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기 운동, 위아더 월드
지구촌 Free Hug 열풍, 우리는 하나!
 
이충민 기자
최근 이슈로 떠오른 안아주기 캠페인 동영상을 접하게 됐다. 안아주기 캠페인의 최초는 지난 2004년 호주의 후안 만이라는 남성이 “Free Hugs(무료로 안아드립니다)”라는 플랜 카드를 들고서 시드니 거리에 나왔던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이 동영상의 특징은 처음에 의아해 하던 시민들도 잠시 후, 망설임 없이 후안 만의 품에 안겼다는 점에 있다.

Free Hugs 동영상은 현재 전 세계에 열풍처럼 번져 지구촌 각지의 사람들이 안아주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인간의 정을 함께 공유하고 싶게 만드는 마음이 안아주기 운동의 의의인 것 같다. 그래서 관련 동영상을 좀 더 찾아보았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중년 부부 한 쌍이 안아주기 캠페인 활동을 동참하고 있었다. 남성이 카메라로 영상을 담으면 부인은 직접 길거리에서 안아주기를 시도한다. 베네수엘라 전통 음악이 흐르는 이 동영상에서 부인은 주로 어린이나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를 안아 주면서 ‘행복’을 전파하고 있었다. 남미의 돈키호테 우고차베스 대통령의 좌파정권국가다운 일상모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 폴란드에서도 안아주기 운동이 전개됐다. Free Hug 실천의 주인공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여학생들이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꽃을 나눠주고 안아주기 운동을 하며 행복과 웃음을 전파했다.

낭만과 열정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안아주기 열풍은 계속된다. 로마광장의 중년 남성들은 길 가던 사람들을 끌어안다시피 하며 깊은 정을 나누었다. 이들의 안아주기 대상은 자국 시민뿐 만이 아닌, 아시아인과 흑인도 포함됐다.

러시아 역시 안아주기 운동이 펼쳐졌다. 모스크바 광장에는 수십 명의 시민들이 나와 서로 껴안으며 행복을 만끽했다. 저마다 유쾌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안아주기 운동의 힘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체젠 분쟁의 그늘을 통해서 안아주기 운동이 전쟁 대신 사랑과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젊은 남녀 한 쌍이 길 가던 사람들의 품에 뛰어 올라 안기는 정열을 과시했다. 한 중년남성은 안기기를 극구 거부하자, 안아주기를 원하는 여성이 길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중년남성은 그제야 마음이 약해졌는지 여성을 일으켜 세우고 포옹 했다.

이스라엘에서도 안아주기 운동이 전개됐다. 한 남성이 아이를 끌어안은 영상을 접하고 보니 팔레스타인 꼬마천사들이 연상됐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의 분쟁으로 800명 가까이 되는 꼬마천사들이 죽었었다.

세계적인 유행처럼 번진 안아주기 캠페인에 한국도 예외 없다. 지난 9월 15일, 대학로에서 한 남성이 Free Hugs 플랜카드를 들고 사랑 나눠주기를 실천한 바 있다.

이들은 사람간의 정을 공유함으로써 ‘인간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답을 제시해 준 것 같다. 해답은 곧 인간에 대한 관심, 사랑과 평화 아닐까.

안아주기 운동에 있어서 인종, 종교, 언어, 정치적인 성향 따위 등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 누구이든지간에 안아주기 운동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안아주기 운동 실천이야말로 사랑과 평화 전달의 메신저라고 본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현재 지구촌 각지에서는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레지스탕스-헤즈볼라-의 무력충돌, 미국과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둘러싼 무력충돌, 아프리카 수단의 종교 갈등 등으로 인한 내전. 우간다의 종족을 둘러싼 내전. 끝나지 않은 체첸과 러시아의 분쟁,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치 상황 등 도무지 살육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땅 아프리카에서는 수십만 명의 고아가 발생하고 수천만 명의 이민자가 속출한다. 레바논과 이라크에서는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간다. 체첸의 체첸 시민들 99%가 굶주려 있다. 지구촌은 아직도 죽고 죽이는 살육에 탐닉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하는 자들의 행위는 곧 타인의 가족을 해체 시키는 행위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족의 해체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무엇이 지구촌 사람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들었을까. ‘사랑 받지 못한 자들은 사랑을 전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말처럼 지구촌 사람들 대다수는 ‘타인을 안아준다.’는 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상대에 총구를 겨누는 대신 안아준다면 싸울 일도 없지 않을까.

현실이 얽히고 섥혀 있더라도 한 번쯤은 다 무시해 보면 어떨까. 가족간의 트러블, 직장에서의 동료간 경쟁, 노동자와 자본가의 앙숙관계, 집권당과 야당의 서로에 대한 불신, 국제사회에서의 국가 원수간 갈등 등 모두 잠시 휴전하자. 그리고 ‘Free Hug’ 안아주는 것이다.

한 번쯤은 이런 상상도 해본다.

미국 부시 정권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포옹하면 어떨까. 고이즈미 전 총리와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서로 안아주면 안 될까.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안아주면 어떤가. 노무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안아주면 어떤가. 박근혜 대표가 권영길 의원을 안아주면 어떤가. 즉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이 함께 안아주면 어떤가.  조선일보사와 한겨레사가 서로 손을 맞잡고 얼싸 안으면 또 어떤가.

개인집단에 있어서 가족관계에 있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안아주면 어떨까. 아버지가 반항하는 아들을 안아주면 어떨까. 형이 말 안 듣는 동생을 때리는 대신 안아주면 안 되는 걸까. 언니가 사춘기 여동생을 안아주면 안 될까. 누나가 남동생을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오빠가 여동생을 안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별거 중이던 부부가 서로 안아주면 안 될까.

안아주기 운동의 확산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가로막는 벽들은 허물길 바란다. 안아주기 운동을 통해서 안아주기에 굶주려 있었던 우리 자신을 발견했으면 한다. 타인을 안아주고 타인에게 안긴 당신, 당신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타인을 경계하고 공격하는 것보다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가치 있는 일이다.

위아더 월드. 우리는 하나, 우리가 꿈꾸는 사랑과 평화가 저 멀리에 있지만은 않다.  

기사입력: 2006/11/03 [10:1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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