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 경기도 비전! 미래의 경기도는?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변화와 발전의 중심에 선 경기도와 학인
 
경기 정진희 기자

변화와 발전의 중심에선 경기도와 경기학인들
 김 문 식(단국대 사학과 교수)
 
통계청은 서울, 인천, 경기도를 포괄하는 수도권의 인구가 2001년에 2,200만 명을 돌파했고 2020년이 되면 2,50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는 전국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이다. 통계청은 또한 1999년에 수도권의 제조업 생산액과 제조업체의 수가 전국의 50%에 이르며, 특히 경기도의 고용 규모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와 경제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인구와 경제가 수도권에 집중된 것은 이미 조선후기에도 나타난 현상이었다.

조선 사회가 왜란과 호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이었다. 농업 분야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유통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지역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조선후기 수도권의 성장은 인구의 증가, 교통의 발달, 상업도시의 발달 등으로 나타났는데, 경기도는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중심에 있었다. 수도권의 성장과 함께 조선학계에서는 서울과 지방으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남인은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嶺南)과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남(京南)으로 분화되었고, 노론은 서울과 근교 지역에 거주하는 낙론(洛論)과 충청도에 거주하는 호론(湖論)으로 분리되었다.
 
18세기 이후 중앙학계는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양명학과 고증학을 수용하는 소론계 학인, 서울 주변에 거주하면서 주자학 일변도의 노론 학풍을 비판하고 고학(古學)을 주장하는 남인 경남계 학인, 오랜 서울 생활을 통해 문벌을 형성하고 정계를 주도한 노론 낙론계 학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의관, 역관, 서얼들처럼 전문적인 지식과 경제력을 갖춘 중인계 학인들도 그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자제의 교육과 혼인까지도 수도권 안에서 해결하면서 지방의 학계를 완전히 압도했다.
 
필자는 조선후기에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학계의 변화를 주도한 학자들을 ‘경기학인(京畿學人)’이라고 부른다.

경기학인들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이 지역의 역동적인 변화를 경험했고, 사신단의 일원으로 청과 일본을 방문하거나 사신단과의 교유를 통해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사대부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교식 예제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갖추어야 했고, 학계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경기학인은 가장 유리한 조건에 있었다.
 
정약용은 15세의 나이에 처음 서울에 와서 이가환 · 이승훈과 같은 경남계 학인을 만나 이익의 저술에 접할 수가 있었다.

또한 22세에는 성균관 유생이 되어 서울 유학 생활을 하면서 정조의 눈에 띄어 벼슬길이 열렸다. 정조가 사망하자 그는 천주교 사건에 휘말려 강진에 유배되었고 이곳에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유배지의 고통을 이겨냈다.
 
정약용이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자, 고향인 남양주 마재에 살던 자식들이 강진으로 이주를 하겠다고 나섰다. 죄인의 자식으로 수도권에 살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물론이고 그의 형인 정약전도 자손들이 시골 무지렁이와 섞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이주를 반대했다.

정약용은 사대부가 벼슬길이 끊어지면 문화에 대한 안목을 꾸준히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성 내에서 사는 것이 가장 좋지만 경제적 이유로 서울에 살 수 없다면 근교에서 과실과 채소를 가꾸며 생활하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서울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폐족(廢族)이 되어 무너져 버린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면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문화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의 경기도는 변화와 발전의 중심지에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던 경기학인들은 청이나 일본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학문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당대의 정계와 학계를 주도할 수 있었다.

기사입력: 2006/12/06 [22:2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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