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중산층 파산 시대
잔혹한 축근이 의미하는 서민 경제학
 
백건영 칼럼니스트
경제학이란,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느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제는 합리적이란 것, 즉 정당하고 보편타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제적 인간은 자기의 경제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IMF이후 남발된 카드발급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어 경제활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과연 이 문제가 개인만의 책임이냐 아니면 그릇된 정책을 수행한 정권의 책임이냐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5년간 상위계층으로 이동한 사람은 16만 명 선에 그쳤지만 하위계층으로 전락한 사람은 100만 명이 넘어 저성장기조 에 접어든 2000년대 들어 중산층에서 하위계층으로의 하향이동 현상이 점점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서민경제가 악화되면서 가계소득에 대비한 금융비용의 증가에 따라서 가계부채가 60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해가 갈수록 개인파산자가 급증하고 있다. 고 전하고 있다.
 
 또한 최근 대법원자료에 의하면, 올해 8월까지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자가 벌써 7만3,232명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지난해 1년 동안 신청한 개인파산자 3만8,773명에 비하여도 거의 2배에 이른다. 금융당국의 분석에 의하면, 연말까지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어 개인파산 신청자가 약 12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1가구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96가구 당 1가구 꼴로 개인파산자 가정이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채무이행의 불능으로 파산상태에 있으면서 아직 파산신청에 이르지 않은 잠재적 개인파산자만 해도 36만 명 내지 12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니 안 그래도 어려운 우리 경제의 장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 전 국토를 투기장화해 온 참여정부의 무분별한 부동산 정책과 이로 인한 담보대출의 증가,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및 금융기관의 실적위주의 대출경쟁과 대출 금리의 상승으로 인하여 몇 해 사이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으로 급증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봇물처럼 터져버린 신용불량자 양산은 청년실업 사태로 이어졌고 일련의 결과가 단순히 무분별한 소비성향이라고 개인에게 몰아붙일 일 만은 아닌 것이니, 경제원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우울한 현실이 한 편의 영화 속에 담겨 있다.
 
 김수로 주연의 <잔혹한 출근>은 이렇듯 몰락하는 중산층과 개인파산시대라는 현실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영화이다. 극중 주인공인 오동철은 파산직전에 몰린 평범한 중산층 가장인데, 주식에 눈이 멀어 주택담보대출은 물론이고, 갖은 대출은 다 받고도 모자라 여동생의 곗돈까지 날리더니 기어이 사채를 빌려 쓰고 그 이자에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인물이다. 결국 그가 택하는 최후의 방법은 유아유괴인데, 오동철이 사채업자에게 시달려 이자 돈을 마련하는 행태를 보고 있으면,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 오죽하면 그가 유괴를 택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혹자들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유괴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할 것이고, 영화가 어려운 서민경제의 현실을 이용해 유괴를 합리화시킨다고 비난할 수 도 있을 것이지만, 영화가 어떻다는 것은 곧 사회가 어떻다는 것이다. 즉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인데, 이 사회와 정부정책에 과연 서민과 빈곤층이 살아남게 할 의지가 있는지를 반성해봐야 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주인공 오동철은 파산직전에 몰린 인물이다. 영화를 보면서 또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제난에 범죄를 저지르는 일명 생계형 범죄자의 소식을 접하면서 제도를 들먹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개인파산제도를 이용하면 해결되지 않느냐고 비난할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개인파산제도가 존재하기는 하나, 그 과정이 까다롭거니와 보증인은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비용도 턱 없이 비싸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어렵게 파산을 신청하여 판결을 얻어낸다 하더라도, 금융거래는 물론이요 취업이 불가능하거나 자격증 취득이 어려워지고 더불어 불법 채권추심이 계속됨으로 인해 이중고에 시달린다는 것은 파산제도가 낳은 또 다른 문제점이라 하겠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사채업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가족에게는 쉬쉬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 유괴를 택하는 오동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만 도 하다. (물론 그의 행위는 잘못 된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니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중산층이 몰락하는 이 시대에 어찌 영화라고 장밋빛 미래를 내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유괴한 소녀의 몸값을 받아 (마찬가지로 유괴된)자신의 딸의 몸값을 치루기 위해 가던 중 오동철은 사채업자와 다시 한 번 마주친다. 정말로 지독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이미 그의 모든 행동거지를 감시하던 그들에게 오동철은 원금을 던져주며 거래가 끝났음을 알리지만, 마지막까지 이자를 요구하는 사채업자의 웃음에서 저승사자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사채이자를 ‘죽음의 이자’라고 할까. 영화의 끝은 오동철이 죄 값을 치루기 위해 감방에 간 후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 허름한 주택으로 이사한 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맺지만,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것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이러한 영화가 나오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동철이 유괴를 결심하기 전, 그의 여동생은 “곧 집도 넘어가지 않느냐, 회사도 잘렸고 언니에게 사실을 다 말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자”라고 조언하는데, 그는 이렇게 항변 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이런 것이냐, 우리 가족 함께 잘 살아보자고 그런 거지. 내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절대 말 하면 안 돼”라고. 물론 이런 변명은 설득력도 부족하거니와 그의 범죄는 용서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임에 틀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동철이 죄 값을 치루고 나온 후에는 합리적 선택에 의한 경제적 인간으로 우뚝 서서 당당히 주류사회로 편입되길 나는 소망한다. 그리고 국가가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간다면 그렇게 되어야 맞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빅뉴스]
기사입력: 2006/11/15 [09:2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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