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줬던 가장 비싼 음식(3500원)/안희환
 
안희환

사줬던 가장 비싼 음식(3500원)/안희환
아내에게 보내는 사죄의 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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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둘 있는 엄마치고는 젊다^0^. 이번 추석에 찍은 사진)


사람이 자신의 문제와 잘못을 안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어릴 때 힘들고 고달픔 삶의 과정을 잘 극복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입은 상처의 흔적이 제 안에 많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제 아내를 바라보면서, 특히 상처가 많았던 저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은 아내의 아픔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결혼 전부터 결혼 후까지 몇몇 떠오르는 일화들을 기록해보려고 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제가 해도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아내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서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은 사죄하는 마음과 더불어 아내를 더 아끼고 존중하겠다는 저의 각오이기도 합니다.




1. 사주었던 가장 비싼 음식


아내를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첫 번째 미안함은 먹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주로 아내(결혼 전이지만 그냥 아내라고 지칭하겠습니다)와 데이트를 했던 장소는 광명 시립 도서관입니다. 둘이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고 틈나는 대로 손을 잡고 도서관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그 시간들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29살이 되도록 여자친구가 한명도 없었던 저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보통 그렇게 연애를 하면 남자들이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분에 지날 만큼의 돈을 지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자와 교제를 해본 적이 없는지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지도 못했고, 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돈을 쓰지 말고 무조건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만 꽉 차 있을 무렵이었기에 아내에게 거의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야기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어차피 이야기를 꺼냈으니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주로 먹는 것은 도서관의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었습니다. 라면은 1000원이고 밥은 1500원이었습니다. 커피숍 같은 곳은 단 한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도서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판기에서 200원짜리 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는 것이 다였던 것입니다.


물론 외식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아내와 딱 한번 외식을 했습니다. 당시에 광명 사거리 근처에는 식당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에 루팡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돈까스 등을 파는 곳인데 가격이 10년 전의 가격이라고 광고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그곳에 가서 거금 3500원을 들여 돈까스를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결혼하기까지 한번도 들리지를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근에 된장녀 이야기로 어수선했습니다만 제 아내는 확실히 된장녀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남자의 주머니를 털어서 맛있는 것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시도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고 그런 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사실 제가 아내에게 매력을 느낀 것들 중 하나는 아내에게 허영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수수하게 꾸미고 다닐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근검절약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아왔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만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 가끔 비싼 곳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돈 만원짜리 음식도 남자에게 대접받아보지도 못한 채 시집을 왔으니 조금 안됐다는 마음입니다. 왜 그때 아내는 제게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나, 결국 아내 때문이야 하는 억지 생각도 해봅니다. 젊은 여자분들은 부디 저같은 남자친구를 만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사입력: 2006/10/20 [17:04]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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