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역대 지도자의 인물비교 분석
 
이강석 기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인물 보는 안목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여러 차례 대통령 선거가 있었지만 대통령 잘 뽑았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다. 선거가 실시되고 요란한 당선 빵빠레가 울린 후 대통령 집무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으면 아이쿠 사람 잘못 뽑았다는 탄식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며 대통령 임기 내내 후회의 한숨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치고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인들까지 그런 현상을 나타내는데 어안이 벙벙하며 할말을 잃는다. 독자들에게 스승이요, 새로운 지식의 물결을 심어주는 지도자와 같은 의미가 있는 언론인들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대통령 후보 보는 눈이 까막눈이요, 앞 못 보는 맹인과 같다면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대통령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대통령으로서 선결 조건으로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하는 것이 무엇인가, 용병술, 지략, 위기탈출능력 새로운 비젼 제시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인사관리 능력이다. 인사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잘 관리하면 모든 만사가 술술 잘 풀린다는 말이다.

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할 선결 조건은 사람 보는 안목이다. 성공한 제왕은 인재 구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인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삼고초려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수하로 거느리기 위해 일국을 다스리는 지존인 국왕이란 거창한 타이틀이 뿜어내는 절차와 형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무려 세 번씩이나 손수 찾아가 사정사정 통사정하여 제갈공명을 자신의 수하로 거느린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이다.

삼성의 이병철회장이 살아생전에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인재 구하는 일이었으며 오늘날 삼성의 신화도 알고 보면 인재를 극진히 생각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에까지 손수 참가하며 일일이 면접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물을 사원으로 선택했으며 심지어는 관상쟁이까지 불러 인재를 골랐다. 사람이 곧 기업의 사활을 좌우한다는 좌우명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사람 구하는데 사력을 다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권력자들을 살펴보면 실패한 정권과 성공한 정권의 차이점을 볼 수 있는데 성공한 정권이 지닌 특징은 인재를 소중히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실패한 정권의 특징은 인재보다는 자신에 대한 듣기 좋은 아부나 충성심을 최우선으로 삼았음을 볼 수 있다.

역대 지도자중 첫 번째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이 김구선생과 이승만대통령을 들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승만 박사를 무시하고 대부분 김구선생을 최고의 지도자로 뽑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리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조국광복에 일생을 받친 김구선생의 삶은 큰 교훈이 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승만 박사는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냈으며 조국광복을 위해 밤낮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이시다. 두 분 중 과연 누가 더 국가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펼치며 나라 발전에 이바지했던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독립운동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미국을 떠돌며 망명생활을 했기에 누구보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을 정부 요직에 임명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공부를 하고 국가를 다스릴만한 인물이 없었다.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들은 일제에 항거하기 위하여 초등학교조차도 완강히 거부했으며 그 덕분에 초등학교도 못나온 무식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분들을 우대 하고 관리로 등용해봐야  나라꼴이 엉망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너무도 뻔함을 알고 한탄한다.

무식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재앙이고 그 재앙을 국민들의 아픔으로 크게 확대할 순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어쩔 수 없이 친일파나 그 후손들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덕분에 행정과 교육은 제자리를 찾고 안정된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살펴보자, 김일성은 자신이 독립운동을 통하여 고난을 겪던 그 시절의 의리를 생각하고 일제에 극렬히 대항한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에 대하여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그리고 친일파나 그 후손들은 철저히 격리시켰으며 권력의 모든 핵심을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들로 채워버렸다. 독립운동을 한 최 헌은 한글도 모를 만큼 무식했는데 장관이 되었으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장관이 한글도 모를 정도로 무식했는데 그 밑의 관리들은 오죽했겠는가, 무식한 것은 죄악이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무식이 펼치는 무시무시한 광란이 시작되었다.

조금만 잘못이 있으면 곧바로 즉결처형을 하거나 형무소로 보내는 상상할 수 없는 폭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 속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국가운명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300만 명이 굶어죽고 1,500만명의 북한 국민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비규환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남한에 있던 1백만 명 가까운 일본의 지식인들이 해방과 더불어 대거 일본본국으로 귀환하자 한국은 지식인 대공황사태를 만났다. 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이 없었으며 공장을 돌릴 유능한 기술자가 없었다. 일제에 충성했다는 구실로 지식인들을 대거 숙청했다가는 나라운명이 풍비박산 난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승만 박사는 친일파 처단보다는 국가가 사는 것이 우선이란 사실을 깨닫고 친일 행위를 행한 모든 지식인들에 대한 대사면령을 내린 것이다. 국가 발전에 필요한 것은 지식인들이고 지식인들을 멀리하면 어떤 재앙이 닥친다는 것을 계산해 넣고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김구선생이 정권을 잡고 국가를 운영했다고 가정해보자, 김구선생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에 대한 절대적인 우대정책을 펼쳤을 것이며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아래 북한과 통합도 강행했을 것이다. 북한이 오늘날 못살고 힘든 지경에 처해진 것을 보면 김구선생이 그릴 대한민국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승만 박사가 권력싸움에 패배하여 뒤로 물러났고 김구선생이 권력을 잡았더라면  우린 김구선생의 사진이 들어간 플랭카드가 빗물에 젖으면 울고불고 흐느끼며 대성통곡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역죄인으로 몰리고 일가친척 친구, 이웃들이 형무소에 끌려가 철창속에 갇힌 채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김구선생이 그렇게 국민들을 혹독하게 다스리라고 시켰을리가 만무하다.

문제는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아랫사람들을 잘못 쓰면 그런 기막힌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것이다. 김구선생의 광신도가 되어 미쳐 날뛰는 무리들이 충성심을 보인답시고 선량한 국민들에게 무슨 짓인들 마다하겠는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김구선생께서 자신이 좋다고 오만방자하게 날뛰는 무리들을 단호하게 응징해야 하는데 의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김구선생이 이들을 호되게 나무라며 통제했으리란 가상은 성립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패망한 독일과 일본은 모든 돈을 전쟁에 쏟아 붓고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지하자원이 많은 것도 아니요. 경제부흥에 필요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독일이 불과 몇 년만에 나인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들으며 세계 정상급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비결이 무엇인가, 일본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 비결은 무한정에 가까운 지식층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의 발전 사례를 보더라도 지식층은 곧 엄청난 자원이며, 국가 부흥을 이루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친일이 말할 수 없이 밉지만 혀를 깨물며 두 눈을 지긋히 감고 친일파들을 포용하며 국가발전을 위한 백년대개를 내다본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을 결코 과소평가 해선 안 된다.

다음 편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에 대한 인물평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에 대한 인물 분석이 이어지겠습니다.
기사입력: 2006/09/13 [09:2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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