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에게서 배운다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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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오다 노부나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비록 천하를 통일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수없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들 속에서 통일직전까지 간 오다 노부나가의 리더십은 인정받을 만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가 약소국가인 오와리(아이치현)의 작은 세력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의 능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오나 노부나가가 우리와 다른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기에 노부나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마땅치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누구를 통해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얻어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간략한 서술들이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작은 세력에서 통일 직전까지 성공을 거둔 삶을 추적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 실패의 원인을 찾아 보완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패배를 한적이 거의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삶을 추적해 들어가면 상당히 많은 실패의 경험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않고 문제와 원인을 분석하여 차후에 승리할 수 있는 비책을 세웠고 이것이 오다 노부나가를 불패의 인물인 양 여겨지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혼간사 공략 때에는 사이카 사람들의 조총부대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신없이 쏘아대는 조총의 공격으로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도 못한 채 곤란을 겪었던 것입니다. 이에 노부나가는 네고로의 승병(조총으로 무장한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던 무리)들을 대거 고용해 부하들을 훈련시켰고, 최강의 소총부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나가시노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오다 노부나가의 모습은 모리 수군과의 전투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모리 수군과의 첫 전투는 패배였습니다. 원래부터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는 해전이 주특기가 아니었을 뿐더러 모리 수군의 실력조차 모른 채 행해진 전투였었기에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전투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모리 수군은 호로쿠라 불리는 화기로 공격하였기에 노부나가는 더 낭패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노부나가는 모리 수군을 이길 수 있는 비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였고 마침내 철판으로 둘러싼 철갑선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배에 철판을 둘러두었기에 적의 화기를 봉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철갑선 덕으로 2회전에서는 완승을 거두었고, 그 결과 혼간사는 보급로가 끊겨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화기를 피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화기로 공격해도 타격을 받지 않을 방법을 고안해내는 모습 속에서 적극적인 노부나가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끈질긴 인내심으로 무장한다.

오다 노무나가는 성격이 괄괄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끝없이 참을 줄 알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미노를 공략할 때는 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시야마의 혼간사를 공략할 때에는 11년이나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꼭 취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곳을 공략할 때는 아무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해도 꿋꿋하게 참아내며 그 일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다케다 가쓰요리를 공략할 때도 상대가 내부 붕괴로 자멸하기를 7년이나 기다린 후에야 공격했으니 그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할 것입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미노의 사이토 요시타쓰를 공격할 때의 일입니다. 미노를 공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미노의 지형 때문이었습니다. 미노에는 강들이 몇 줄기나 되는 지류를 만들어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러한 지형에서는 지리에 밝은 사이토 측이 유리한 것이 당연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사이토 측이 동원 가능한 병력은 오다 측의 몇 배나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첨단부기의 소유 여하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군사의 수는 곧 전재의 승패를 좌우하는 해심적인 요소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부나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노부나가가 그토록 미노에 집착했던 이유는 교토로 진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애를 먹었던 노부나가는 곧바로 동쪽의 미카와 공략과 동시 진행 중이던 작전의 불리함을 깨닫고,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양쪽에 에너지를 쏟느니 한쪽에 집중적인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노부나가와 이에야스가 맺은 동맹이 그 유명한 기요스 동맹입니다. 동방의 안전을 굳힘으로서 노부나가는 미노 정복만을 목표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내심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던 노부나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내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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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재를 발탁하여 등용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인재에 욕심이 유달리 많았던 인물입니다. 그에게 있어 인재란 출신이나 신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설사 선대의 가신이더라도 무능한 인간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노부나가입니다. 반대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누구이든 가리지 않고 등용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성공을 원하는 많은 인재들이 노부나가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 오다 노부나가는 공을 세우는 부하들에게는 아낌없이 큰 상을 주고 중직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가즈마스는 오우미 코가군 출신으로 일개 낭인에 불과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라 기타이세를 공략하였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가즈마스는 그 상급으로서 에이쿠로 12년(1568년)에 기타이세의 다섯 군을 하사받았습니다. 일개 낭인에 불과하던 그가 노부나가의 가신들 중 가장 먼저 일국일성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농민 출신인 히데요시 역시 공을 세움으로써 출세한 인물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스노마타에 거점으로 성을 쌓는 것에 성공해서 일약 오다가 내의 유력 무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덴쇼 5년(1577년)에는 강적 모리씨와 대치하는 주고쿠 방면군의 사령관이 되었으며 오다 노부나가는 그런 히데요시를 무척 아꼈습니다. 히데요시는 빠른 속도로 출세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유력한 가신이 되고 맙니다.

미쓰히데는 명문 아케치가 출신이었지만 떠돌이에 불과했던 인물입니다. 노부나가는 덴쇼 3년에 미쓰히데에게 단바와 단고의 평정을 명했습니다. 겨우 4년 만에  미쓰히데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수행함으로써 인정을 받게 됩니다. 덕분에 덴쇼 10년에는 긴키 영주에 상당하는 지위까지 올라서게 됩니다. 후에 히데요시에게 밀려나기는 하지만 미쓰히데를 대하는 노부나가의 태도에서도 인재를 등용하는 노부나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강점 세 가지는 나라를 건너고 시대를 뛰어 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행동수칙에 있어서는 다른 방안들이 나와야할 것이지만 그 원리만큼은 지금도 매우 유용하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대선을 준비하는 여러 잠재적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불리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들에게 오다 노부나가의 성공 비결은 좋은 통찰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찾아 분석하여 보완함으로서 차후에 그것이 다시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한다면 약점을 감추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즉각적인 반응이나 결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면서 힘든 과정을 인내하는 끈기가 있어야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재를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각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참모진이 시원치 않으면 힘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기사입력: 2006/09/05 [09:5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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