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하느냐 따라 영향력 다르다
 
안희환 기자
182.jpg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말의 영향력이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볼 때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과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의 말이 같은 비중으로 받아들여질 리가 없습니다. 시청 내에서 시장이 지나가듯이 한 말이 부하 직원이 정중하게 한 말보다 더 힘이 실린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독재 시절 대통령이 지나가듯이 말한 것이 얼마나 신속하게 시행되었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그런데 말의 영향력은 말을 하는 사람의 힘과 권력에 따라서만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친분관계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공유할 만큼 가까운 친구의 말은 상대적으로 소원한 관계의 친구가 하는 말보다 더 힘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일가친척의 말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의 말보다 더 큰 효과를 드러냅니다.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마음을 열고 들으면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남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 과정을 극복한 사람의 말은 평생을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의 말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빈 말이 아니라 삶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 묻어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비웃거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그 무엇이 인생의 고난 속에서 형성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난은 우리의 영향력을 키워주는 학교와도 같습니다.

한번은 미국의 저명한 은행의 은행장인 다우링이 상이용사들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우링은 특강을 하면서 상이용사들을 향해 공격하는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은 패배주의자들입니다. 남을 의지하고 국가의 연금을 축내며 되는 대로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왜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자꾸 의지하려고만 하는 것입니까? 그런 삶을 당장에 중단해야만 합니다."

이 정도의 비난이라면 그 누구라도 화가 나고 말 것입니다. 더구나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상이용사들을 면전에서 그렇게 공격하다니 이건 장작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상이용사들은 분노하였습니다. 다우링에게 맥주병과 재떨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특강을 하는 장소는 살얼음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다우링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상이용사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을 했고 상이용사들은 미친듯이 일어섰습니다. 그때 다우링은 자신의 한쪽 옷소매를 걷어 올렸습니다. 쇠갈고리가 나왔습니다. 다른 소매도 걷어 올렸습니다. 역시 그 쪽도 가짜 팔이었습니다. 곧 이어 바지를 걷어 올렸는데 상이용사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다리가 다 나무 다리였던 것입니다.

다우링은 조용해진 상이용사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열두 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눈 위에 10시간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잘라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욕을 갖고 이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리라. 나는 성공하리라.라고 각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서 이렇게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나도 노력해서 은행장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나보다 낫지 않습니까? 왜 그냥 먹고 놀기만 합니까?"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다우링의 삶은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담고 있었고 그 모든 것을 딛고 넘어선 그의 말은 그 자체로 큰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다우링이 사지가 멀쩡한 채로 그와 같은 연설을 했더라면 아마도 상이용사들에게 뭇매를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부상보다 더 큰 장애를 지닌 다우링이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우뚝 선 것임을 알았을 때 상이용사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던 다우링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종종 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가볍고 힘이 없는 말을 많이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뼈저린 삶의 과정 속에서 나온 속 깊은 이야기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내뱉는 얕은 머릿속에서의 생각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니 그 모든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권세자들처럼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과 특별한 친밀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 자체가 용광로를 수차례 통과한 강철처럼 인생의 고난 속에서 깊어진 모습을 갖춘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가볍지 않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무겁게만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지만 때로는 영혼 한 복판을 파고들만한 힘 있는 말 한 마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입력: 2006/09/19 [09:5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