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위기에서 언론의 책무는 무엇인가
충격에서 벗어나서 냉철하게 상황의 대면과 대안 마련해야
 
황진태 기자
"드디어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간 햇볕정책을 엄호한다고 분주하게 활동하던 경남대 김근식 교수가 북한 핵실험이 발생한 다음날 10월 10일자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첫대목이다. 그동안 대표적으로 북한을 향한 햇볕 비추기를 옹호했던 그였던지라 실망감과 허무함은 그 누구보다도 컸을 것은 충분히 추측된다. 
 
기자는 공간이론과 더불어 공부한 정치외교는 논문 준비한다고 한줌의 지식을 사용했을 뿐이지 전문분야도 아니고 입 다물고 지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말문이 막힌다. 기자에게는 원초적인 질문이다. 대체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하는가?
 
책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진중권이 예전에 전쟁 관련하여 얄팍한 책을 내놓았는데 그 첫대목의 인용이 럼즈펠드 미국방장관이 이라크 침략 작전에서 사용한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으로 시작되었다. 충격 속에 머릿속은 여전히 멍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던 12년 전, 94년 영변 핵위기 당시처럼 라면박스만 구입하면 전쟁준비 끝이라고 생각하던 철없는 어린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요즘 한창 동원훈련 참가기간인데 예비군들 간에 이러다가 반은 농담조로 진짜 동원령이 떨어져서 전쟁터에 끌려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얘기가 북핵 실험 당일에 오가기도 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름대로 국제정치를 겉핥기나마 공부했다는 기자도 이러한 얘기에 귀가 얇아진다. 
 
전쟁 발발을 막아야 하는 사적 이유는 언급하지 않더라도(어쩌면 개인에게는 제일 중요하겠지만) 공적인 이유를 들자면 지금까지 공부하고 글쓰기를 했었던 이명박만의 청계천, 세운상가 등의 도시계획에 대한 논의나 한미FTA 논란도 전쟁으로 인하여 반세기동안 피땀 흘려서 만들어 놓은 건조물들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전쟁 후에 재건은 너무나 막막하다. 이러한 거대한 외파에 의해서 지금까지 노력했던 공론장의 발전이 일순간에 증발하는 것은 비극이다.      
 
앞으로도 기자는 북핵실험과 관련해서 어떤 기사도 쓸 능력은 없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북핵실험이 이루어진 당일 모든 매체는 정규 프로그램을 북핵실험 특집 보도로 대체하여 북핵 때문에 그야말로 핵핵거리며 보도에 열을 올렸다. 정규 뉴스조차도 북핵을 제외한 다른 보도는 하지 못했다. 당연히 이러한 일체된 보도행태를 월드컵 방영 행태처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우리 생명이 걸린 사안인 만큼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북핵보도를 통해서 여전히 한국사회의 산재한 의제들이 가려지는 것은 언론의 무책임일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 들리겠지만 북핵보도와 함께 지속적으로 다른 보도도 다룸으로써 국민들이 북핵보도 일변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감에 대해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겠지만 북핵보도에서의 다양한 시각과 대안 제시와 더불어 이러한 일상적인 매체 보도가 지속된다면 북한을 상대해야할 한국정부의 대응에서도 보다 이성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김근식 교수 칼럼의 말미에는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수정가능성을 정부에서 언급하자 "이번의 북한 핵실험을 두고 그동안 우리가 견지해왔던 대북 포용정책의 완전한 실패라고 규정짓기에는 조금 섣부른 면이 있다"면서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중시한 대북정책의 차원이고, … 이에 비춰본다면 이번 핵실험은 정부의 북핵불용이라는 정책 목표가 다소 실패한 측면은 있지만, 남북간 화해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햇볕정책의 성과가 곧바로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실험 강행을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한미간에 대북정책 기조가 상이한 조건에서는 햇볕정책만으로 북미 간 대결구조를 해소하거나 막아낼 수는 없"다며 한국정부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만은 막으려고 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분야에서도 통용됨을 강조하고 싶다.
 
보수야당과 우익단체들은 북핵실험이 터지자 그 원인을 노무현 정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를 통하여 한국경제를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있다고는 하더라도 그동안 한나라당 의원들의 남북관계를 싸늘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발언들을 상기하면 지난 대선에서 보수야당이 승리하여 집권했기로서니 북한과의 관계가 현재보다 더 악화됐을지언정 평화가 앞당겨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선도 중요하겠지만 판이 다른 국가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초당적으로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김근식의 "드디어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말을 곱씹어 보자. 얼마 전 우연히 만화 <도라에몽>을 시청했는데 그 날의 에피소드가 자신이 무서워하는 것을 상상했을 때 어떤 스프레이를 뿌림으로서 무서움이 사라진다는 거였다. 당장의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라에몽>에 나오는 스프레이라도 있다면 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도라에몽>에서의 결론이기도 하지만 스프레이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일시적인 자위적 수단이다.  
 
차분히 자신의 위치에서 현재의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대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변 핵위기 당시보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언론은 여전하지만) 인터넷 언론에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는 외신을 소개하는 등, 북핵실험 당일에 가열되었던 흥분은 가라앉히고 좀 더 차분히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분명 12년 전보다 이성은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대자보]
기사입력: 2006/10/12 [10:2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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