 없었답니다. 알고 보니 대대장이 바둑광인데 바로 김 이병이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었답니다. 대대장이 틈틈이 시간만 있으면 김 이병을 불러 바둑을 두었답니다.

그리고 김 이병은 대대장 실에서 돌아올 때면 사과, 사탕, 과자 등 간식도 많이 얻어와서 내무반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답니다. 처음에는 상급자들이 부려먹지 못해서 미워했는데 먹을 것이 생기니까 좋아하더랍니다. "먹는 자"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김 이병이 대대장실에서 돌아왔는데 얼굴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연을 들어본즉 한참 바둑을 두던 대대장이 갑자기 바둑판을 둘러엎더니 이유도 없이 한참을 두들겨 패더라는 것입니다. 김 이병은 실컷 맞고 나서 "아니, 대대장님 왜 때리는 것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화가 난 대대장이 소리 지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때껏 내가 너하고 바둑을 수도 없이 두었다. 먹을 것도 많이 주고 열외도 시켜주고 완전히 특과병 대접을 해 주었는데, 그래, 그렇게 많이 바둑 두면서 이등병인 주제에 대대장에게 한 번도 져주지 않아? 너는 맞아도 싸!"

그 말을 들은 내무반원들이 또 한 차례 김 이병을 흠씬 두들겨 패면서 "이 고문관 같은 녀석아! 군대생활은 눈치껏 해야 너도 편하고 우리 다 편한데, 어떻게 그렇게 하였냐? 가끔은 대대장에게 져주기도 하면서 비위도 맞추어 줘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했습니다.

이 말에 김 이병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병장님! 저는 프롭니다. 일단 대국에 들어가면 상대가 누구든 신경 안 씁니다. 배운 대로 합니다.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저의 기량을 다 발휘합니다. 저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롭니다."

이 정도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프로라는 이름을 쓰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과 대국을 두는 상대가 자신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대대장이라고 할지라도, 또 그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이 군생활을 편하게 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 바둑으로 맞상대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승부하는 자세는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병을 두들겨 팼던 대대장은 그렇다 쳐도 그 이야기를 듣고 김이병을 두들겨 팼던 내무반의 군인들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이한 사고를 가지고 살면서 그런 자신이 참으로 지혜롭게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프로 의식을 발휘하여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 굽히지 않았던 사람을 오히려 융통성 없다고 비난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목사입니다. 목사들은 담임목사로서 사역하기 전에 부목사라는 과정을 거치곤 하는데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부목사일 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설교를 준비하되 담임목사보다 잘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야 눈밖에나지 않고 편안하게 부목사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담임목사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고,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성도들에게 생명의 꼴을 먹이는 것이 목사의 역할인데 담임목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설교를 죽을 쓰거나 약하게 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설교 준비를 하였고 설교할 때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는 저 자신이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부교역자들이 다섯명 있는데 한결같이 실력이 있고 영성도 있어서 설교를 잘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도들로부터 ‘오늘은 목사님 설교보다 더 좋았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분 나빠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차피 좋은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우리 교회에 속한 이들이고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설교를 할 경우 저는 그 부교역자에게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담임목사인 제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지 않고 느슨하게 설교를 했다면 꾸지람을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프로 의식이 없는 목회자의 모습이고 강단에 서서 설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목회라고 하는 것을 넓게 펼쳐서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제가 한 교회를 돌아보고 있듯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돌아보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는 과연 프로 의식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대가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권에도 프로들이 필요합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 사람, 진정 국민들을 위하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사람, 나라의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자신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앞에서도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옳은 일을 위해서 기꺼이 백의종군할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바람따라 흔들리는 갈대처럼 권력의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는 사람들은 프로가 아닌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프로의식을 보이는 정치인들은 가뭄에 콩 나는 것처럼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하나같이 철새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가게 하는 것인가 하는 탄식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을 가지고 그것을 적용하여 나라를 유익하게 하는 역량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고한 긍지 위에 얻어맞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중심을 지키는 지도자들이 아쉽습니다.

이제는 프로를 뽑아야 합니다. (꾼은 프로가 아닙니다)

기사입력: 2006/09/04 [10:2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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