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재발견’, 카메라로 세상을 보자
어떤 맥락에서 이용되느냐에 따라 사진은 결정돼
 
오동명 칼럼니스트
▲침팬지의 촬영자세-사진2     © 대자보
동물원 침팬지의 손에 카메라를 집어줘 봤다. 먹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물어 뜯어보지는 않을까? 먹을 게 아님을 알고는 딱딱한 물건을 결국 내팽개치지는 않을까? 카메라의 파손을 먼저 염려했었다.
 
하지만 침팬지 손에 쥐어진지 불과 5분 뒤, 사람의 손보다 투박하고 사람의 것보다도 긴 손가락을 가진 침팬지는 카메라의 파인더(사진을 찍기 위해 찍을 대상을 볼 수 있게 한 창)에 눈을 들이대더니, 그 창을 통해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을 깨닫고는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또 마치 촬영을 하려는 듯한 포즈도 취했다. 그 모습이 전혀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말과 글이 필요하겠는가. 아래 두 장의 사진이 이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해주고 있다. 
 
카메라를 쥐어줬을 뿐 잡는 법을 달리 가르쳐주지 않았다. 단, 파인더에 눈을 바짝 대고 찍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긴 했다. 이것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두 사진을 보면, 두 눈으로 본 세상과 파인더를 통해 본 세상을 비교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침팬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광경을 보고 침팬지의 그 길쭉한 손가락에 맞는 버튼을 가진 카메라가 있다면 침팬지 스스로 사진촬영도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러면, 동물원 쇠창살 안에 갇힌 침팬지가 찍은 사진은 어떤 장면이 될까? 이럴 경우를 그림으로 그려봤다.
 
가능하지 않은가. 갇혀 있는 건 침팬지가 아니라 사람이다. 카메라를 쥐고 있는 자의 위치에 따라 상황은 전혀 반대가 된다. 입장이 반전되었다.
 
촬영자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사물(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인물, 사회, 자연 등 모두)에 대해 자기가 주체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래서 오만해지기도 쉽다.
 
객관적이어야 할 입장에서도 자기 입장인 주관적 성향으로 빠지게 된다. 촬영자의 자리에서만 대상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위 그림은 상반된 위치에서의 균형감각을 강조하고 있다. 촬영자는 피사체가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카메라라는 기계는 우리의 눈이나 감각과는 달리 극히 단순해서 극단 또는 일부만을 보여줌으로서 왜곡하고 때로는 반대로 호도하기 쉬운 도구이다. 카메라를 믿어서는 안 된다. 아니,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사진가는 그 어떤 속임수나 트릭, 잔꾀로 예술의 일부로 만들거나 자연에 위배되지 않도록 활용해야 한다. ...  하찮고, 더럽고, 추한 것을 피하고, 주제를 승화시킬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어색한 형태를 피해야 하고, 비회화적인 것을 교정해야 함이 그저 지켜야 할 절대적인 의무이다. / (로빈슨, 완벽한 연출로 유명한 사진, 「임종」의 사진가)
 
로빈슨의 주장을 다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속임수, 트릭, 잔꾀 등에 의한 연출이나 사진조작의 지적은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더 적절해 보인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사진의 합성, 첨삭 등의 사진조합이 판을 치면서 이제 사진은 사진영역이 아니라 디자인영역에 더 가까워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진실이다"가 아니라, "사진은 거짓일 수 있다"라는 정의가 설득력이 있어진 사회가 이즈음이다. 신문이나 잡지 등의 공공의 사진만이 아니다.
 
"어머, 꼭 연예인처럼 나왔다."
 
뽀시시 사진이라고 하나? 뽀샵 사진이라고도 하던가? 연예인처럼 나왔다는 말을 칭찬으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이건, 욕이다. 모욕이다. 실물과 달리 생겼다는 말이요, 포토샵 등 일종의 사진적 성형수술로, 자기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의 차이를 굳이 거론할 이유는 여기선 없다. 단지, 자기가 아닌 남 같은 사진을 자기라고 지갑에 넣어 가슴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저 간과만 할 수는 없다. 거짓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자연을 마치 만져볼 수 있을 정도로 소묘한 것으로서, 불충분한 우리(=화가)의 생각보다 더 명쾌하게 실증해보이고 있는 걸세."/  (화가, 들라크르와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회화가 가질 수 없는 사진만의 힘을 강조한 말이다. 포토샵 등의 일부 조작은 사진의 회화적 가미로, 자연스러움에다 화학조미료 같은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첨가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포토샵은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디자인샵 또는 조작툴 등으로 말이다.
 
다시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에밀 졸라가 한 말을 재인용해 본다.
                    
나의 집필작업은 정확하고, 솔직하며, 소박한 재현으로서 사진술에 비유할 수가 있다. 사진들의 탁월함이란, 그 예리한 관찰력이 사진술이라는 매체에 전이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   (에밀 졸라, 소설가) 
                                                            
그는 당시 만나는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한다.
 
"저는 요즘 사진에 미쳐있어요."
 
아직까지 사진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것 같다. 사실, 역사에서 사진은 부정적 역할보다는 긍적적인 기여가 훨씬 더 많았다. 사진이 아직 세상에 나와 있지 않다면, 세계라는 이름은 원시시대는 물론 고대나 중세(봉건) 때처럼 국한된 지역의 의미로만 쓰일 뿐, 지금처럼 지구 전체를 뜻하는 광의의 세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란 소통과 동시대를 한데 어우르고 아우르는 단어가 아니던가. 즉, 공간은 달라도 시간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공간으로서의 세계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다. 이럴 수 있게 한 매체가 바로 사진이다.
 
하층계급에 있어서 가족간의 애정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 노동자의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자그마한 인물사진들을 본 적이 잇는 사람이라면... 나날이 가족들의 건강한 애정을 감소시키는 사회경제적 경향에 직면하여 6페니 짜리 사진이 가난한 자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박애주의자들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나와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G.M. 트레블리안의 「영국사회사」에서)
 
이 글은 문득, 전쟁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총을 맞고 절명의 위기에 처한 한 병사가 속주머니에서 꺼내든 지갑 속의 명함판만한 작은 사진 한 장이다. 애인일 수 있고, 아내거나 자녀일 수 있다. 사진만이 가능한 나눔이요 소통이다. 이 순간, 어떤 위대한 박애주의자가 이 작은 사진만하겠는가.
 
약 10년 전,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 어린 아이의 사진을 신문에 내보낸 적이 있었다. 위험을 경고한 사진이지만, 게재된 그 날, 누군가에게서 신문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몇 개월 전 잃어버린 내 아들 같다. 사진을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아니었지만 이런 해프닝조차 사진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CCTV에 찍힌 사진(동영상)으로 범인을 잡았다는 뉴스는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사진이 적극적으로 과거에의 동경을 촉발시켜준다. 사진술은 하나의 애수적인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사진으로 찍힌 대부분의 주제들은, 단지 찍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 된다. (중략) 아름다운 주제는 서글픈 는낌을 자아낼 수도 잇는데, 사진에 찍혀진 그 본래의 대상이 이미 나이들고 썩어버렸다거나 혹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진이란, 모두 죽어버린 순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 (수잔 손탁, 미국 문화비평가)
 
그렇지만도 않다. 사진은 죽어버린, 또는 죽어갈 것(시간 포함)들에 대해 정지된 영원이기도 하다.
 
가족사진의 무지막지한 욕구는 19세기에 두드러졌던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소아의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리는 것의 자취를 잡아둡시다." 와 "자연이 창조해냈던 것을 자연으로 하여금 모방하게 합시다."라는 광고문구가 나오며 사후에 남을 초상사진의 가치를 알리고 있었다./  (뷰먼트 뉴홀, 「사진의 역사」에서)
 
의학의 발달로 소아 사망률은 현격히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백일과 돌 사진은 빠짐없이 찍는다. 순수한 기념사진이다. 
 
한편, 긴 노출시간으로 "고통(노출시간 동안 카메라 앞에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했음으로)은 바보들의 미덕"이라고까지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발명 초기의 사진은 노출시간의 단축으로 이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늙고 심각한 생김새와 어딘지 모르게 고집불통의 표정, 그리고 고정된 시선으로만 보여졌던 초기의 인물사진이 이제는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고 즐겁게 표현되고 있으며, 딱딱한 자세도 편안하고 우아하게 변화했다./  (1841년 발행된 잡지, 「가제트」의 기사 중에서)
 
노출시간 8천분의 1초로도 찍히는 지금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얘기이다. 눈 깜짝할 순간이 찍혀 오히려 애를 먹는다. 초상사진 외에 생물학자, 다윈은 자신의 요구조건에 맞춰져 찍은 사진에 대해,       
 
"조심스럽게 그려진 어떤 그림보다도 사진이 훨씬 낫다."
 
고 했는데, 사진의 여러 장점 중 복제성이 그의 연구에 적절하게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의 정확성 때문에 특히 화가들에게 더 유용했지만 그림에 사진을 활용했다며 솔직히 고백한 화가는 극히 드물었다. 
 
1870년대에는, "아무리 재능이 있는 화가라도 그 모델의 좋은 사진을 갖지 않고서는 그 초상을 똑같이 그려낼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리고 1890년대에 초상화를 그리는 데에 전통적인 방법들은 이미 쓸모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던 월터 시커터는, 사진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모델에게 한 번 더 포즈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분명한 새디즘이라고 잘라 말했다. / (아론 샤프, 「미술과 사진」에서)
      
주로 전통적인 화법에 집착하지 않은 화가들이 주로 사진을 그의 그림 그리기에 활용하였는데, 꾸르베, 마네, 드가, 고갱이 이들이다. 나폴레옹을 그린 화가, 플랑드랭은 공개석상에서 노골적으로 사진에 대해 적의 말을 퍼붓곤 했지만 정작 나폴레옹의 초상화는 사진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화가들이 사진활용의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점은 다음 두 가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첫째는, 눈이 아닌 카메라에 의존하여 창작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는 비방에 대한 두려움, 둘째는, 그림그리기의 소도구로서의 사진을 시시콜콜 밝힐 이유가 있겠는가 하는 불필요성, 이 두 가지이다.
 
두 가지, 어떤 것이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진이 그림을 또는 그림이 사진을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사진이 교호하고 상충하는 별개 존재의 결합 내지는 배합의 공존이요 병존이다. 현대회화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1842년에 발간된 책, 「동물들의 사생활과 공동생활의 풍경」의 작가, 그랑빌은, 화가가 사진가로 변신하는 모습을 해학적 만화로 묘사했다.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그려온 한물간 인물화가, 토파즈는 원래는 브라질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한 원숭이 화가였다. 그는 회화에서 요구하는 것이 모방이라기보다는 상상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원숭이인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림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귀향길에 카메라를 구입해 고향에서 최초의 인물사진스튜디오를 연다. 그는 곧 유명해지고 브라질 정글의 모든 동물들은 그들의 초상사진을 얻기 위하여 몰려든다. 고객들의 허영심에 비위를 맞춰가며 돈 잘 버는 사진가로 변신한 과거 화가, 토파즈는 명성과 부귀를 다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제왕과도 같은 볼품없는 자기도취에 빠져 살던 원숭이 사진가, 토파즈는 어느 순간 도취로부터 깨어나긴 했지만 원숭이요 화가요 사진가인 그 불쌍한 토파즈는 절망하여 그 자신을 아마존 강 속에 던지게 된다./ (아론 샤프, 「미술과 사진」에서)
 
그림에 대한 인물사진의 위협과 혐오를 풍자한 만화지만, 그림과 사진의 대결로는 보이지 않는다. 모방으로서의 사진인가, 상상으로서의 그림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긴 하지만. 이 또한 명쾌하지 않다. 모방으로서의 그림, 상상으로서의 사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당시 사회상황에서의 인간(화가든 사진가든)의 알력에 다름 아니다. 사진이 발명된 19세기의 사진의 반응은, 사진 자체에 대한 반향보다는 사진의 사회성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다. 사진의 사회적, 특히 정치적 이용(악용이 될 수도 있다)에 관한 예를 들어보면,
 
1956년, 프랑스의 한 주간지는 뉴스냐 선전이냐라는 제목 아래 헝가리의거 때의 동일 사진을 두고 두 가지 측면으로 편집한 적이 있었다. 헝가리의 두 젊은이가 찍힌 사진이다. 같은 사진에 설명(사진캡션)을 달리 했다. 하나는「소련 군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젊은이들은 노예보다 죽음을!을 외치며 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진설명이 붙었고, 또 하나엔, 「정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광신적인 반혁명분자들은 무기를 버릴 것을 거부하고 가망 없는 투쟁을 계속하였다」라는, 전혀 상반된 사진설명을 붙였다.  (중략)  사진의 진실성은 사진 밖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즉 사진이 어떤 맥락에서 이용되느냐가 그 사진을 결정하는 것이다. / (성완경, 「사진과 현실」에서)
 
어디 헝가리의거만이랴. 우리나라 광주민주화사건 때 우리나라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어떠했는가. 사진만 이랬는가. 기사(글)도 마찬가지였지 않았나. 이것 역시 사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편집, 즉 사용자의 의도의 문제이지, 사진 또는 글이라는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동물원 침팬지의 카메라에 대한 반응으로 돌아가 보자. 우선, 카메라는 어쩌면 침팬지도 다룰 수 있는 손쉬운 기계이다. 다루기 수월하기 때문에 대중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장점은 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지구 전체가 사진으로 포화되고 산업사회의 시민 전체가 영상의 중독자로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사진 너머 저편의 진실을 파악하기가 점차 어려워질 뿐 아니라 진실에 대한 그 욕구조차 점차 둔화되고 있다./  (성완경)
 
또, 사진은 촬영자의 위치 등 의도에 따라, 또 사진의 사용자의 입장 등 의도에 따라 같은 사진을 다른 사진으로 둔갑시키기 쉬운 매체의 도구이다. 보도사진에선 물론이고 미술에서도, "나의 작품은 누구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가 있다"고 한 팝아티스트, 웬디 워홀은 잡지 속의 흔한 사진들로 작품을 만들어갔다.
 
그가 작품제작과정에서 취하는 유일한 이니시어티브는 잡다한 잡지 속의 많은 사진(레디 메이드의 이미지들) 중에서 그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에 그친다. / (이 일, 「현대사진과 미술」에서)
 
데생의 보조수단으로서 사진을 적극 활용했던 화가, 들라크르와는 1850년 한 에세이에서,
 
사진은 실제의 단순한 반영이고 복제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정확하다는 이유 때문에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  눈은 그 잘못을 바로 잡아준다.
 
고 했다. 눈은 시점이며, 안목이며 관점이다, 눈으로 찍는 습관이 사진에서도 역시 우선 필요하다. 눈으로 찍는 촬영 습관은 안목이나 관점을 사진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반면, 카메라로 먼저 찍어대는 기계화된 습관은 매너리즘, 획일화되기 쉽다. 사진을 보는 반응도 마찬가지여서 기계처럼 단조롭고 단순해진다. 사진 또는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 이상의 장점이 오히려 상상과 창의를 방해하고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상상의 방해와 창의의 저해는 더 심해지고 있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대자보]

기사입력: 2006/10/03 [12:05]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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