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목요기도회를 아시나요?
할렐루야! 기도는 국경을 초월하여 주님과 대화하는 거예요.
 
정진희

뉴욕 목요기도회를 아시나요?  

분류없음 2006/10/05 16:01 하승창(ourchang)
뉴욕 목요기도회를 아시나요?
[하승창의 뉴욕 리포트] 한인교회 지하방에서의 작은 움직임
하승창(ourchang)기자
▲ 뉴욕한인교회 정문
ⓒ 하승창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기억하고 있는 기도회가 하나 있다.

대학시절에 전두환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돌린 일로 구속되었을 때, 이웃과 친지들 마저 무관심한 척 해야 했던 그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님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기도회이기도 하다.

누구도 이름 석자에 관심 갖기가 두려운 일이었을 시절,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호명하며 석방할 것을 요구하던 모임이기도 하다.

흔히 금요일에 열린다고 해서 금요기도회라 했고, 처음 시작은 목요일이어서 목요기도회라고 불리기도 했다. 종로 5가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열렸던 기도회다. 출소하고 나서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한 번 참석했던 기억이 있다.

그 목요기도회가 이 곳 미국에서도 있었다. 해외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있던 분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뉴욕에서 75년 6월부터 시작해서 근 20여년 동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도하고 싸웠던 모임이다.

김대중, 함석헌, 이우정, 한완상, 김찬국, 문동환 등 70년대와 80년대 익히 아는 민주화운동을 위해 일했던 분들이 다녀간 기도회이기도 했다. 뉴욕에서 목요기도회가 시작된 시기는 앞서 말한 목요기도회가 박정희의 탄압으로 잠시 중단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당시로 보면 한국에서 중단된 목요기도회가 뉴욕에서 이어졌던 셈이다.

목요기도회를 통해 한국의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이국 땅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바라며 구속된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성금을 모아 한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당시 목요기도회는 뉴욕한인교회의 교회당 지하실에서 시작됐다. 당시의 뉴욕한인교회는 전 교인이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할 정도로 조국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교인들은 주로 뉴욕지역 교민과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대학에 유학 온 유학생들이 중심이었다.

뉴욕한인교회는 1923년에 세워진 미 동부지역 최초의 한인교회로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한 근거지이기도 했다. 이승만, 서재필, 안창호 등이 이곳을 근거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70년대, 80년대는 해외민주화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뉴욕한인교회의 역사가 오래지만 그 기간 내내 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싸운 것은 물론 아니었다. 잘 알다시피 이승만과 안창호의 갈등으로 교회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승만이 집권한 후에는 이승만 정권과 친밀함을 유지하기도 했고, 80년대에는 교회가 분열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해외의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정리할 때면 1920년대 설립 당시의 건물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뉴욕한인교회를 빠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의 목요기도회도 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되기 시작하면서 그 소명을 다했다고 보았는지 90년대 중반 중단됐다. 목요기도회가 가진 정체성이 약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목요기도회가 2006년부터 뉴욕한인교회 그 지하방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달과 이번 달 두 번 그 목요기도회에 가 보았다. 지난 달에는 한국에서 온 김보근 박사(경제학, 북한경제)가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번 달에는 퀸즈대학의 조동호 박사(사회학)가 정리해 온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15명 내외의 사람이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중단되기 이전에도 목요기도회에 나왔던 사람들, 문동환 목사, 박성모 목사, 조동호 박사 등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장소도 여전히 뉴욕한인교회의 지하방이지만 느낌과 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였다. 무언가 방향과 과제가 분명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젊은 교포2세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조직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젊은 이들은 한편으로는 한국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통일운동을 전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 주류사회에 한국계의 목소리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있기에 그것과 좀 엇갈려 보여서였는지도 모른다.

▲ 한인교회 지하방에서 다시 시작된 목요기도회
ⓒ 하승창

그런데 어떻게 다시 모이게 되었을까? 6·15민간위원회가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6·15 5주년을 기점으로 남과 북, 해외에서 동시에 구성된 6·15공대위(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 남측 위원장, 백낙청)가 구성되면서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거기에 힘을 보탤 미국 내 한인들의 힘을 모으기 위한 동기가 목요기도회의 부활로 이어진 것이다.

2006년 봄에야 다시 시작된 이 기도회가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듯싶다. 이번 달에 모였을 때 문동환 목사는 목요기도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현재 모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는 미주 한인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쉽지 않겠지만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부시의 전쟁정책에 대한 적극적 반대)를 위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총무인 이승문 목사(길벗교회 담임목사)는 전한다.

조동호 박사는 이미 한인사회에 유사한 모임들이 많이 생겨났고 멤버들이 겹쳐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며 이런 모임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결합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놓았다.

그러고 보면 미주지역의 한인들이 6·15 이후 한반도 통일 문제를 고민하고 이라크전과 9·11로 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 세계평화에 대한 관심을 조직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그 형식이 과연 80년대 목요기도회라는 성격에 부합할 것인지 아니면 그 형식에 맞는 내용을 찾아내 나름의 역할을 이어갈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어찌되었든 이제 역사가 되고 있는 뉴욕한인교회 지하방에서 또 다른 역사의 무기인 목요기도회를 꺼내들고 현재의 문제에 도전해 보려는 성패를 알 수 없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뉴욕 한인사회에 보태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승창 기자는 함께하는 시민행동 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시민행동 홈페이지 에피소드에도 실렸습니다.
2006-10-05 오전 10:46:20

기사입력: 2006/10/05 [16:03]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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