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빈사회에 가짜명품 가짜명사 번성
무늬만 민주투사, 통일역군, 평화운동가들
 
조영환 칼럼니스트
명품 가짜 시계, 가짜 의류, 가짜 장신구 등을 산 사회적 명망가들이 요즘 망신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가짜 명품들이 기승을 부릴까? 이런 가짜 명품 소동은 옛날에는 없었는데, 요즘만 있는 현상일까? 아니면 옛날에도 있었지만, 요즘 더 심해진 것일까?
 
이에 대한 가장 명백한 사회학적 대답은 아마 다니엘 부어스틴(IMAGE의 저자)이나 레오 브로디(FRENZY OF RENOWN의 저자)에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계적 사회학, 문명학, 역사학 전문가들은 후기현대사회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내면보다는 외모, 실체보다는 이미지에, 실력보다는 표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피상적, 타자지향적, 표현적 인간들로 바뀌었는지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후기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자신의 내면(who they are)보다는 자신의 소유(what they have)나 자신의 외모(what they show)에 깊이 신경을 쓰는 표현적 인간들로 바뀌었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만은 타자지향적 인간유형을 도식화시켜서 외적 표현을 중시하는 인간들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버드의 실용주의 철학자이면서 심리학자였던 윌리암 제임스가 아마 인간의 외모나 소유를 가장 현실적으로 인정한 학자일 것이다. 인간관계가 피상적인 후기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을 가졌느냐와 무엇을 보여주느냐를 굉장히 중시한다.
 
후기현대사회의 구성원들은 내면과 실력보다 이미지와 표현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겉은 화려한데 속이 빈 인간들이 오늘날 늘어나고, 이미지에 근거한 피상적 판단에 의존된 인간관계는 쉽게 깨어질 수 있다. 실체가 아닌 이미지가 사회적 사실로서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게임의 한계는 엄청나다.
 
그 결과 엄청난 변수들로 뒤엉킨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대한 판단이 피상적이 되어 인간관계는 쉽게 단절된다. 외모에 신경을 쓴 인생의 마지막 댓가는 허무한 자기실망과 자학이다.
 
자아지향적 인간들이야 남이 어떻게 보든 자신의 내면과 품격만 수련하면 되었지만, 타자지향적 인간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만 신경을 쓰기에 인기가 사라지면 곧 죽음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어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판단의 차이는 비록 군중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들도 자신의 존재를 내면적 수련으로 볼 것인가 외적 인기로 볼 것인가에 차이가 난다.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인생은 자아지향적 은둔자와 타자지향적 연예인의 차이이기도 하다. 김용옥은 시대의 추세에 영합 잘하는 대표적인 헤겔류의 지식 연예인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촛점을 맞추어 살아온 타자지향적 인간들이 혼로 있을 때에 느끼는 허무감은 파괴적 외로움과 인생의 살맛을 잃게 만든다. 화려한 명품을 걸치고 또 걸친다고 해도 결국 남녀관계는 벌거벗은 육체와 벌거벗은 인간성만 남게 되어있다.
 
그래서 명품으로 치장된 타자지향적 인간들이 오랜 시간을 둔 인간관계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실망과 이별 뿐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이름만 알려진 실력없는 명사(celebrity)는 실력과 내공이 가득한 영웅(hero)과는 실제로는 과가 전혀 다른 껍데기 인생들이다.
 
너무 외부지향적 인간들이 많은 시대에는 속이 꽉찬 실력자들이 대중매체의 각광을 받기 힘들다. 김용옥이나 김진홍 같은 이미지와 실체가 다른 연예인들이 대중매체의 각광을 받는다.
 
오늘날 이혼률이 높고 인간관계가 취약한 것은 속이 가득찬 자아지향적 ´든사람´이 사라지고, 겉만 화려한 이미지를 가진 ´난사람´들이 연예인시대의 세상을 어지럽히고 다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속이 가득찬 영웅들은 사라지고 외적 이미지만 화려한 연예인들이 사회 모든 분야들에서 설치고 있다.
 
이미지에 의존하는 허상적 인간들이 만드는 피상적 인간관계는 후기현대사회가 가진 부정적 병리현상의 하나이다. 정치분야를 비롯하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겉만 화려한 날라리들이 한국사회의 속이 찬 구성원들을 호리고 또 부리고 있다.
 
소위 ´든사람, 난사람, 된사람´ 중에 깊이를 상실한 ´난사람´이 너무 설치고 실력있는 ´든사람´과 품위있는 ´된사람´이 천연기념물이 되어가는 후기현대사회의 어두운 증상이 한국사회에 만연되어가고 있다. 가짜 명품들이 설치는 것은 비록 시계나 핸드백 등 악세서리 분야에서만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법, 언론, 교육 분야들에서도 ´날나리´들이 ´야문이(충실한 사람)´들을 부려먹고 있다. 시계만 가짜 명품이 설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가짜 명사들이 설치고 있다.
 
한때 방송을 휩쓸고 지나간 황수관, 김진홍, 김용옥 등은 대중매체들이 만들어낸 피상적인 연예인들이지 자신들의 분야에 대가들은 아니다. 이들은 피상적 언론이 만든 사이비 명사들이다.
 
명분도 사이비 명사들에 의해서 착취당하고 있다. 사이비 민주투사, 사이비 통일꾼, 사이비 평화주의자, 사이비 민족주의자들이 진짜 민주투사, 통일역군, 평화운동가, 민족주의자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상품이 가짜가 설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짜가 설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껍데기 이미지만 뻔지르르한 사이비 명사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허상의 시대에 껍데기 이미지만 뻔지르르한 가짜 명품들이 활개를 치게 마련이다. 모든 사회현상은 사회구성원들이 가진 의식구조 혹은 가치체계의 구현일 뿐이다.[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독립신문]
기사입력: 2006/09/26 [09:0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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