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불편하고 성격 더러운 남편
 
안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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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올해 찍은 사진입니다. 초등학생을 아들로 둔 엄마가 영~~


아내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입덧은 상상을 초월하였는데 저는 여전히 아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 아내의 마음속에는 실망감이 쌓였고 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가득하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쌓인 모든 것들은 차곡차곡 누적이 되기 마련이고 결국은 터지게 되어 있는데 사실 이미 터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착한 아내인지라 1년이 가기 전에 다시 회복을 하기 시작했지만 말입니다.

아내가 임덧 외에 더 힘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몇 가지를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제 몸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팔이 하나 없기 때문에 망치질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못을 잡으면 망치를 집을 손이 없고, 망치를 집으면 못을 잡을 손이 없습니다. 벽에 못을 박는 사소한 일조차 양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건강한 분들은 생각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내는 그런 일을 힘든 몸으로 해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나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손으로는 넓게 펼쳐진 물건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둘이 같이 들고 올라가야 했고 그나마 부피가 커서 좁은 계단 위에 둘이 설 수 없는 경우에는 아내가 혼자 들고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임신해서 무거운 몸인데 남편이 무거운 물건 하나 들어줄 수 없으니 아내는 낑낑대며 물건을 날라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불평하지 않았던 아내인데 아마도 제 자존심을 생각해서였을 것입니다.

아내가 힘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적인 것입니다. 가난한 교회에서 생활비가 나와야 얼마나 나오겠습니다. 전국 교회의 50% 이상이 미자립교회인데 미자립교회란 1년 예산이 2000만원도 안되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이 조금만 번듯해서 개인 연봉이 2000만원이 넘어가는데 교회 전체 예산 2000만원 이하로는 생활비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나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마땅하지가 않았습니다. 사지가 멀쩡하면 막노동이라도 하련만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을 뿐더러 몸이 약한 나머지 자주 아팠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조차도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아내가 하루 종일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입덧이 심한 것을 참고 일하느라 죽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또 그 부지런한 성격에 지친 몸을 끌고 집에 와서도 구석구석 청소하고 집안일을 하니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인 저의 모난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난과 서러움, 불구의 몸과 상처받은 심령을 극복하며 자라다보니 강하기는 엄청 강한데 자상함과 따스함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그런 것 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배려해주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던 저는 아내에게 끊임없이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했고 아내는 그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제 안의 많은 상처와 아픔들이 아내의 헌신과 보살핌으로 인해 많이 치유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저를 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이 환하다는 것입니다. 인상이 참 부드러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내의 헌신과 사랑, 밝고 긍정적인 삶의 모습이 저를 바꾸어 주었으니까요.

문제는 제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변한데 반해 아내는 많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제 상처를 치유해주느라 자신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처럼 상처받는 아내의 모습은 발견하지도 못한 채 저 혼자 좋아하며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보내는 사죄를 글을 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렇게 글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또 다시 제 잘난 줄만 알까봐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내는 자신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제가 덜어주고 저의 모나고 어두운 성격을 덜어 자신이 가져갔다고 말입니다. 이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현실이 그와 같습니다. 이젠 피차의 좋은 것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나누어주는 법을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기사입력: 2006/11/04 [10:2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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