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진실을 보도할 때 생명력 있다
 
이성용 기자
신문은 진실을 보도할 때  생명력 있다. 
                                                                                      
우리가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운전을 하다보면 차량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정체될 곳도 아닌데 차가 막히고 있다. 자세히 보니 저 멀리 앞에는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이미 견인차와 경찰관이 도착해 있다.

그런데도 사고차량은 전혀 음직이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 잘못이 있느냐는 시비를 가리느라고 그렇다. 시비가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일리가 있어서 어느 사람의 말이 맞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하루에도 이런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신문에 보도가 되게 되는데 엄격히 따지면, 이런 의미에서 진실보도가 어렵다는 것이다. 좋은 보도가 되려면 이러한 다양한 사건들의 시비가 정확히 가려져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 진실이냐 누가 사고를 내었느냐를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신문은 진실이 보도 되어야 한다. 진실은 신문의 생명이다.

 신문이 만들어지면, 시민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신문을 본다. 그런데 기사를 쓰는 신문기자들은 이것을 자명한 것처럼 생각을 한다. 그리고 선량한 시민들은 그대로 진실보도로 받아  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자의 진실 보도의 책무는 매우 크다 하겠다.

진실보도의 중요성을 보고 의식 있는 시민들은 증명이나 설명 없는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들도 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다는 일들은 신문의 진실성이 매우 중용함을 깨닫게 해주는 면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조은 신문을 만들어가야 한다. 진실한 보도. 믿을 수 있는 언론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 경기조은뉴스는 이러한 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편파적이지 않는, 믿을 수 있는 보도. 진실보도를 위해 생명을 걸고 노력하고자 한다. 

우리가 여러 신문들을 파악해 보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사건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건은 하나인데 보도는 다른 시각에서 다른 내용으로 보도되고 있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기자의 시각에 따라 다양성을 인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사건사실 앞에서 객관성을 가지고 진실보도를 하여야 한다. 어떤 사건이나 문제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
어느 누가 설명한 사실이 아니라 본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가 교통사고 하나만 하더라도 진실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사건 전체를 보아야 할 것이다.

언론에서의 진실은 사건 전체를 볼 때에 보게 된다. 전체를 보게 되면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부분만 보게 되면 진실이 감추어지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죄가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진실을 드러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한쪽만을 전달하고, 한쪽만을 과장하는 한쪽만을 음폐 시키려는 것이다.

결국 언론은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부정확의 보도를 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많이 있다. 기사에 있어서의 생명은 진실이다. 진실이 확실히 정리될 때에 바른 논평을 할 수 있다. 논평을 하려면 먼저 진실한 논평을 해야 한다. 진실한 논평을 하려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보는 자유로운 활동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 공정한 논평이 나오는 것이다.

언론에 있어서 진실한 보도가 중요하다. 공정한 논평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역사적으로 관찰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어떤 사물을 옳게 보도하고 논평하려면 그 사물의 의미 또는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물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다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 인정받았던 가치가 내일에는 부정되기도 하고 오늘의 부정된 가치가 내일에는 새롭게 평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물을 바로 평가하려면, 항상 새로운 가치. 발전하는 새 날을 위한 가치의 입장에서 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가치에 서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안목은 결정된다. 안목이 있는 사람은 멀리 깊이 본다. 전체를 본다. 진실을 보도하게 된다.

본 기자가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있을 때에 요세미스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는 1000년 된 나무 500년 된 나무들이 아직도 자라고 있었다. 그 곳의 우장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000 M 위에서 떨어지는 우장하고 장엄한 폭포. 얼마나 크다고 설명할 수 없는 나무들...

한 예로 우리나라 소나무와 같은 나무가 있는데 나무 하나를 재어보니 아홉 아름이나 되고, 이 미국 소나무껍질하나가 사람만큼이나 되었다. 그때 요세미스를 전체를 보면서 이런 나무를 볼 때  요세미스 전체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아마 사람들이 요세미스 숲을 보고 나무를 볼 때와 나무만 보고 난 후의 논평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물을 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사물을 볼 때에는 먼저 어느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지를 똑바로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존재는 다양하다. 사고가 났을 때에 중요한 것은 사고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다. 사고가 얼마나 큰 사건인가 자동차가 얼마나 부서졌나가 큰 문제가 아니다. 사고의 현장을 보면서 이 사건이 일어나는 근거. 조건 이 무엇 이었나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을 식별해야 한다.

결국 정확한 식별을 할 때에 이사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되고 이것을 주제로 하여 기사를 작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사의 어떤 부분을 기사로 잡느냐에 따라서 기사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앞으로 경기조은뉴스는 여러분을 위해 진실보도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조은 뉴스가 되도록 경기조은뉴스는 거듭날 것이다.



기사입력: 2006/09/15 [13:3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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