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맹목적 비난은 유감
 
김재범 기자
인터넷에선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얼마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궁(宮)으로 시작된 ‘황실 논쟁’은 지난 10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대관식이라는 이름하에 거행된 이혜원 옹주(88 의친왕 둘째딸)의 30대 황위 계승식을 통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이 ‘대한제국 황실 복원’에 대한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문제는 황실 복원에 대한 찬반 논쟁이 아니다. 힘없이 명맥을 이어온 황실가에 유독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선이다.
 
이런 상황은 인터넷의 경우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일부는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수준의 폭언으로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폭언으로 끝나지 않는 반대 여론의 확산이다.
 
우리의 분명한 역사인 대한제국에 대한 맹목적 비난과 당시 일본에 대한 비상식적 추앙이 일부이긴 하지만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점이다. 물론 이 같은 여론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꼭 묻고 싶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에 무엇이 있는지 꼭 묻고 싶다.
 
당시 아픈 우리 과거와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이어질 수는 없는가. 당시 일본을 찬양을 신(新) 친일파까지 득세하는 지금의 현실이 아프고 또 아플 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자존심도 버릴 정도로 우리 과거가 치욕스러웠는가? 당시 황실의 무능과 무지로 을사늑약이라는 국치가 이뤄졌는가? 물론 그런 점도 전혀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 을사오적은 당시 강대국인 일본에 우리나라를 귀속시킨 천하의 애국자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가?
 
일본 야쿠자(낭인)들과 황궁을 휘젓고 들어와 국모를 시해한 수많은 친일파들은 당시 대한제국 발전을 위해 기여한 천하의 애국자였는가? 아니면 당파싸움으로 시간 낭비를 일삼으며 외세의 힘을 빌려 주권을 수호하려 노력했던 당시 황족들과 대한제국 대신들은 후대에 길이 남을 역적들인가?
 
을사늑약이라는 국치가 이뤄지고 이후 40년간 일본에 의해 유린당한 우리 역사가 당시 정권수호에만 눈이 멀었던 광무(고종)황제와 황족들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지금 현재 이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스스로 하늘의 황제라 선포한 뒤 태평양 전쟁이라는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일본의 왕실이 현재까지도 전 일본 국민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국가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권수호와 자주성에 대한 확립을 위해 고분분투하며 당시 강대국인 일본의 힘을 믿고 국가를 통째로 팔아먹은 을사오적 및 수많은 친일 매국노의 생명 위협에 어찌 할 수 없이 을사늑약이라는 국치를 선택하고, 또 자신의 아내를 왜인들의 칼에 비참히 보낸 광무황제를 단지 무능하고 권력욕만 가진 쓸모없는 군주로 보는 잘못된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달동네 쪽방촌에 남은 초로의 인생을 찾는 이 없이 쓸쓸히 살고 있는 우리 역사의 분명한 한 페이지인 대한제국의 황족들에게 인과응보다라고 손가락질 하는 우리의 가슴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황실복원에 대한 찬성을 바라지도 또 맹목적인 황실추종도 아니다. 과거와 현실에 대한 반성과 자기 성찰없이 맹목적인 비난만이 난무하는 지금의 현실이 아프고 또 아플뿐이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투데이코리아]
기사입력: 2006/10/28 [10:2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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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데없는 소리 2010/03/06 [16:05] 수정 | 삭제
  • 절대 반대하여야 한다,,,,
  • 왕건이다 2010/03/06 [15:01] 수정 | 삭제
  • 반란군 이씨들 다 무릎
  • 씰데없이 2010/03/06 [14:14] 수정 | 삭제
  • 개성왕씨 500년 왕업이 무너지고 멸문의 수난 세월

    개성왕씨의 몰락

    개성왕씨는 후삼국의 난세를 평정하고 통일왕조 고려를 연 태조 왕건의 후예다. 역적 이성계의 쿠데타로 고려가 무너지면서 멸족의 비운을 맞은 성씨다. 당시 왕씨들은 살아 남기위해 성을 바꾸고 변방에 몸을 숨겼다. 개성왕씨는 5백년 영화를 누린 왕족이었다. 당시의는 전라도 이씨내 보다 인구수가 훨신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전국에 2만 명도 채 안 되는 희성으로 명맥을 있고 있다. 2000년 현재 개성왕씨는 1만9천여 명이다. 반면 고려를 멸망시킨 역적 이성계의 전라도 이씨는 260만 명이 넘는다. 같은 왕족이었지만 전라도 이씨가 개성왕씨에 비해 무려 130배 가량이 많다. 그러나 영웅의 후예, 왕족의 긍지는 5백년 수난의 세월에도 가시지 않고 있다. 잔인한 학살의 세월을 건너 이제 가문의 부흥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 이라고 할 태조 왕건은 신라 말 송악(개성)에서 왕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송악의 호족이었다. (지방의서 재산이 많고 세력이 강한집안) 그는 나면서부터 영걸의 자질을 지녔다. 스무 살에 태봉 국왕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 역전의 무공을 세우고 중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난세 평정의 새 주인으로 믿었던 궁예가 나날이 횡포해져 백성을 파리죽이 듯 하는 폭군으로 변하자 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 유금필 등 동료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대고구려의 부흥을 내걸고 국호를 고려로 정하며 18년만인 서기 935년 신라를 평화적으로 합병한다. 그 다음해에는 후백제를 무력으로 굴복시켜 통일을 이룩했다.
    북진과 만주 고토 회복을 국시로 내세운 5백년 왕업이 열린 것이다. 이후 34왕, 4백75년 동안 왕씨의 역사는 그대로 고려사였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8만대장경을 만들어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으로 꼽히는 고려청자를 구워내는 찬란한 문화도 이룩했다. 그러나 왕건이 세웠던 대고구려 부흥과 만주 옛 터전 수복의 비원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고려 말 멸망해 가는 명나라가 철진 이북 옛 땅을 내놓으라고 억지 요구를 했다. 그러자 최영 장군이 우왕을 설득, 8만 대군을 일으켜 명나라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역적 이성계의 위화도에서 회군해 텅 비어있는 개경을 포위하고 공격할 때 근왕 병(勤王兵)은 채 100명도 못남아 있었다 역 적군을 대적하긴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고려는 역적 이성계에게 그렇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아무튼 500년 왕업이 무너지고 왕족 왕씨들은 멸족의 참변을 맞는다. 1392년 고려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조를 연 역신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바로 다음날 전국의 왕씨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체포된 왕씨들은 거제도와 강화도에 집단 수용 됐다. 식량보급이 끈긴것도 물론이다 풀뿌리 뱀 개구리 버러지를 잡아먹으며 지옥의 세월 속에서 산송장이 다 돼 있는 중 노약자와 어린이는 다죽고 겨우 목숨만 걸려 있던 죄 없는 왕씨들은 그 뒤 2년도 채 되기 전인 1394년 4월15일 역적 이성계는 이들을 꾀어 뭍에 나와 살게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배에 모두 타게 했다 그는 강화도와 거제도 앞 바다에서 배 밑을 구멍 뚫어 전부 수장시켜 죽여버린다. 세계적 유례없는 상상을 불허하는 잔인한 정치 폭력, 대량 학살 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희생된 왕씨들은 어림잡아 10여만 명에 이른다. 당시 고려국 총인구수가 200여만 명 정도 되였는데 역적의 나라를 세운 조선조 초기에 인구수는 100여만명 정도 되었다고 하니 역적 이성계가 고려인구의 절반을 학살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 한 그 잔악성을 상상할만 하다 개성왕씨 세보(족보)에는 공양왕을 비롯 당시 강화도와 거제도 등에서 억울하게 숨져간 1백여 명의 친(親) 왕족(王族)의 명단을 기록하여 역사의 비극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당시 관원의 눈을 용케 피한 소수의 왕씨들은 옥(玉), 전(全),씨 金씨 밭전자 田씨 당시 외가성이었던 閔씨 등으로 성을 바꾸고 숨어 살았다. 하지만 윗 대의 외가성이 었던 전씨성으로 젤 많히 바꾸었다고 한다 그것은 윗대의 외척이 돼 친밀하기도 했지만 다른 성씨엔 입적(入籍)도 쉽지 않았다 왕씨 입적이 관원에 알려지면 함께 멸문(滅門)을 당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역적의 괴수 이태조가 죽은 후 태종은 왕씨에 대한 체포령을 철회했다. 태종이 이같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 dS2 2010/03/06 [12:36] 수정 | 삭제
  • 복원할 필요도 없는 걸. 복원해서 세금이나 받아처먹으라고요?
  • 오주희 2010/03/06 [09:30] 수정 | 삭제
  • 물음표로 연신 물으니 주장도 흐려지고 너무 감정적으로 쓴거 같소

    좀더 객관적으로 역설하여 주장했더라면 기사제목을 보고 일부러 정보를 얻고자 찾아온 독자가 더 수긍할 수 있었을텐데.

    주장이 근거가 없고, 문장이 말이되요? 제대로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